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기독교, 그리고 사회 분열

주제: 인지 양분화 현상(Cognitive Systemic Dichotomization)

요약한 논문 제목: ‘Cognitive Systemic Dichotomization’ in Public Argumentation and Controversies by Dascal, Knoll, and Cohen, Ontario Society of the Study of Argumentation 2011

들어가는 말

어느 사회나 마찬가지지만 한국 사회 역시 상당한 수준의 갈등과 분열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 자체가 사회 분열의 원인이 되는 경우도 많고, 또 몇몇 사회 이슈의 경우에 있어서는 기독교인들이 분열을 가중시키는 경우도 많다. 그러다 보니 기독교는 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으며 기독교인들도 (특별히 정치적인 사안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을 비난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갈등이 사라지고 기독교 신앙을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서로 존중하고 공생할 수 있는 문화가 생기길 바라는 마음이다. 물론 그러려면 기독교인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다. 하지만 기독교와 신도들을 ‘개’ 취급(예컨대 개독, 개독교)하는 문화도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있다. 신도 개개인의 다층적, 입체적 실존을 간과하고 순수 악으로 축소하고 단정하는 것도 그리 성숙한 태도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갈등 문제의 근본 원인을 찾고 싶었고, 이런저런 논문을 찾아 보던 중 사회 갈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학문 분야에 소위 ‘논쟁학'(study of argumentation)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중 내가 찾은 논문은 “‘Cognitive Systemic Dichotomization’ in Public Argumentation and Controversies”라는 글이다. 이 논문은 ‘기독교와 사회 분열’에 관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 분열의 근원에 대해서 잘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이해하고 기독교 관련 사회 문제에 적용한다면 갈등 해소를 위한 생각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이 포스트에 요약해 보려고 한다.

주의1: 이 포스트는 이 논문에서 내가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만 간추린 것이다. 그래서 엄밀히 ‘요약’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유용하게 생각한 부분들은 거의 직역 혹은 의역 수준으로 기록한 부분이 많은데, 그런 부분에 일일이 인용부호를 달지 않았다. 글의 전개 순서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별로 정리하였다. 이 글에서 ‘내가’라고 주어를 달지 않은 모든 부분은 위 논문에 나오는 내용임을 밝힌다.

주의2: 한국에서 이 분야의 전문 연구자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내가 임시로 ‘논쟁학’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영단어 ‘argumentation ‘은 ‘주장’ ‘논증’ 등 다른 방식으로도 번역할 수 있지만 이 논문이 주로 다루는 주제가 분열과 갈등이고 이를 일으키거나 해결하는 것이 argumentation이기 때문에 다소 온건한 표현인 ‘주장’ ‘논증’ 보다는 조금 거칠게 느껴질 수 있는 ‘논쟁’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하는 것이 적합할 것 같다는 판단에서 ‘논쟁학’이라는 말을 썼다.

합리적 주장의 직접 상호 교환(Direct Reasonable Argumentation)

논쟁, 불일치, 갈등은 우리의 일상에, 특히 공공 영역에 두루 퍼져 있다. 학자들은 다양한 이론을 통해 사회 갈등 문제의 해결 방안을 제시한다. 그 이론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것은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합리적 주장의 직접 상호 교환'(direct reasonable argumentation)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합리적 주장의 직접 상호 교환’은 너무 이상적이어서 잘 일어나지 않으며 따라서 사회 갈등 해소를 이루기 어렵다. 더구나 공공 담론은 주로 내집단(intra-group/ingroup)을 설득하여 집단 내 결속력과 책임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아울러서 외집단(other groups/outgroup)의 정치력 약화를 꾀한다. 심지어 표면적으로 외집단을 향하는 발화조차도 대부분 내집단 청중을 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의민주주의 정치 체계에서 정치적 논의는 엄밀한 의미에서 논의가 아니라 독백이다. 겉으로는 논의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특정 대상에게만 호소하는 힘을 갖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논의는 독백이다. 정치인들은 다수의 대중이 가진 생각을 읽어 치밀하게 계산된 말로 그들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따라서 정치적 ‘논의’는 사실상 자기 편에게 하는 말로 보아도 될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상호 집단간 합리적 주장의 교환’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주의: 나는 정치가들이 자기 지지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전혀 진정성 없는 계산된 말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치가들이 자기 편 여론을 파악하고 이에 부응하려고 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치밀하게 계산된 말로 유권자의 환심을 사려고 하는 것도 이상할 것은 없다. 오히려 이러한 상호작용은 바람직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유권자의 심리나 여론을 조작할 목적으로 거짓을 유포하는 행위일 것이다.

불화와 갈등의 요인: 인지 양분화 현상(Cognitive Systemic Dichotomization/CSD)

주의: 나는 여기서 systemic이란 표현을 ‘체계적’이라거나 ‘조직적’이라는 표현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본다. 내가 이해하기로 이 논문에서 systemic 이란 표현은 지엽적으로 일어나는 단편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광범위하게 반복하여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systemic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현상’이라는 말을 붙였다.

갈등 주체간 합리적 주장의 교환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갈등과 분열이 생기는데 이 논문에서는 이를 ‘인지 양분화 현상’이라고 부른다. 물론 양분화 현상이 단순히 인지(cognitive)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CSD는 가장 우선적으로 인지 영역에서의 양분화를 말하는 것이며 이는 연쇄적으로 인식 영역(epistemic)으로, 그리고 감정 영역(emotive)으로 확장된다.

현대의 복잡한 사회, 정치 체계 속에서 하나의 집단 인식을 형성하기란 불가능하다. 우리는 인지, 감정적 선입견으로 단순화, 도식화한 지식을 도출하며 이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즉 사람들은 자기가 소속된 집단이 만든 도식화된 지식에 의존하며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따라서 다양한 지식, 다양한 정체성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매우 고립된 것처럼 보이는 하나의 이슈도 이와 연계된 수많은 다른 문제들과 복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정부 지원 주거 시설'(government supported housing)에 대한 의견 불일치는 단순히 정부의 일개 시책에 대한 찬반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정의, 정부 예산 사용의 우선 순위, 우선 순위의 기준이 되는 이념, 그에 따른 다른 예산 항목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일 등 매우 많은 문제와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예시로 든 이 문제는 경제, 공학, 법, 교육, 사회학, 안보, 정책 결정 등 다수의 분야를 동시에 연구하여 풀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식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그 지식에 대한 수용자의 이해도 다르기 때문에, 정부 지원 주거 시설 마련에 대한 정책 결정과 실행,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공공 영역에서의 평가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회 현상의 다양한 해석과 지식의 양산은 이에 상응하는 만큼의 다양한 정체성을 생산해 낸다. 정체성의 기반이 되는 해석과 지식은 집단과 구성원을 대표한다. 사회 문제에 대하여 개인 혹은 집단은 정체성에 걸맞는 입장을 결정하고 그 결정을 최대한 공공 영역으로 확산시켜 자신에게 혹은 내집단에게 이득을 주고자 한다. 비록 스스로는 공공의 이득을 위한 결정이라고 주장하지만 외집단에서 혹은 타집단에서는 이를 개인 혹은 내집단의 이득을 위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따라서 어떤 결정이든 절대적 공공의 선이라고 주장하기는 어렵다. 이권 쟁취의 과정은 결국 감정을 자극하게 된다. 세계관 혹은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이해의 차이는 인지-인식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감정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정체성 형성을 통해 자극된 감정이나 정서는 내집단(intra-group or ingroup)의 우월성(도덕적, 합리적, 논리적 등)을 확보하고자 하며 반면에 외집단(outgroup)은 평가 절하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심리 반응으로 이어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외곡이 일어난다. 앞서 말한 것처럼 도식화된 지식은 단순화된 지식이며, 총체를 보지 못하게 한다. 단순화된 지식은 자기 편에게만 호소하는 힘을 갖는 독백 성격을 갖게 되고 내집단의 우월성을 위해 외집단의 총체적 실상을 극히 ‘악마화’하여 외곡된 시각을 갖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외집단-내집단의 불화와 갈등은 심화된다.

‘상호 집단간 합리적 주장의 교환’이 일어나려면 CSD를 극복해야만 한다. 물론 단순화, 극단화 양상을 지양하고 화합을 모색하는 방식의 사고도 가능하지만,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한쪽 편에 안정적으로 속하려는 경향이 있다. 특정 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외집단의 가치를 최대한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만들어 자기가 속한 집단의 우월성(도덕적, 이성적, 가치 판단적 등등)을 확인시켜 준다. 사람들은 극단화, 진실에 더 가까운 복합적 ‘사실’ 묘사에 비해 단순화된 주장들에 더 매료되거나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집단의 양분화가 이루어진다.

신념의 양산

위에 언급한 것처럼 아무리 단순한 하나의 공공 이슈도 대단히 복잡한 문제들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다양한 지식과 정체성이 생산된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성이 대체로 양분화 현상으로 귀결되는 이유는 한 개인이 광범위하고 깊이 있는 지식으로 주체적 견해를 갖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념은 주로 집단적으로 양산되는데, 집단 내 상호작용망(network)은 구조에 있어 (수평적일 수도 있지만) 주로 수직적이다. 아무래도 교육 기관, 전문가 협회, 전통, 관례 등의 요인이 ‘인식적 권위'(epistemic authority)를 갖기 때문에다. 이는 마치 차를 운전하며 다리를 건널 때 그 다리가 많은 교통량을 버틸 수 있도록 공학 전문가에 의해 설계되었다고 의례 믿고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는 모든 다리의 공학적 안정성을 일일이 검토한 후 다리를 건너는 것이 아니라 그냥 믿고 건넌다. 이와 마찬가지로 특정 공공 이슈에 대해서도 우리가 신뢰하는 교육 기관이나 전문가들의 의견 혹은 전통과 관례를 ‘당연히’ 권위 있게 받아들이고 더이상 의문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식적 권위’를 가진 개인과 조직이 창출하는 의견은 사회 갈등 문제 해결 혹은 조장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이 생산한 지식이 집단의 선택으로 이어지며 신념의 바탕이 되고 그 집단의 의견을 공식적으로 대표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일반적인 한계는 인식 기준을 단순화하려는 경향이다. 그래서 생산되는 지식이나 신념도 이에 따라 양분화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고, 이를 선택하는 대중도 양분화 된다. 강한 신념은 사회 분열의 초석이 될 수밖에 없다.

양분화된 집단은 불화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각 집단은 도식화된 지식을 바탕으로 특정 이슈에 대한 긍정 관점과 부정 관점을 가진다. 그리고 각각은 상대 입장보다 자신의 입장을 고수해야 할 충분한 합리적 이유를 가진다. 대중은 자기 집단의 의견이 집단적 권위를 가지며 주관적이거나 선입견에 사로잡힌 생각이 아니라고 믿는다. 즉 집단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판단과 선택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상대방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둘 중 하나만 진실이어야 한다는 관념을 가진다.

정치를 통한 갈등 해소의 한계

사회적 갈등은 앞서 말한 것처럼 갈등 주체들간의 직접적, 합리적 의견 교환으로 잘 해소되지 않는다. 신념이 오피니언 리더나 인플루언서에 의해 집단적으로 형성되는 것처럼 대의민주주의 사회에서 갈등 해소는 사실상 정치 제도에 맡겨져 있다. 그런데 정치적 논의가 ‘합리적 의견 교환’으로 합의에 이를 가능성 역시 크지 않다. 원리적으로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의 필요와 기대에 부응하려고 한다. 공공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는 방식은 대중 매체, 성명서 발표, 데모, 로비, 여론 조사, 풍자 등인데 이를 통해 정치권은 대중의 요구와 필요를 파악한다. 정치는 권력 유지를 위해 대중의 목소리를 듣고, 대중은 정치권의 결정에 동의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결정하는 상호의존적 관계가 형성된다. 따라서 오피니언 리더나 인플루언서들의 이슈에 대한 논쟁은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양방향 소통이 합리적 주장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발상은 순진한 생각이다. 공공 이슈에 대한 결정은 압력 행사, 교묘한 조작, 교섭과 거래, 미사여구를 동원한 화술, 작위적 해석 등으로 가득하다.

갈등 해소의 요소

갈등 해소를 위해서 중요한 것은 어떤 주어진 이슈에 대해서 양분화 현상이 나타날 때 반드시 양측 중 하나 혹은 지지와 반대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열린 토론을 할 수 있고 양측의 의견을 수렴하거나 절충한, 유연하고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양분화에 빠져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유지한 채 양극화된 생각으로 상대방을 제압하거나 논박하여 공공 이슈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분열만을 양산해 내게 된다. 따라서 갈등 해소를 위해서 우리는……

  1. 상대방에 대한 적대감을 내려 놓아야 한다.
  2. 상대방의 합리성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3. 나의 불합리성을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4. 혹은 나의 관점이 모종의 실수 때문에 형성된 것이라면, 가령 부분적이거나 잘못된 정보의 습득으로 형성된 관점이라면 정보를 수정할 때 관점은 수정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개인이 습득한 정보를 검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회적 담론은 압력 행사, 교묘한 조작, 교섭과 거래, 미사여구를 동원한 화술, 작위적 해석 등으로 진실을 호도하는 경우가 많고 합리적 주장의 상호 교환을 지향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5. 모두를 만족시키는 완전한 합의란 없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6. 다양성과 불일치는 사회 발전에 기여함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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