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송아지 사건의 전말

Louvre Museum, CC BY-SA 2.0 FR https://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2.0/fr/deed.en, via Wikimedia Commons

들어가는 말

전에 올린 “모세는 시내 산에 몇 번 올랐나“라는 포스트에서 나중에 자세히 다루기로 한 내용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황금 송아지 사건’이다. 출애굽기 24장 12절에서 산에 오르라는 명령을 받은 모세는 6차 등반을 시작하여 40주야 동안 율법과 하나님이 직접 쓰신 계명의 돌판을 수여받고 32장에서 하산하는데, 이때 황금 송아지 사건이 터진다. 내 추측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을 받아 시내 산에 올랐고 40주야를 산에 머물며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하나님과 대화하며 율법과 돌판을 수여받는다. 그리고 마침내 산에서 내려오게 되는데 모세는 산에서 다 내려 오기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빠져 송아지를 섬기며 시끄럽게 축제를 벌이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에 화가난 모세는 하나님께 받은 돌판을 집어 던져 깨 버렸고, 이 사건을 다 수습한 뒤에 다시 산에 올라 같은 내용의 돌판을 수여 받는다.

이러한 전개는 전체적으로 보자면 출애굽기 본문과 완전히 동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이 사건은 모세가 산에 오르락내리락한 것만큼이나 복잡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그 부분을 정확히 한 번 파악해 보자.

본론

최대한 단순, 명료하게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질문과 답의 구조로 이야기를 진행해 보겠다.

Q. 백성들은 왜 금 송아지를 만들었나?

출 32:1 백성들은 모세가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자 그의 행방이 묘연해 졌다고 여기며, 이제 그들을 인도해 낸 신을 능동적으로 섬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모세의 말에만 의존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뭔가 구체적인 대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이윽고 금을 모아 송아지의 모습으로 신의 형상을 재현했다. 이는 십계명이 지시하는 바, 피조물 중 어떤 형상으로도 신의 모습을 만들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것이다. 참고로 그들은 야웨가 아닌 다른 신을 섬기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 송아지의 형상이 바로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낸 신, 즉 야웨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4-5절). 또한 고대 근동에서 발견된 비문들 가운데 야웨를 소의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본문에서 송아지는 지도자가 부재했던 상황에서 자신들을 구원한 신을 구체적으로 대상화하고자 했던 심리가 작용하여 만든 우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참고: 백성들이 만든 송아지상이 야웨를 피조물의 형상을 빌려 재현한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신(예컨대 가나안의 EL이나 이집트의 소신 APIS를) 만든 것인지는 사실 명확하지 않다. 그들이 송아지상을 만들고 ‘야웨의 축일’에 화목제를 드리며 먹고 마시고 뛰놀았다는 것은 그 송아지를 야웨로 인식했다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1절에서 그들은 아론에게 ‘우리를 위하여 신들(엘로힘)을 만들라’고 표현했으며, 아론은 송아지를 만든 후 ‘이것들(엘레)이 너희의 신들(엘로힘)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송아지는 하나만 만들었지만 백성들이나 아론은 모두 송아지를 ‘복수형’, 즉 신들이라고 지칭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만든 송아지 신상은 야웨가 아닌 다른 신으로 볼 여지가 있다. 그래서 이 포스트에 처음 등장하는 이미지는 이집트의 소신 Apis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소가 무엇을 상징하든 백성들의 행위는 십계명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계명을 어겼다는 데에 방점이 있다.

* 참고: 오경의 네러티브는 이처럼 율법을 어겼을 때 겪게 되는 처벌을 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 오경의 중심에는 토라, 즉 율법이 있고 네러티브는 그 율법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예시들로 이해할 수 있다. ‘토라’, 즉 ‘율법서’라고 불리는 오경이 그야말로 ‘토라’일 수 있는 이유는 그 중심에 율법이 있기 때문이다. 오경의 네러티브는 율법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니다.

Q. 백성들이 십계명을 위반하고 야웨를 송아지상으로 재현했을 때 모세와 야웨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나?

7절에 보면 야웨는 백성들의 타락을 발견하고 이미 모세에게 그들이 부패했음을 알려 주셨다. 야웨는 그런 백성들에게 진노했고 그들을 멸절시키고 모세로부터 다시 언약의 백성을 일으키시겠다고 했지만(10절), 모세는 야웨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지켜 달라고 애원했다(13절). 그러자 야웨는 뜻을 돌이켰고 백성에게 벌을 내리지 않기로 했다(14). 이후 모세는 하산하게 된다.

Q. 모세가 야웨와 대화를 마친 후 여호수아와 함께 산에서 내려 오다가 백성들로부터 들려 오는 요란한 소리를 듣고 보인 반응은 무엇인가?

여호수아는 모세의 분노를 염려하여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난다고 보고했으나 모세는 그 소리가 축제를 벌였을 때 들리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챘다. 정황상 그는 이미 백성들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알고 있으며, 사실 이미 야웨의 용서로 이 사건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한다. 다만 모세는 내려 가서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야웨께서 극도로 분노하셨다는 것을 알리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교육해야 했다. 하지만 모세는 그들이 송아지 앞에서 춤 추는 것을 보고 크게 노하여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린다. 하나님이 진노하셨을 때 침착하게 대응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지금 모세의 이 반응은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모세가 송아지 사건을 이제 와서 처음 알게 되었다면 이해가 가는 반응이지만, 이미 하나님의 화를 잠재우고 형벌을 받지 않게 한 장본인이 이렇게 분노하며 반응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Q. 모세가 진중에 돌아와서 한 행동은 무엇인가?

모세는 ‘야웨의 편’에 있는 자는 다 자신에게로 오라고 명령했고, 이때 레위 지파가 모세의 편에 섰다. 모세는 레위인들로 하여금 계명을 어긴 자들을 처단하게 하여 약 3000명을 처형시킨다. 어떤 사람들이 죽고 어떤 사람들이 살아 남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없다. 산 사람은 왜 살았고 죽은 사람은 왜 죽었는지도 알 수 없다. 본문의 맥락상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우상을 섬긴 것으로 보이는데 부분적으로만 처벌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Q. 3000명 처형 사건 후에 모세가 취한 행동은 무엇인가?

모세는 마치 야웨의 진노를 자기 자신이 중재한 일이 없었던 듯이 야웨께 기도하며 용서를 구한다. 심지어 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는다면 야웨의 책에서 자기 이름을 지워 달라는 말까지 하며 백성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러나 야웨는 모세가 산에 있었을 때 이미 진노했었고, 모세는 이를 중재했었고, 야웨는 마음을 바꿔 백성들을 벌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따라서 모세의 이 행위는 앞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으며, 나아가 모세가 명령한 집단 처형도 야웨의 용서가 이미 주어진 상태에서 이루어진 일이므로 최종 형태의 본문에서 그의 행위는 정당화되기 매우 어렵다.

Q. 모세는 언제 다시 산에 올라 돌판을 받았으며 그 돌판에 기록된 내용은 무엇인가?

황금 송아지 사건은 출 32장에 기록되었으며 이야기의 발단에서 마무리까지 모두 32장이 담고 있다. 다만 모세가 깨뜨린 율법 돌판을 다시 수여받는 이야기는 32장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고 있는 기독교인 독자 입장에서 보면, 돌판을 다시 수여받는 내용은 33장에 이어 나와야 한다. 그런데 의외로 돌판의 재수여는 34장에 가서야 나타난다. 33장은 이상하게도 시내 산을 떠나라는 명령이 주어지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는 내러티브의 흐름을 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를 떠나는 장면은 민수기 10장에 가서야 이어지게 된다.

모세가 돌판에 받는 내용은 십계명이 아니다. 사실 첫 번째 돌판에 쓰여진 내용도 십계명은 아니었다. 십계명은 출 20장에서 (아마도 하나님에 의해) 직접 선포되었다. 이때는 모세가 3차 등반과 하산을 마쳤을 때이다. 소위 ‘증거판’이라고 불리는 돌판이 처음 수여된 때는 모세가 여섯 번째 산에 올랐을 때(출 24장)이며, 이때 모세는 방대한 양의 성막과 제사 관련 율법을 계시받는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직 돌판 둘을 주셨으므로 이때 계시받은 율법이 그 돌판 둘에 다 쓰여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첫 번째 돌판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두 번째 돌판에 쓰인 내용(출 34:11-26)은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도입부(11절)
  • 1계명(12-16절): 가나안인들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과 결혼하지 말고, 궁극적으로 그들의 신을 따르지 말 것
  • 2계명(17절): 신상을 만들지 말 것
  • 3계명(18절): 무교절을 지킬 것
  • 4계명(19-20a절): 처음 난 것을 하나님께 드릴 것
  • 5계명(20b절): 하나님께 나올 때는 반드시 예물을 준비할 것
  • 6계명(21절): 안식일을 지킬 것
  • 7계명(22절): 칠칠절/초실절을 지키고 수장절을 지킬 것
  • 8계명(23-24절): 남자들은 매 년 세 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순례를 할 것
  • 9계명(25절): 제물의 피를 유교병과 함께 드리지 말 것
  • 10계명(26절): 첫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께 드리며 어미의 젖으로 새끼를 삶지 말 것.

위 열 개의 계명은 많은 부분 제의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를 출 20장의 계명과 구분하기 위해 소위 ‘제의 십계명'(Ritual Decalogue)라고 부른다(출 20장의 십계명은 윤리 십계명(Ethical Decalogue)이라 부른다). 하지만 10개의 개명을 나누는 기준이 애매하다. 많은 학자들이 계약법전(Covenant Code, 20:22-23:19)을 이 계명들의 확장판이라고 여기거나 아니면 거꾸로 이 계명들을 계약법전의 축소판으로 여기기도 한다.

나가는 말

우리는 이 이야기에 최소 두 개의 전승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모세가 산에서 분노하신 야웨를 중재하여 백성들이 용서를 받게 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모세가 뒤늦게 백성들의 타락을 파악하고, 자기 판단으로 백성들을 처단한 후에 야웨께 살아남은 백성들의 용서를 구한 내용이다. 또한 십계명의 내용을 통해서도 우리는 출애굽기 안에 다른 자료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오경이 다양한 자료나 전승의 복합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면 당연히 오경의 모세 저작설을 고집하기도 어려워진다. 그렇다면 오경이 가진 내용이 역사적 진실을 담고 있다는 관념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성경은 역사책이 아니다. 역사책이 아닌 문서를 역사책처럼 읽는다면 문제가 생긴다. 결국 성경은 어떤 책이며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문제가 대두된다. 단순한 문제는 아니지만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언제가는 돌파해야 할 매우 중요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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