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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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할례라는 말: 할례는 일종의 ‘포경’ 수술이다. 한국에서는 위생을 위해 이 수술을 받지만, 고대로부터 유대인들에게 이 수술은 종교 의식이었으며, 그 기원은 아브라함이 99세에 야웨로부터 아들을 약속받으며 맺었던 계약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창17). 이 의식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מול()이다. 영어로는 ‘to circumcise’로 번역한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에 상응하는 ‘동사’가 없다. ‘포경 수술을 하다‘라는 표현은 ‘의식’이라기보다 ‘수술’이라는 의미가 강해서 쓸 수 없다. ‘포경하다‘라는 말도 쓸 수 없다. 왜냐하면 ‘포경’의 사전적 의미가 “귀두가 포피에 싸여 있어 바깥으로 노출되지 못한 상태“(뉴에이스 국어사전)를 말하기 때문에 ‘포경하다’라는 표현 자체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할례‘는 이런 번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할례에서 ‘할‘은 벨-할()자이며 ‘‘는 예도-례()자이다. 즉 ‘베는 의식‘이란 말이다. 우리말에는 히브리어 מול(물)에 상응하는 동사가 없으니 이렇게 ‘할례‘라는 말을 만들어 ‘행하다’나 ‘받다’라는 말과 붙여 번역할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히브리어 성경에서 실제로 ‘할례‘라는 명사출애굽기 4장 26절에 단 한 번 등장하며 다른 용례는 모두 동사이다.

참고: 출애굽기 4장 26절에서 쓰인 명사, ‘할례’는 מולה(물라, 여성형 명사)의 복수형 מולת(물로트, 여성형 복수, 불완전 서법)이며, 남성에게 국한된 의식임에도 불구하고 문법적으로 ‘여성형’인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2. 할례의 위생적 기능: 포경 수술의 보편적인 목적은 청결과 건강일 것이다. 할례가 비록 종교 의식이기는 하지만, 개인 및 공중 위생을 지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 때문에 할례를 시행하는 것이라는 사실도 율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레위기의 ‘정결법'(purity code, 11-19) 중 12장에는 ‘산모에 대한 규정’이 나오는데 그 규정 중 하나가 산모가 아이를 낳은지 8일 만에 아들의 할례를 행하는 것이다. ‘산모에 대한 규정’은 미생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고대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보건 위생을 지켜내기 위해 제정된 산모에 대한 법규이지만, 그 규례 중 예외적으로 남자 아기에게 행하는 할례가 등장한다. 보건 위생과 관련된 정결법에서 할례법이 등장하는 것은 할례 역시 위생을 목적으로 했던 것임을 말한다.

3. 할례의 특수성: 그러나 위에 언급한 것처럼 할례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맺은 계약의 핵심요소이며, 남성의 할례 여부는 하나님의 백성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르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구약성경 전체를 걸쳐 나타난다. 그냥 평범한 정결법 규례들 중 하나로 볼 수 없다는 말이다.

할례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가장 극적 사건 중 하나는 아마도 출애굽기 4장의 ‘피 남편‘ 일화일 것이다. 본문에 따르면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고통받는 동포들을 바로의 압제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미디안에서 애굽으로 가족과 함께 길을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야웨께서 나타나시어 느닷없이 모세를 죽이려 하셨다. 아내 십보라는 (어떻게 알았는지) 재빨리 아들의 포피를 베어 긴급히 할례를 행했고, 그제서야 야웨께서 모세를 놓아 주셨다. 야웨께서 가기 싫다는 모세를 설득하여 애굽에 보내셨는데, 이제 막 길을 나선 모세를 죽여버리려고 하셨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만큼 할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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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과연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일까? 할례가 중요하다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다 하더라도 모세를 죽이기까지 하시려는 야웨의 조치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본문을 꼼꼼히 읽어 보면 야웨의 극단적 조치를 설명하는 한 가지 단서가 있다. 그 구절은 출 4:22-23이다. 한 번 읽어 보자.

22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

23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

개역개정

이 본문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이다. 이스라엘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99살에 야웨로부터 받은 할례-계약(언약)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때 아브라함은 ‘포피를 베는 의식을 행하지 않는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는 말까지 들었다. 오늘 본문과 아브라함의 계약/언약을 종합해 보면 결국 이스라엘은 할례를 행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가 된 것이다(즉 할례=하나님의 백성=하나님의 자식). 그런데 애굽은 할례를 받은 하나님의 장자를 억류하며 학대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할례(=계약)로 장자 삼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애굽의 장자에게 그 죄값을 치르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모세의 여행은 평범한 여행이 아니다. 할례의 계약을 통해 하나님의 장자가 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의 모든 장자를 죽이러 가는 길이다(출 4:23). 그런데 모세는 정작 자기 자신의 장자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의식인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모세의 아들은 모세의 장자일 뿐, 하나님의 장자의 편에 속하지는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의 아들은 애굽에 도착했을 때 할례(장자)의 표식이 없어 애굽의 장자들과 함께 죽을 처지에 놓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떻게 모세가 자기 장자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을 수 있지?”라는 의문이 든다. 할례받지 못한 자(애굽)의 장자에게 죽음의 보복을 하러 가는 모세가 정작 자기 자신의 장자에게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다는 것은 대단히 큰 실책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야웨의 조치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 중요한 사안의 지도자로 세운 모세가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용납할 수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 사건에서 야웨가 (아들이 아닌) 모세를 죽이려고 하신 것은, 지금 그가 가는 길이 곧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라는 엄중하고 무서운 사실을 모세가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적절한’ 조치라고 이해해 볼 수 있다. 모세는 할례(언약)를 받은 자(하나님의 장자)와 그렇지 못한 자(애굽과 바로의 장자) 사이를 가르는 무서운 여행을 하고 있다. 출애굽기 4장 본문의 일화는 장자 심판에 대한 철저한 이해 없이는 모세조차 애굽에 돌아갈 이유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Photo by Samantha Hurley from Bur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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