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가 하나님인가

이 글은 생각이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더 많은 생각 거리를 주기 위하여 쓴다.

우리말 ‘하나님/하느님'(이하 하나님)은 히브리어 원문 ‘엘’ 혹은 ‘엘로힘’을 번역한 말이다. ‘엘’의 문자적 의미는 ‘신’이며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이다. 즉 ‘신들’이라는 뜻이 된다. 하지만 히브리어의 복수는 수(number)의 개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위, 능력, 위엄의 높음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엘로힘을 반드시 ‘신들’이라고 번역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엘로힘이 이스라엘의 유일신을 가르킬 때는 ‘신’이라는 단수 명사로 번역해야 한다. (참고로 하나님/하느님은 하늘을 뜻하는 하날/하늘과 님의 조합(하늘+님)이 변하여 만들어진 단어이며 가톨릭에서는 하느님을, 개신교에서는 하나님을 선호한다. 기독교 내부의 신명(神名) 불일치에 관하여는 여기를 참고하시오).

그런데 엘 혹은 엘로힘은 이스라엘의 신을 뜻하기 이전에 본래 초월적 존재를 가르키는 일반 명사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이 ‘우상’이라고 부르는 ‘신들’도 ‘엘로힘’이란 표현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히브리어 성경을 읽을 때 엘/엘로힘이 나오면 독자는 반드시 문맥 속에서 이 단어의 쓰임새를 판단해야 한다.

영어 번역 god/God는 엘/엘로힘의 이런 다의성을 비교적 잘 반영하고 있다. 히브리어 엘/엘로힘이 이스라엘의 신도 우상신도 될 수 있는 것처럼 영어 번역 god역시 둘 다를 표현할 수 있다. 성경을 오디오로 듣기만 한다면 God과 god은 히브리어에서 처럼 문맥을 파악해야만 구분할 수 있다. 물론 책으로 읽을 때는 God과 god을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도 구분할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말 번역처럼 아예 다른 번역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영어 번역이 조금 더 문자적이다. 즉 ‘하나님’은 엘로힘의 의역이라 할 수 있다.

우리말 성경에서 ‘신’을 ‘하나님’으로 번역하게 된 이유는 구약성경을 우리말로 처음 번역하던 시절 우리는 히브리어가 아닌 중국어 번역 성경을 기반으로 우리말 번역 성경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어 성경은 ‘신’에 해당하는 ‘엘’ 혹은 ‘엘로힘’을 ‘천주’라는 말로 번역을 했다. ‘천주’는 전지전능한 최고의 신 ‘상제’와 동일시되는 표현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신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말 ‘하나님’은 천주 혹은 상제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 단어로 선택이 되었다. 비록 문자적 번역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전지전능한 최고의 신을 지칭하기 위한 단어라는 점에서 큰 문제는 아니다. 다만 가능한 직역을 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의역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번역은 쉬운 문제가 아니다. 어떤 한 언어의 문서를 다른 언어의 문서로 바꾸는 과정은 복잡한 문제를 야기한다. 엘 혹은 엘로힘이라는 단순한 용어의 번역을 두고도 번역자는 어떤 용어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해야만 한다. 많은 경우 번역 언어는 원어를 완벽하게 대체할 어휘와 문법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엘로힘/엘의 경우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의미 중심의 의역이 되고 ‘신’이라고 한다면 문자적 직역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엘/엘로힘이라는 용어의 우리말 번역 문제는 직역과 의역 사이의 선택의 문제라 하겠다. 결과적으로 우리말 번역은 의역을 따라가게 되었고, 그 결과 한국 기독교는 이스라엘의 신을 우리의 토착신 “하나님”과 동일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을 ‘신’이라고 거의 부르지 않는 집단이 되었다. ‘하나님’도 분명 의미는 통한다. 그러나 의역이 언제나 그렇듯 ‘하나님’이라는 의역은 직역을 대체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과 “하나님 말고 더 나은 다른 표현은 없을까?”라는 의구심을 남긴다.

만일 우리 한국 기독교가 처음부터 ‘하나님’을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면 어땠을까? 성경의 문자적 번역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상상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

창세기 1:1 태초에 신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신의 숨결은 물위에 활개를 쳤다. 3 신께서 말씀하셨다. “빛이 생겨나라” 그러자 빛이 생겨났다. 4 빛은 신께서 보시기에 좋았다. 신께서는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는데 5 신께서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부르셨다.

위처럼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모두 신이라고 바꾸어 불러왔다면 아마도 한국 기독교의 문화는 지금과 상당히 다를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신을 하나님이라고 불러왔지만 ‘하나님’은 아주 생소한 표현일 것이고 우리는 신이라는 표현에 익숙해 있을 것이다. 기도할 때도 “사랑이 많으신 신이시여”라고 부를 것이다. 찬양을 올려 드릴 때도 우리는 “새 노래로 부르자! 신께 올려 드릴 찬송을!”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뭔가 생소하지 않은가! 이 생소함은 본래 생소하지 말았어야 할 것인가! 앞으로라도 우리가 익숙하게 만들어야할 과제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불필요한 고민일 뿐인가! 우리가 그토록 익숙하게 부르는 그 ‘하나님’은 누구인가! ‘하나님’이란 번역은 과연 적절한가!

물론 번역에 있어서 절대 의역도 절대 직역도 있을 수 없다. 번역은 원본의 언어에 상응하는 번역어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직역일 수 밖에 없고 해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면 점에서 언제나 의역일 수 밖에 없다. 다만 의역에 가까운지 직역에 가까운지를 대략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이든 ‘신’이든 이미 이 말들은 번역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문화적 사고의 틀 속에만 이해된다. 아무리 좋은 번역이라도 완벽하게 원어의 의미를 전달한다고 할 수 있지 않다. 소위 직역인 ‘신’이라는 용어도 사실 한국의 문화적 함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엘/엘로힘과 같은 말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믿고 섬기는 신, 하나님은 누구인가! 이 포스트는 생각이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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