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반은 누구인가?

부제: 라반의 예언

리브가의 오빠 라반은 야곱과의 관계에서 ‘속고 속이는 자’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조금 달리 보면 다른 평가도 가능한 인물이다. 오늘은 창세기 24장 이야기를 통해 라반에 대해 알아 보자. (영어 버전은 여기)

리브가와 이삭의 황당한 결혼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뻔 했던 사건 후에 고향에서 형제 나홀의 소식이 들려 온다. 그가 하란(그도 아브라함의 형제이다)의 딸 밀가와 결혼하여 여덟 명의 아들을 갖게 되었다는 소식이었다(창 22:20-24)(이 단락에 관한 포스트는 여기를 보라).

밀가의 아들 중 마지막에 소개된 인물이 브두엘인데, 브두엘이 바로 라반과 리브가의 아버지다. 창세기 22장 마지막에 나홀의 족보를 통해 소개된 리브가는 24장에 다시 등장하여 이삭과 결혼하게 된다.

리브가가 이삭과 결혼하게 된 전말은 매우 황당하다. 아브라함은 자기 종을 자기 출신지(밧단아람, 25:20)로 보내어 친족 중에서 이삭의 아내를 구해 오도록 요구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너무 형통하여 심부름을 하는 종은 야웨께서 뜻하신 바가 있음을 느끼고 리브가를 만난 바로 다음 날 지체없이 그를 데리고 가나안으로 돌아가려 한다. 라반은 갑작스러운 이별에 당황하고 한 열흘만 더 지내다 가기를 부탁한다. 그러나 그 종은 야웨께서 형통하게 하신 일을 지연하지 말아 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라반은 이를 수락하지 않고 리브가의 뜻을 따르자고 다시 제안한다. 갑작스럽게 가족들과 생이별을 고해야 하는 리브가가 라반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리브가는 그 종의 말대로 그날 아침 바로 집을 떠나 이삭과 결혼을 하기 위해 길을 떠날 것을 선언한다. 본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 위해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나야 하는 결정인데 리브가는, 적어도 현대의 독자 입장에서는, 매우 황당하게도 지체없이 집을 떠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

리브가와의 작별 장면에서 볼 수 있는 라반의 의외의 모습

이 갑작스러운 사건 전개에서 라반이 자기 누이 리브가에게 고하는 마지막 작별 인사가 바로 창 24:60이다.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머니가 될지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 문을 얻게 할지어다

라반은 사랑하는 동생 리브가를 위해 마음을 다해 축복하고 그의 앞날이 형통하기를 비는데, 이 축복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주신 축복과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창 17:16에서 주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오셔서 후손(이삭)을 약속해 주셨을 때 사라는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는 복을 더불어 약속해 주셨다. 창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을 통과한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17절)할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는데, 라반이 리브가를 축복할 때도 그와 거의 똑같은 복을 빈다.

이렇게 보면 서사상 라반의 역할은 매우 예언자적이다. 라반은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셨던 약속을 거의 축어적으로 반복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고대 문서인 성경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이 일이 실제 사건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고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서사상 라반의 역할이 예언자적이라는 부분이다. 라반은 흔히 야곱과의 관계에서 ‘속고 속이는 자’로만 여겨지며 딱히 긍정적으로 볼 것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되지만 창 24:60은 라반의 의외의 모습을 보여 준다.

또 한 가지 의외의 모습은 가장으로서의 라반의 모습이다. 이 이야기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리브가의 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리브가는 브두엘의 딸이라고 소개되지만 그 외 사건에 직접 등장하는 인물은 오직 라반과 어머니(밀가)뿐이다. 이는 리브가가 어렸을 때 브두엘이 사망하고 라반이 집을 대표하여(가장) 모든 대외적인 일을 처리했음을 암시한다. 집안의 여인을 시집보내는 일도 마찬가지 였다. 어머니는 패물을 받는 사람으로만 등장하며, 리브가를 시집보내는 일에는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이 장면에는 라반과 어머니가 함께 있고, 처음부터 계속 주어와 동사가 복수로 등장하여 라반이 부각되지는 않는다. 60절의 원문에서도 주어는 ‘그들이 리브가에게 축복하였다’라고 되어 있어 라반과 어머니가 함께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리브가는 ‘동생'(sister)로 표현되어 있고, 라반과 어머니가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사람은 어머니가 아니라 라반이다.

족장으로서 라반은 어려서 아버지를 잃은 리브가를 딸처럼 애지중지 키웠을 것이다. 그러니 갑자기 떠나 보내는 것이 서글펐을 것이다. 그는 열흘이라도 더 머물러 달라고 요청을 했다. 하지만 리브가는 매몰차게 즉시 그 종을 따라 나선다. 그럼에도 라반은 서운한 마음을 뒤로하고 리브가를 진심을 다해 축복했던 것이다.

*참고1: 오경 서사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님의 약속과 복의 분석은 문서 가설의 자료비평의 문서 구분에 있어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Joel Baden(조엘 베이든)이 쓰고 김지명이 번역한 <오경의 형성: 문서 가설 새롭게 하기>에 자세히, 전문적으로 다루어져 있다. 2021년 출판 예정이다.

*참고2: 개역개정의 25:20 번역은 밧단아람을 ‘밧단 아람’으로 띄어 쓰기 하여 표기하였지만 그 외 다른 곳에서는 모두 ‘밧단아람’으로 표기함

*참고3: 라반이 그 종에게 열흘만 더 있다가 가라고 요구한 것은 그가 야곱에게 오랜 기간 머물며 일을 하게 만든 일종의 수작처럼 보이기도 한다. 성경에서는 야웨의 일을 실행하는 데에 시간을 지연 시키는 것을 부정적으로 그리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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