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이야기, Joseph Narrative

이 글은 전적으로 Joel S. Baden의 책 the Composition of the Pentateuch를 읽었던 기억을 되살려 작성되었다. For English version click here.

*주의: 이 글은 요셉이 팔려간 이야기에 관한 것이며 성경 본문은 창세기 37장이다. 번역은 가톨릭 성경을 활용하였다. 개신교인으로서 개역개정이 익숙하지만 37장 28절의 개역개정 번역에 문제가 있어 불가피하게 가톨릭 번역을 활용하였다.

성경의 이야기 가운데 요셉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편애를 받으며 자란 철부지였다. 형제들의 질투를 살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요셉은 눈치 없이 자기가 높은 자리에 올라 결국 형들도 부모님들도 모두 자기에게 절하게 될 것이라고 형들을 도발하여 형들의 원한을 쌓게 된다. 결국 그는 형제들에게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가 다행히 지나가던 상인들에게 팔려져 이집트에 이르게 된다. 요셉은 이집트에서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그 끝에 파라오에게 발탁이 되어 이집트와 그 주변 국가를 극심한 가뭄으로부터 구해낸다. 이 과정에서 가나안에 살던 형들이 곡식을 구하러 이집트에 오게 되며 형들과 극적인 만남을 통해 결국 야곱의 모든 식솔들이 이집트에 이주하여 살게 된다. 요셉은 형들에게 말하기를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으셔서 자신이 먼저 이집트에 오게 된 것이라고 말하며 형들을 안심시키고 하나님의 놀랍고 신비한 섭리를 드러내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우리가 기억하는 요셉의 이야기는 대략 이러하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정말 사실일까? 이 이야기의 본문이 정말 이런 줄거리를 가지고 있을까? 그 대답은 ‘엄밀히 말하면 아니다’라고 해야 할 것이다. 왜 그런지 본문 37장에서 몇 가지만 살펴 보자. 먼저 아래 본문을 보라.

18 그런데 그의 형들은 멀리서 그를 알아보고, 그가 자기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몄다.
19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저기 저 꿈쟁이가 오는구나.
20 자, 이제 저 녀석을 죽여서 아무 구덩이에나 던져 넣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이야기하자. 그리고 저 녀석의 꿈이 어떻게 되나 보자.”
21 그러나 르우벤은 이 말을 듣고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낼 속셈으로, “목숨만은 해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다시 말하였다. “피만은 흘리지 마라. 그 아이를 여기 광야에 있는 이 구덩이에 던져 버리고,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는 마라.” 르우벤은 그들의 손에서 요셉을 살려 내어 아버지에게 되돌려 보낼 생각이었다.
23 이윽고 요셉이 형들에게 다다르자, 그들은 그의 저고리, 곧 그가 입고 있던 긴 저고리를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졌다. 그것은 물이 없는 빈 구덩이였다.

위 본문은 창세기 37장 18-24절까지이다. 형들은 요셉이 홀로 나타난 것을 멀리서 보고 살해를 공모한다. 그런데 르우벤은 첫째 아들로서 이 일에 무거운 책임을 느낀 듯 그를 살릴 나름의 방도를 생각해 낸다. 그것은 ‘구덩이’에 빠뜨리고 직접 피를 흘려 죽이지는 말자는 것이다. 그런데 르우벤의 발언은 약간 모호하다. 그는 21절에서는 목숨을 해치지 말자고 제안하였다가 22절에서는 ‘구덩이’에 던지자고 제안한다. 이 구덩이는 ‘물웅덩이’를 뜻하는 단어로 거기에 던진다는 것은 결국 직접 피를 흘리지는 말고 그냥 물에 익사를 시키자는 제안인 것이다. 만일 형제들이 이 구덩이가 빈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 구덩이에 던지기를 동의했다면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지는 말자는 말에 동의를 한 것이지만 만약 몰랐다면 형제들은 구덩이에 요셉을 던짐으로 그를 죽게 하려는 의도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 두 가능성 중에서 더 유력한 선택지는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왜냐하면 22절 마지막 부분에서 이야기하듯 르우벤은 형제들이 끝까지 동생을 죽이려고 했던 것으로 생각하고 그 형제들로부터 요셉을 구해주려고 했다고 서술자가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형제들이 구덩이에 요셉을 던졌을 때 그들은 그 구덩이가 비어있었는지 몰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르우벤은 구덩이에 요셉을 던지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때 르우벤을 제외한 형제들은 요셉을 여기에 던지면 익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제 다음 단락으로 넘어가 보자. 르우벤의 말대로 형제들은 요셉을 직접 죽이지 않고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형제들은 요셉을 구덩이에서 죽게 버려 둔 채 자리를 이동하여 밥을 먹기 시작한다.

25 그들이 앉아 빵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보니, 길앗에서 오는 이스마엘인들의 대상이 보였다. 그들은 여러 낙타에 향고무와 유향과 반일향을 싣고, 이집트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26 그때 유다가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동생을 죽이고 그 아이의 피를 덮는다고 해서,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27 자, 그 아이를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 버리고, 우리는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자. 그래도 그 아이는 우리 아우고 우리 살붙이가 아니냐?” 그러자 형제들은 그의 말을 듣기로 하였다.

식사를 하던 형제들은 멀리서 이스마엘의 대상이 오는 것을 발견하는데, 이때 유다가 ‘피를 흘리지 말자’고 또 다시 제안을 한다. 이미 르우벤이 했던 제안이다. 형제들이 멀리서 오고 있던 요셉을 보고 피를 흘려 죽일 계획을 했을 때 르우벤이 했던 제안과 흡사하다. 그러나 요셉은 구덩이에 던져졌고 형제들은 식사를 하고 있었으므로 이미 죽었다고 믿고 있어야 말이 된다. 만일 형제들이 그 구덩이가 물이 없는 구덩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이미 직접 피를 흘리지 않기로 결의를 하여 구덩이 던져 넣은 상태에서 또 다시 ‘피를 흘리지 말자’라고 제안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 뿐 아니라 형제들이 요셉을 던진 구덩이가 만일 물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유다가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려고 의도하였다면 결과적으로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간다. 왜냐하면 28절에 따르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낸 것은 미디안의 상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처음에 요셉을 죽이기로 한 상태에서 아직 요셉이 당도하기 전 이스마엘인들을 발견하였고 유다가 죽이지 말고 계획을 변경해서 요셉을 팔자고 제안하였다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부자연스러움은 이 뒤로 계속 가중된다.

28 그때에 미디안 상인들이 지나가다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내었다. 그들은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은전 스무 닢에 팔아넘겼다. 이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리고 갔다.
29 르우벤이 구덩이로 돌아와 보니, 그 구덩이 안에 요셉이 없었다. 그는 자기의 옷을 찢고,
30 형제들에게 돌아가 말하였다. “그 애가 없어졌다. 난,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31 그들은 요셉의 저고리를 가져다, 숫염소 한 마리를 잡아 그 피에 적셨다.
32 그들은 그 긴 저고리를 아버지에게 가지고 가서 말하였다. “저희가 이것을 주웠습니다. 이것이 아버지 아들의 저고리인지 아닌지 살펴보십시오.”
33 그가 그것을 살펴보다 말하였다. “내 아들의 저고리다.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구나. 요셉이 찢겨 죽은 게 틀림없다.”
34 야곱은 옷을 찢고 허리에 자루옷을 두른 뒤, 자기 아들의 죽음을 오랫동안 슬퍼하였다.
35 그의 아들딸들이 모두 나서서 그를 위로하였지만, 그는 위로받기를 마다하면서 말하였다. “아니다. 나는 슬퍼하며 저승으로 내 아들에게 내려가련다.” 이렇게 요셉의 아버지는 그를 생각하며 울었다.
36 한편 미디안인들은 이집트로 가서 파라오의 내신으로 경호대장인 포티파르에게 그를 팔아넘겼다.

이스마엘인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유다가 요셉을 팔 것을 제안하자마자, 이제는 미디안의 상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빼낸다. 형제들은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을까? 분명 형제들은 식사를 하고 있었고 그 구덩이 근처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디안인들은 르우벤이 구덩이에 던지자고 제안하는 바람에 버려진 요셉을 끌어내어 이스마엘인들에게 팔아버린다. 이 사실을 형제들은 모르고 있다. 유다는 분명 이스마엘인들에게 요셉을 팔자고 하였는데 미디안인들이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 팔고 있다.

29절에 따르면 르우벤은 자기의 계획 대로 형제들이 식사를 하고 있을 때에 다시 구덩이로 돌아와 요셉을 구해내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미디안인들이 요셉을 팔아버린 후이다. 유다의 계획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다만 르우벤의 계획 대로 요셉의 옷을 형제들은 가지고 있다. 다만 요셉의 행방은 묘연해 졌고 형제들은 요셉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그들은 요셉의 죽음을 위장해서 아버지를 속인다. 요셉의 옷에 짐승의 피를 묻혀 아버지에게 가져가 요셉의 옷이 맞느냐고 확인한 후 야곱이 요셉의 사망을 믿게끔 속이고 이 사건을 덮는다. 하지만 아무도 요셉의 생사를 아는 사람은 없다.

이 시점에서 한 가지 더 문제가 더 발생하는데, 이는 미디안인들의 행적과 관련이 있다. 28절에 따르면 미디안인들은 이스마엘인들에게 요셉을 팔아버렸다. 그런데 36절에는 미디안인들이 요셉을 이집트로 데려와서 포티파르(보디발)에게 팔아 버린다. 28절에 따르면 이스마엘인들이 요셉을 미디안인들에게 사서 그를 이집트로 데리고 왔다. 이야기의 흐름은 이렇게 종잡을 수 없게 흘러간다. 심지어 창세기 39장 1절에서는 포티바르(보디발)가 요셉을 이스마엘인들에게서 샀다고 기록되어 있다. 28절의 내용과 정확하게 이어지는 대목이다.

요셉의 이야기 전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위에서 본 것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많이 존재한다. 이 불연속성을 해결하기 위해서 학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중 가장 유력한 해법으로 제시된 것이 문서 가설이다. 문서 가설은 20세기를 주름잡았고 여전히 활발이 연구가 되고 있으며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학계에서나 신학생 교육 과정에서 이 중요한 방법론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앞으로 Baden의 책같은 쉽고 풍부한 내용을 담은 문서 가설 입문서들과 현재 이 가설의 학문적 동향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글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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