“오직 성경”: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며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우리 개신교는 해마다 가톨릭교회의 문제를 지적하여 개신교 존재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이 날을 축하해왔다. 무슨 말이냐하면, 개신교는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를 가진, 하나님 말씀에 기반한 조직이지만 가톨릭은 교황을 위시로한, 교권을 성경 위에 두고 있는 조직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만 해 보면 이런 사고 방식의 문제점을 쉽게 발견하게 된다. 나는 500주년이라는 특별한 이번 기념일에 조금 차별화된 축하 방식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해서 이 글을 써본다.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오직 성경”은 16세기 종교 개혁가들의 슬로건이다. 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를 내세웠다. 이 슬로건을 통해 가톨릭의 타락을 비판하였으며 개신교회 설립의 정당성을 내세울 수 있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부분은 성서라고 분류된 이 책에 부여된 신적 권위의 기원의 문제다.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어록”이어야 한다. 아니면 최소한 인간이 쓴 글에 하나님이 직접 권위를 부여한 문서라고 증명하거나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쓴 문서에 인간의 권위로 신을 대신해서 신적 권위를 부여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인가? 방금 언급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한다면 성경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아니다. 우리가 성경이라고 일컫는 이 책은 고대 유대교 공동체 내부에서 또 고대 기독교 공동체 내부에서 만들어낸 수 많은 문서들이 어떤 경위를 통해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은 문서들이며 여러가지 요인을 인해 권위를 갖게 된 것들이다. 우리는 물론 이 모든 과정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다고 믿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 고대의 문서들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성경이 형성되었는지 한 번 생각해 보고 이 과정이 과연 어떤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있었는지를 판단해보자.

사실 성경이 어떻게 형성되어 결국 우리의 손에까지 들어오게 되었는지 그 정확한 역사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 분야는 성서학계에서도 아주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히브리어성경을 전공으로) 성서학을 공부하면서 한 가지 확신하게 된 것은 오경을 포함한 히브리어성경의 상당 부분은 그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그 시대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그 보다 훨씬 후대인 기원전 5세기경 페르시아가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시대에 쓰여졌거나 집대성 되었으며 그 이후에 쓰여진 글들도 많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제정세, 정치, 문화, 경제적인 면들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가령 다니엘서는 비록 바벨론 포로기인 기원전 7세기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 글이 실제 쓰여진 시기는 기원전 2세기 이후며 그 당시의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무슨 말이냐하면 다니엘서는 헬라시대 셀류시드 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의 종교적 탄압을 배경으로 하며 이 책에 다니엘의 “예언”으로 등장하는 사건들은 작가의 시점에서는 이미 과거의 사건이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 부분은 설명하자면 지나치게 글이 복잡하고 길어지기 때문에 이정도로만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다.

성서의 선택이란 부분도 한 번 생각해보자. 개신교인들이 익숙해 있는 성경 66권 외에도 고대의 많은 문서들이 성경에 못지 않은 신앙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 왜 하필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66권만이 성경이어야 하는가? 누가 그 책들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하고 권위를 부여했는가? 바로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성경 이해가 성경 자체보다 더 앞장설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 책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해하지 않았다면 성경은 성경이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생각해 보자. 가톨릭과 정교회는 이미 개신교의 66권보다 더 많은 문서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고 종교개혁 전 이미 1000여년 가까이 그 문서들을 정경으로 사용해 왔다. 개혁가들은 그 문서들 중 현재 구약 39권과 신약 27권만을 성경으로 선택했다. 과연 누가 개혁가들에게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 받던 문서들 중 일부를 하나님 말씀이 아닌 것으로 속아내는 권위를 주었을까? 만일 우리가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를 고수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1000여년의 역사를 가진 특정 문서들을 버릴 수 있을까?

이제 다시 생각해보자. 과연 성경은 하나님의 섭리로 만들어졌으며 본질적으로 거룩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방금 이야기한 것 처럼 성경이라는 책의 형성 역사는 생각보다 인간적이고 세속적이다. 다니엘서의 경우가 보여주는 것 처럼 “사후 예언”이거나 역사가 아닌 지어낸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런 문서들이 정경으로 인정받는 과정에서도 인간의 안목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개신교, 가톨릭, 여러 정교회 등 교파들은 서로 다른 책들을 정경으로 선택하였다. 성경이란 말은 어떤 책의 본질이 아니라 그 책이 받아들여진 의미인 것이다.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성경이라고 부르는 이 고대의 문서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라는 것이 아니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결국 어떤 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다.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라는 공동체로서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종종 “오직 성경”이라는 우리의 슬로건을 생각하며 우월감에 젖곤 하는 것은 정당한가? 개신교는 더이상 우리는 순수하게 성경 중심이라 하나님 보시기에 더 바르고 가톨릭은 교황의 교권을 성경보다 앞세우기 때문에 나쁘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정당화 시킬 수 없다. 양 측 모두의 해석대 해석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16세기 가톨릭 종교인들에게 문제가 없었다거나 종교개혁이 정당하지 못한 사건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오직 성경”이란 슬로건을 가지고 개신교회가 가톨릭교회로부터 분리하여 나온 것은 충분히 정당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세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황을 비롯한 교회의 권위자들이 성경의 의미를 독점적으로 생산해냄으로서 결과적으로는 그 권력속에서 타락하였고 교권에 복종해야만 했던 모든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개혁가들은 이 타락한 권위의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을 것이다. “오직 성경”은 부패한 기득권층이었던 종교인들의 권위를 박탈해야만 했던 정황속에서 개혁가들의 현실적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직 성경”이라는 슬로건은 분명 유효한 것이었다. 문제는 “이 슬로건이 과연 21세기에도 동일하게 필요/유효한 것인가”라는 문제다. 답부터 말하자면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왜 이런 애매한 답이 나오는지 이제 조금 더 알아보자.

원칙적으로 “오직 성경”의 의미는 교황같은 인간에게 권위가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권위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 것 처럼 교황이든 누구든 인간이 해석하지 않는다면 성경이라는 책속에 기록된 문자들은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늘 임재해 있어서 그 책에서 무한한 능력이 나와 세상을 질서있게 주관하는 무슨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신비롭고 성스러운 물건이 아니다. 인간이 읽고 해석해야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가톨릭의 잘못은 성경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교황을 중심으로한 종교인들이 성경을 독점하여 자신들이 유리한 대로 해석하고 그것을 교리화 하여 그 외 다른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도록 통제하였던 데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해 성경을 심각하게 오용하였다.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종교 개혁가들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비록 개혁가들은 “오직 성경”이라는 구호를 외쳤지만 사실 자신들 나름의 성경해석을 가지고 가톨릭의 성경해석에 대항한 것이다. 물론 당시 가톨릭이 해석한 성경의 가르침에 문제가 많았고, 아마도 자신들의 특권을 확장하고 강화하기 위한 의도적 오독도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개혁가들이 주장한 내용들이 순수한 성경의 가르침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개혁가들 간에도 서로의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혁가들은 가톨릭과만 싸운 것이 아니라 심지어 자기들 끼리도 서로 다른 해석을 가지고 분열해야 했다.

한 번 생각해 보자. 당신이 만일 성경을 아무런 교단의 교리적 지식이 없이 읽는다면 과연 삼위일체라는 “진리”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누가 읽어도 오해가 없을 만큼 명쾌하게 삼위일체에 대하여 말하고 있지않다.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개신교인들은 왜 삼위일체를 믿는가? 바로 교리 때문이다. 우리는 비록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믿지만 사실 각 교단이 정한 교리의 테두리 밖을 벗어난 어떤 방식의 성경 읽기도 가능하지 않은, 교단의 권위에 의해 통제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다만 이 통제가 16세기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전쟁을 불사할 만큼 큰 폐단은 없다고 느끼고 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는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을 고수하는 듯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오직 교리”라는 현실을 살고 있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서 교리를 읽고 있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미 정해진 각 교단의 “교리”를 부정하고 다시 순수한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다.“순수한 성경”은 환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직 성경”의 원칙은 절대화 될 수 없다. 만일 성경의 해석이 교단의 교리적 통제도 없이 전적으로 각 사람에게 달린 일이라면 기독교라는 정체도, 기독교인의 정체도, 기독교인의 모임의 이유와 목적도,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던진 질문, 21세기에도 “오직 성경”의 원리는 유효/필요한가에 대한 답은 “No”가 될 수 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교리를 존중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직 성경”의 원리를 포기해선 안된다. 잠시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내 교단의 교리는 성경의 진리를 보여주는 틀림이 없는 유일한 해석인가 아니면 여러가지 다양한 의미 중 하나인가? 그 교리대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성서를 절대 “오해”하거나 “오용”할 가능성이 없는가? 당신이 신학생이거나 목회자라면 한 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어떤 교단이든 교리라는 것은 완벽하고 유일무이한 성경 해석이 아니라 틀릴 수도 있는 하나의 해석인데 종교개혁 이래 줄곧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특별한 자”로써 자리매김하여온 개신교 목회자 계층은 마치 지난 날의 가톨릭 종교인들처럼 자기 교단의 교리에 복종하고 이를 강화하는 역할을 해오지는 않았는가?

만일 우리가 속한 각 교단의 성경해석, 즉 각 교단의 교리가 완전하지 못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교리를 가지고 성도들을 완전히 통제하려고 한다면 이는 가톨릭이 중세의 민초들을 교권을 가지고 통제했던 것과 같은 행태일 수 밖에 없다.  16세기의 개혁자들은 교황의 해석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나름의 방식으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우리가 만일 이런 전통을 물려받은 개혁자들의 후손이라면 적어도 16세기 가톨릭 종교인들이 저질렀던 실수를 되풀이 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해석의 적합성을 끊임없이 되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 개신교는 다시금 “오직 성경”이란 개혁 교회의 정신을 되살려야만 한다. 앞서 말한 것 처럼 교리를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개신교의 분열의 역사가 보여주듯 교리는 절대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끊임없이 성경으로 돌아가는 훈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개신교인은 가톨릭교회의 성경 해석에 이미 딴지를 걸었다. 남에게 딴지를 거는 것은 어찌보면 쉬운 일이다. 그러나 자기 반성없이 남의 딴지만 거는 것 만큼 꼴보기 싫은 것은 없다. 이미 개신교는 세상으로부터 너무 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고 있다. 지금은 누구를 욕할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를 들여다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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