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창세기 25장 29~34절은 그 유명한 야곱이 장자의 권리를 획득하는 일화이다. 이 단락은 흔히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자기 장자의 명분을 팔아 넘긴 사건으로 이해된다. 개역개정 성경은 이 단락을 번역할 때 ‘떡’이나 ‘팥죽’ 등의 용어를 써서 ‘토착화’했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서는 ‘에서’ 하면 팥죽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당연히도 에서는 팥죽을 먹은 것이 아니다. 토착화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이런 경우 원문을 보면 필연적으로 새롭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고, 그런 새로움이 유발하는 흥미도 쏠쏠히 있다. 그래서 이 포스트에서는 원문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자 한다.

  1. 야곱이 요리하던 음식은 팥죽이 아니다. 팥죽은 처음 성경이 한글로 번역될 당시  타문화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었던 한반도의 사람들이 ‘붉은 음식’을 표현할 수 있는 손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매우 국제화되어서 세계 각지의 음식 문화에 대한 이해가 높기 때문에 이 부분을 굳이 ‘팥죽’이라고 이해할 필요가 없다. 원문에 따르면 에서는 요리하고 있는 야곱에게 “하아돔, 하아돔 핫제”를 달라고 한다. ‘하아돔’은 ‘그 붉은 것’이라는 뜻이다. 그는 음식의 이름도 제대로 말하지 않고 그냥 ‘하아돔,’ 즉 ‘그 붉은 것’이라고 다소 교양 없이 표현하며, 그것도 매우 황급한 투로 두 번 연속 ‘하아돔, 하아돔 핫제(this, such),’ 즉 ‘붉은 것, 붉은 것 그것’이라고 말한다.
  2. 에서의 먹는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도 에서를 교양 없는 모습으로 그린다. 그는 ‘그 것을 좀 먹자’라는 일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흡입하게 해 달라”라는 식의 거친 표현을 사용한다. 여기에 먹는다는 말을 대신하여 쓰인 히브리어 단어, ‘라아트’는 영어로 번역하면 ‘to swallow’이며 사역형이 쓰였다. “나로 (그것을) 삼키게 하라”라는 말, 즉 “붉은 거, 그 붉은 거 그거 내가 흡입 좀 하자!”라는 식의 말투를 쓴 것이다.
  3. 그렇다면 그 ‘붉은 것’은 무엇일까? 당연히 팥죽은 아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야곱이 ‘나지드’를 ‘지드’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나지드’와 지드’는 마치 ‘꿈’과 ‘꾸다’라는 말이 연결되어 있듯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표현이다. ‘지드’는 ‘요리하다’라는 뜻인데, 아마도 재료를 가열하여 하는 조리를 의미하는 듯하다. 따라서 ‘나지드’는 조리된 음식인데 특별히 가열되어 조리된 음식이다. 그런데 그 색이 붉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아서는 과연 이 음식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4. ‘붉은 것’의 정체는 창 25:34절에서 에서가 ‘먹고 마셨다’는 표현으로 조금 더 구체화된다. 야곱은 에서에게 빵(레헴, 이 말은 베들레헴 즉 빵집에 사용된 단어이다)과 ‘나지드 아다쉼’을 주었다(아다쉼=렌즈콩). 그리고 에서는 이를 ‘먹고 마신 것’이다. 에서는 ‘레헴'(빵)을 먹고 ‘나지드 아다쉼'(렌즈콩 요리)을 마셨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먹고 마시다’라는 표현은 식사를 했다는 통상적인 표현일 수 있으니 ‘나지드 아다쉼’이 꼭 음료의 역할을 했다고 단정짓기는 어렵다. 그렇게 보면 ‘나지드 아다쉼’은 빵에 곁들여 먹는 인도 카레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콩을 가열하여 만든 음식은 ‘마시는 것’이라기 보다 역시 ‘먹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음료는 따로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콩을 가열하여 ‘마실 수 있게 만든 것’은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팥죽’이 연상된다. 영어권에서는 이를 ‘스튜’의 일종으로 이해했다(NRSV는 lentil stew라고 번역함). 이 음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렌즈콩으로 만든 것으로 빵을 먹을 때 뻑뻑하지 않도록 곁들여 먹는 마실 수 있는 것이나 찍어 먹는 것이 그 붉은 것의 정체인 듯하다.
  5. 한국 기독교인들(개신교인들)은 에서가 너무 배가 고픈 나머지 그의 장자의 권리를 팥죽 한 그릇에 야곱에게 팔아 버렸다고 이해한다. 그런데 사실 이 ‘구전’은 에서의 경솔함을 과장해서 보여주며, 또 문화적으로도 ‘토착화’되어 있어 본래 본문이 보여주는 그림과 다소 동떨어져 있다. 에서가 경솔하고 교양이 없었던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그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 넘긴 것은 아니다. 그는 야곱이 능수능란하게 요리한 맛있는 한 끼 식사를 대접받았다. 그 음식은 빵과 유사한 음식, 렌즈콩을 가열한 국물 요리, 그리고 음료로 구성되어 있었을 것이다. 단지 ‘팥죽 한 그릇’은 아니었다.

illustrators of the 1728 Figures de la Bible, Gerard Hoet (1648-1733) and others, published by P. de Hondt in The Hague in 1728,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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