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즈음에

Photo by Dex Ezekiel on Unsplash

부활절과 더불어 기독교의 가장 큰 절기는 단연 크리스마스이다. 크리스마스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재정된 기독교 축일로 빛이 어둠을 이기기 시작하는 상징성을 갖는 날로 지정되었으며, 우리나라의 동짓날과 가까운 날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예수 탄생의 역사적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암흑이 장악한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를 기념하기 위해 동짓날이 갓 지난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의 초림 이후 과연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게 되었는가?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물론 과거에 소외되고 억압받던 많은 사람들의 인권과 삶의 질의 문제가 더 많은 사회적 관심을 받게 되었고 다양성이 더 존중 받는 방향으로 세상이 변화하고 있다. 그러니 누군가 세상은 여전히 암흑에 장악 당했다고 평가한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평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충분히 많은 악으로 채워져 있음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법치주의의 농락, 자본주의의 심화가 불러 오는 양극화 현상, 양극화 현상에서 파생되는 수 많은 불평등과 부조리, 과학과 기술의 발전에서 소외되는 계층의 형성 등 세상은 새로운 문제들을 지속적으로 양산해 왔다. 예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는데, 2000여년이 지난 지금도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지 않다. 과연 예수의 초림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예수는 2000여년 전 팔레스타인의 작은 마을에 탄생하셨다가 길지 않은 생애를 사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보통 30살에 공생애를 시작하셨고 3년간 사역을 하셨다고 이해하고 있으니 실질적으로 예수가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기간은 단 3년에 불과하다. 복음서의 기록을 따르면 예수는 이 기간 동안에 많은 선한 일들을 하셨고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알리셨다는 점에서 예수는 분명히 ‘큰 일’을 행하셨다. 그러나 시간적 한계와 지역적 한계, 그리고 그의 행적을 퍼뜨릴 수 있는 매체의 절대적 한계 때문에 예수의 행적은 세상을 빛으로 채울 수 있을 만큼 큰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물론 예수를 추종하는 엄청나게 거대한 집단을 형성한 것만으로도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 집단이 세상을 빛으로 채웠는가에 대한 평가에 대해 우리는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렵다. 따라서 만일 예수 이후의 세상이 빛으로 가득해야만 했다면 그것은 예수를 세상에 보내셔서 세상을 빛으로 채우고자 하셨던 성부 하나님의 압도적인 능력으로 이루어져야만 하지 않았을까?(참고: 만일 예수의 빛이 ‘예수믿고 천국 가는’ 것만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글은 별 의미가 없다)

그렇게 보면 예수의 초림 사건과 관계 없이 성부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를 빛으로 충분히 채우실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인간 역사가 어둠으로 가득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이 역사를 관리하신 것이 아니라 방치하신 것이라는 논리적 귀결에 도달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성부 하나님을 ‘역사와 생사화복의 주관자’라고 고백하지만 지나온 인류의 역사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사건들로 가득하다. 절대선이신 하나님께서 만들어 오신 역사라고 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다. 빛으로 오신 예수의 초림 사건 전이든 후든, 사실상 세상이 빛으로 가득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신의 세상에 대한 의도를 미궁에 빠뜨린다.

어쩌면 하나님이 역사와 생사화복의 주관자라는 생각은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의도를 왜곡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세상을 압도적으로 통제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만일 하나님이 분명한 인과율에 따라 인간의 죄를 심판하고, 또 마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의 어떤 초월적 존재들 처럼 나타나 그 결과를 분명히 ‘시연’해 오셨다면 지금쯤 세상은 남아난 사람이 없거나 아니면 훨씬 더 좋은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물론 ‘지옥’에서 그 존재들이 누군가를 심판할 때 그 정당성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에서 분명 차별화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하나님은 세상을 빛으로 가득하게 만들어 버리지 않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사실 인간은 더 이상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 단지 신적 통제에 따르고 복종하는 본능을 가진 존재가 되어야 세상은 빛으로 가득하게 되며, 그렇다면 인간의 존재 이유는 없어져 버린다.

예수의 초림을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빛이시라는 사실을 부각시키자면 예수의 초림은 아마도 우리에게 빛과 어둠의 줄다리기를 시작하라는 신호탄이었을 수도 있다. 예수의 편에 서서 그의 빛이 무엇이었는지 이해하고 흉내내어 더 많은 빛이 세상을 채우게 하라는 메시지였을 수도 있다. 세상이 여전히 이렇게 어두운 이유는 결국 기독교가 그 빛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암흑을 퍼뜨리며 자기 행위를 빛으로 착각하고 있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쓰는 이 블로그의 내용들을 가지고 악하다고 평가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평소보다 더 암담한 마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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