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웨의 집 곳간(여호와의 집 곳간)은 어디?

Al_Khazneh_Petra.jpg: Graham Racher from London, UKderivative work: MrPanyGoff,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위 사진은 알-카즈네로 불리는 고대 페트라의 건물 유적이며 국고/창고(treasury)로 알려져 있다. 본문의 야웨의 집의 곳간(창고)와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고대 국고로 사용된 건물에 대한 상상을 돕기 위해 삽입했다.

문제 제기: 시대 착오(anachronism)

여호수아서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라고 하면 아마 여리고 성 함락 사건인 6장을 들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본문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야웨의 (언약)궤를 앞세워 여리고 성을 매일 한 바퀴씩 6일 동안 돌았고, 제사장들은 궤보다 앞서 나팔을 불며 행진했다.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돈 후 함께 소리를 질렀더니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리고 성을 점령했다. 기독교인이라면 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잘 알려진 이야기도 세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 본문에 ‘여호와의 집 곳간’이란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야웨께 바칠 전리품들에 손을 대지 말고 온전히 바치라고 다음과 같이 명령한다: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19절). 그리고 그들은 그 명령 대로 모든 전리품들을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다(24절).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그들이 전리품을 거두어 들인 곳에 대한 묘사가 ‘야웨의 집 곳간'(오차르(창고) 베트(집)-야웨)으로 나온다는 점이다. 그냥 ‘곳간’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야웨의 집’이란 표현은 시대 착오적 표현일 수 있다. 왜 그런가?

source: pinterest.com: original painting, “Girl with a Pearl Earring” by Vermeer (1665). This modified painting shows an anachronistic digital camera in the hand of a 17th-century girl.

‘야웨의 집’의 쓰임새

이 본문에 쓰인 ‘야웨의 집'(벧 야웨)이란 표현을 구약성경 히브리어 본문에서 찾아 보면 총 175개 구절에 191번 등장한다. 그중 ‘야웨의 집 곳간'(오차르 베트-야웨)이란 표현은 모두 11개 구절에 11번 등장한다.

만일 ‘야웨의 집’이 광야 40년 생활 동안 예배를 드렸던 이동식 임시 예배소, 즉 성막을 뜻하는 것이라면 여호수아서의 ‘야웨의 집 곳간’ 역시 가나안 점령 당시 임시로 세웠던 이스라엘 진영의 성막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막을 ‘야웨의 집’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는지, 혹은 성막의 곳간을 ‘야웨의 집 곳간’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여호수아서 이전의 본문, 즉 오경에는 ‘야웨의 집’이 성막을 의미하는 말로 등장하지 않는다. 오경에는 ‘야웨의 집’이 세 번(출 23:19, 34:26; 신 23:18) 등장하는데 모두 구체적인 율법 조항들이며 광야에 세운 성막을 의미하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하여 세울 공식 성전을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출 23:19 네 토지에서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출 34:26은 같은 법조항이라 반복하지 않음)

개역개정

이 구절은 가나안을 점령한 후 정착한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상황을 가정하고 있으므로 ‘야웨의 전’은 광야의 성막일 수 없다.

신 23:18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개역개정

이 구절 역시 노동을 통한 소득을 가정하고 있으므로 광야의 생활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정착한 상황을 가정하고 있으므로 ‘야웨의 전’은 공식적인 성전을 의미하며 성막을 뜻할 수 없다. 따라서 광야 40년 생활을 배경으로 한 본문 중에 나오는 ‘야웨의 집’이란 표현은 그 시기와 달리 언제나 정착 후의 공식적 성소를 지시하는 말로 쓰였다.

그외 172개 구절에 등장하는 ‘야웨의 집’은 예루살렘 성전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본문에서는 주로 실로의 회막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였고, 그외 나머지는 모두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쓰였다.

source: 대한성서공회 실로는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길에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예컨대 여호수아 18:1에 따르면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은 실로에 모여 회막(오헬 모에드, tent of meeting)을 세웠고, 사사기 18:31에서는 그곳을 ‘하나님의 집'(베트-하엘로힘)이라고 불렀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년 야웨의 절기를 실로에서 지켰고(삿 21:19), 그 전통은 사무엘의 시대까지 이어졌다(삼상 1:3).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혹은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에 옮기기 전)까지의 본문에서 ‘야웨의 집’이란 말은 오늘 문제의 본문(수 6:24)을 제외하면 모두 실로의 성전을 의미하고 있다.

  • 참고: 역대기에 따르면 광야의 성막과 번제단이 기브온 산당에 있었다고 언급하며(대상 21:29; 대하 1:3) 실로의 성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역대기의 저자는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에 비해 뚜렷하게 다윗과 솔로몬에 대한 이상화/미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신명기사가는 산당에서 예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를 기준으로 열왕기는 산당을 철폐하지 않은 왕들을 비판한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기 전까지는 다른 어디에선가 예배를 해야만 했는데, 앞서 말한 것처럼 여호수아부터 사무엘까지의 책들에서는 ‘회막'(오헬 모에드)이 실로에 세워졌기 때문에 그곳이 공식 예배소여야만 한다. 따라서 솔로몬이 단지 산당의 크기 때문에 일천번제를 드리기 위해 기브온 산당에서 예배를 했다는 것은 신명기사가의 관점에서 명백한 잘못이다. 하지만 만일 기브온 산당에 광야에서 세웠던 ‘회막'(오헬 모에드)이 있었다면 공식 예배소로서의 정통성은 실로가 아닌 기브온 산당이 된다. 따라서 역대기의 저자는 다윗과 솔로몬을 이상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브온 산당에 ‘회막’이 있었다고 언급하며 실로에 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된 후의 모든 본문에서 ‘야웨의 집’은 당연히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한다.

나가는 말

종합해 보면 수 6:24에 등장하는 ‘야웨의 집 곳간’에서 ‘야웨의 집’은 이 본문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예루살렘 성전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으며,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기 전의 공식 예배소로서 쓰인 경우 실로의 회막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였다. 수 6:24의 ‘야웨의 집’은 아직 실로에 회막이 세워지기 전이며 당연히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지기도 전이다. 그들은 요단 강을 건너 길갈(4:19)에 진을 친바 있고, 거기에 요단 사건에 대한 기념비를 세워 기억하기로 하기도 했으며(4:20-24), 거기서 할례를 거행했다(5:2-9). 따라서 지금 본문의 맥락에서 유일하게 ‘야웨의 집’으로 거론될 수 있는 곳은 요단 도하 후 할례라는 중대 의식을 행하고 정복전쟁의 거점으로 삼은 그들의 진영이 있었던 길갈이 아닐까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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