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여호수아 1장 5절 번역

BHS

여호수아 1장 5절은 번역하기에 딱히 어려울 것이 없는 평이한 문장이다. 다만 이 문장은 대명사의 사용에 있어 조금 이상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한글 번역 성경에는 언어의 특성상 그 이상한 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문의 문제가 심오한 신학적 함의를 갖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번역은 그러한 이상한 점을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는 점은 알아둘 만 하다.

히브리어의 특성

히브리어는 ‘성’과 ‘수’를 구분한다. 예를 들어 다수의 명사들은 ‘남성’이지만 ‘토라'(율법), ‘호크마'(지혜) 등의 단어들은 ‘여성’이다. 그리고 ‘토로트’와 ‘호크모트’는 각 어휘의 복수형이며, 잘 알려진 ‘엘로힘’ ‘네비임’ 등과 같이 ‘~임’으로 끝나는 명사는 남성 명사의 복수형이다. 이런 경우 형용사가 해당 어휘들을 수식할 때 형용사도 ‘성’과 ‘수’를 일치시켜야 한다. 그렇다고 ‘남성’ 명사의 경우 말 그대로 ‘남성성’을 갖는다던지 혹은 ‘여성’ 명사의 경우 ‘여성성’을 갖는다던지 하는 것은 아니다. ‘토라’는 여성형이지만 토라가 여성의 전유물이라거나 여성과 관련이 있다거나 혹은 여성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버지’, ‘어머니’, ‘남편’, ‘아내’, ‘모세’, ‘여호수아’, ‘드보라’ 등과 같이 실제로 남성과 여성을 특정할 수 있는 어휘들은 당연히 문법적으로 ‘남성’ 혹은 ‘여성’이면서 동시 실제로도 ‘남성’ 혹은 ‘여성’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인칭대명사로 지칭할 때 당연히 남/여성을 구분하여 써야 한다. 예를 들어 ‘여호수아’를 인칭대명사로 받을 때는 ‘그’라는 3인칭 남성 단수의 대명사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수 1:5를 보자.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개역개정

이 구절은 야웨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시는 말씀인데, 야웨는 1인칭으로 여호수아는 2인칭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대명사를 모두 바꿔 보면 아래와 같다.

‘여호수아(네, 2남단) 평생에 ‘여호수아'(너, 2남단)를 대적할 자가 없으니리 ‘야웨'(내, 1공단)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여호수아'(너, 2여단)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야웨(내, 1공단)가 여호수아(너, 2남단)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개역개정의 수정

여기서 내가 이상하다고 말하는 부분은 여호수아를 ‘여성’으로 받은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아래를 보라.

본문의 다른 곳에서는 ‘여호수아’를 지시하는 인칭대명사로 모두 (당연히) 2인칭 남성 단수(2남단)를 사용했다. 위에 녹색으로 표시한 글자에서 “ㅜ” 처럼 생긴 기호는 모음 /ㅏ/이며 함께 쓰인 ך (카프)/k/소리가 나는 자음이다. 합성하면 /카/로 소리를 내며 접미사의 형태2인칭 남성 단수를 지칭하는 인칭대명사이다. 그런데 유독 한 경우(위에 노란 색으로 표시한 부분)는 점을 위아래로 두 개 찍은 형태로 되어 있다. 이는 모음이 아니라 단지 그 자음이 음절의 끝이라는 표시이며 따라서 해당 ך (카프)는 그 소리 자체로, 즉 /크/로 소리내야 한다. 여기서는 ‘임마크’이며 ‘너(2인칭 여성 단수)와 함께’라는 뜻이다. 여기에 올바른 표기는 ‘임므카’ 혹은 ‘임메카'(너와 함께), 즉 /카/로 끝나야 하지만 이상하게도 여기는 /크/로 끝났다.

*참고: ‘임마크’의 ‘임’은 ‘임마누-엘’의 ‘임’과 같은 단어이다. ‘임마누’의 ‘누’는 ‘1인칭 공성 복수’ 어미로 ‘우리’라는 말이며 ‘임’은 ‘함께'(with)라는 전치사로 ‘임마누’는 ‘우리와 함께’라는 뜻이며 이것이 ‘신’을 뜻하는 ‘엘’과 합성되어 ‘신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라는 말이 되었다.

맺음말

우리가 가진 히브리어 성경은 표기상의 오류를 종종 가지고 있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오류들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많은 설교자들이 고대의 유대인들이 성경을 얼마나 귀히 여겼던지 그들이 성경을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이 보존했고, 심지어 ‘야웨’라는 이름이 나오면 목욕 재계하고 다시 와서 글을 쓸 정도였다고 설교한다. 그러나 막상 히브리어 원전을 조금만 살펴 보면 그 말은 사실이 아니란 것을 금새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설교자들이 성경의 완전무결성을 믿고 싶어하는 이유는 이 책이 소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실수가 있을 수 없다는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기준은 정당화될 수 없다.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런 사소한 오류부터 매우 심각한 오류와 훼손이 히브리어 원전의 사본들에 수없이 많이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 엄청나게 많은 사본과 역본들 이 존재하며 그들은 서로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모든 문제들을 간과하거나 애써 무시하면서 단지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무결해야 하기 때문에 히브리어 원전도 완전무결하다는 관점을 갖는 것은 불합리하다. 더구나 확인도 안된 사실–고대 유대인들은 성경을 필사할 때 일점일획도 변경하거나 실수하지 않았으며 야웨라는 말을 쓸 때마다 모욕 재계했다–을 유포하면서까지 성경의 완전무결성을 강조하려는 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

성경은 어떤 책인가? 성경은 왜 하나님의 말씀인가? 성경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가? 이러한 질문은 무작정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자세나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완전무겨해야만 한다는 근거 없는 관점보다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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