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7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개역개정 여호수아 1장

여호수아 1장 7절에 등장하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라는 표현은 격언류의 책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일종의 경구처럼 들린다. 일례로 이스라엘의 지혜 전승(the wisdom tradition)에 속하는 전도서(코헬렛)는 인생의 모든 일이 다 허무하다고 외치는 책으로 유명한데, 본문의 7장 16-17절에 따르면 코헬렛은 사람이 지나치게 의롭거나 악하거나 하면 패망하거나 죽을 위기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 결과를 쉽게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너무 극단으로 가지 말고 중도를 걸으라는 취지의 조언으로 들리는 말을 한다. 여호수아 1:7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말 역시도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그냥 들으면 마치 중용의 도를 가르치는 듯한 말로 들린다.

그런데 여호수아서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명령은 ‘중도’를 걸으라는 격언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뭔가 심오하고 복잡한 숨겨진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며, 그 의미는 문맥을 보면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여호수아서는 모세가 사망한 후 야웨께서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라는 명령으로 시작한다. 여호수아 1장 7절은 그 명령 중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야웨는 비록 모세라는 위대한 지도자가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과 함께 할 수 없으나 야웨가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게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라고 명령한다(6절: 하자크 베-에마츠). 다만 야웨는 여호수아에게 형통의 조건을 제시하시는데, 그 내용의 핵심은 “모세가 너에게 명령한 이 모든 토라(*율법)를 지키고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호수아 1:7에서 말하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는 명령은 형통하기 위해 반드시 율법을 지키야만 한다는 명령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한다. 율법의 길은 정해져 있다. 좌로 가는 것이나 우로 가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율법의 길을 벗어난, 잘못된 길이다. 좌나 우로 가는 것은 율법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다른 것이 아니다.

Photo by Loic Leray on Unsplash

원문을 보면 이 점이 더 확실해 진다. 개역개정 번역의 ‘치우치지 말라’라는 표현은 해당 구절이 중용의 도를 가르치는 표현처럼 느껴지게 한다. 하지만 원문에 쓰인 표현은 ‘돌이키다'(turn) 혹은 ‘이탈하다'(go off)라는 뜻의 ‘쑤르’이며 그 부분을 직역하면 “그것으로부터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이탈하지 말라”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서 ‘그것’이라는 지시대명사의 선행사는 당연히 ‘이 모든 토라’이다. 영문 번역인 NRSV는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do not turn from it to the right hand or to the left.” 중요한 것은 ‘이것'(it=토라)으로부터 이탈하지 말라는 명령 부분이다. 좌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중간으로 가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토라의 중요성은 8절에서 다시 한 번 강조된다. 7절에서 ‘지켜 행하라’라는 표현은 8절에서도 거의 그대로 다시 반복되며 토라를 지키고 행해야함을 강조한다. 즉 야웨께서 모세를 떠나 보낸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토라’가 정해준 길을 가라는 것이며 어떤 일이 있어도 그 길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그가 강하고 담대하게, 두려움과 놀람 없이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는 근거라고 여호수아서는 말하고 있다.

*참고: 내가 한글 구약성경에서 주로 ‘율법’이라고 번역되는 히브리어 어휘를 되도록 ‘토라’라고 음역하는 이유는 ‘율법’이라는 표현이 한 가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사용된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율법’이라하면 많은 평신도들이 구약성경 전체를 의미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심한 오해이다. ‘토라’는 가장 넓게 보면 우리가 오경이라 부르는 다섯 권의 책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조금 작게 보면 특정 법전이나 법들을 의미하는데, 예를 들어 출애굽기에는 계약법전이 나오며 신명기에는 신명기법전이 등장한다. 레위기에는 성결법전과 정결법전이 등장한다. 그리고 가장 좁은 의미로는 오경 속의 특정 본문 속에서는 특정 법령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인다. 여호수아에서 ‘이 모든 토라’라는 표현은 당연히 오경 전체일 수는 없으며, ‘법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는데, 오경 속의 법전들이 같은 법에 있어 세부 사항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법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여호수아서의 저작 시기를 추정하여 당시 ‘토라’로 인정되어 전승되던 법전이나 이를 담은 문서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것이 바로 ‘이 모든 토라’가 지칭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오경 외에 따로 전승되고 있는 독립적인 법전들이 발견된 바가 없기 때문에 그 구체적인 법 조항들이 어떠한 것들이었는지 알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마르틴 노트에 따르면 여호수아서는 ‘신명기적 역사서’에 속하기 때문에 수 1:7의 ‘토라’는 신명기법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렇게 단정짓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이, 여호수아서에 등장하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행적이 신명기법전이나 신명기의 명령에 위배되는 점이 다소 등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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