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번역 시리즈(1): 전도서, 전도자

들어가는 말

전도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번역하기 까다로운 책이다. 예컨대 전도서의 주 화자를 지칭하는 ‘전도자’라는 말은 개신교의 ‘전도사’라는 직책명과 유사하고, 의미상 도리나 진리를 전파하는 사람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 전도서의 내용은 ‘전도’라는 말이 가진 기독교에서의 의미나 혹은 일반적인 의미와도 연결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이 번역이 어떤 단어를 옮긴 것인지, 혹은 왜 이렇게 번역한 것인지, 나아가 더 나은 대안은 없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전도서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표현인 ‘헛되고 헛되다’라는 『개역개정』의 번역도 문자적으로는 ‘호흡’이나 ‘수증기’를 뜻하는 히브리어 הבל(헤벨)을 은유적 표현으로 받아 ‘헛됨’이라는 의미로 옮긴 것이다. 그러나 이 어휘를 문자 그대로(호흡, 수증기)가 아니라 은유를 반영한 구체적 번역어(헛됨)로 옮기는 경우 그 어휘가 가질 수 있는 은유적 의미의 확장성을 제한하고, 심지어 우리 같은 동양의 독자들에게는 사자성어 ‘일장춘몽’(一場春夢)을 연상하게 되기까지 한다. 이런 이유로 הבל(헤벨)의 대응어로 ‘헛됨’을 선택한 것에 대한 논평과 이를 대체할 표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이처럼 전도서는 책의 가장 핵심이 되는 표현들부터 이미 해석과 번역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런 문제는 본문 전체에 산재해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연재를 통해 전도서의 여러 번역 난제들을 두루 제시하고, 이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전도서’와 ‘전도자’라는 번역에 대하여

전도서는 히브리어로 ‘코헬렛’(קהלת)이다. 이 단어는 ‘모으다’(assemble) 혹은‘소환하다’(summon) 등의 의미를 가진 동사 קהל(카할)의 단순능동(칼) 분사 여성 단수 형태이다. 뜻은 ‘모으는 사람’ 혹은 ‘소환하는 사람’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קהל(카할)이 단순능동으로 활용된 성경의 용례는 ‘코헬렛’ 외에는 없으며, 다른 모든 경우 수동(니팔) 혹은 사역형(히필)으로 쓰였다. 위에 언급한 의미도 니팔과 히필의 용례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며, 그외 다른 활용에서의 의미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시 말해서 קהל(카할)의 ‘칼’의 의미는 ‘니팔’과 ‘히필’에 쓰인 의미와 거의 유사하거나 같다고 짐작하는 것일 뿐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래 히브리어 사전을 보라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HALOT), Accordance software screenshot

*참고: nif=니팔; hif=히필

히브리어의 동사 중 일부는 단순능동의 형태로 쓰이지 않고 ‘니팔’이나 ‘히필’처럼 파생된 형태로만 등장하는데, 이런 단어들은 종종 파생 형태가 단순능동의 형태를 대체한다. 만약 קהל(카할)도 그런 동사 중 하나로 본다면 קהלת(코헬렛)은 일종의 조어이며,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형태를 썼다는 점에서 의도적으로 의미를 모호하게 만든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קהלת(코헬렛)은 그리스어로 번역되면서 다소 잘못된 방향으로 의미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קהלת(코헬렛)의 그리스어 번역은 ἐκκλησιαστής(에클레시아스테스)이며, 이는 ‘소집하다’라는 뜻의 ἐκκλησιάζω(에클레시아조)의 단순능동 분사의 여성 단수이다. ἐκκλησιαστής(에클레시아스테스)는 ἐκκλησία(에클레시아: 모임, 의회 등)의 구성원, 즉 문자적으로는 ‘의회원’ 혹은 ‘모임의 구성원’이란 뜻이지만, ἐκκλησία(에클레시아)의 신학화된 의미인 ‘교회’가 의미의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고, 독일의 기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 의미를 사용하여 קהלת(코헬렛)을 ‘der Prediger’, 즉 ‘설교자’로 번역했다. 아마도 ‘교회로 성도를 모으는 사람’을 대표하는 사람이 주로 목회자인 ‘설교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번역은 영어권에 영향을 주어 ‘the Preacher’라는 번역어가 나타났다. 나아가 이 번역은 우리말 성경에서 다시 한 번 의역되어 ‘전도자’가 되었다. 그러나 קהלת(코헬렛)의 어원과 책의 내용은 기독교 교회와는 관련이 없으며, 당연히 ‘설교자’와도 관련이 없다. 특히 전도서의 코헬렛은 유대교의 전통적 신앙관을 비판하거나 회의적으로 사유하는 반면 설교자는 주로 교리를 설파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קהלת(코헬렛)을 설교자(the Preacher)로 번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나아가 『개역개정』의 용어인 ‘전도자’는 기독교에서는 일반적으로 포교활동을 하는 사람을 뜻하데, 이 역시 교리에 입각한 신앙을 전파한다는 점에서 이 책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으며, 당연히 קהלת(코헬렛)의 어원과도 잘 맞지 않는다. 단적인 예로 ‘전도자’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다음과 같은 이미지들을 발견하게 된다. 얼마나 ‘전도서’의 내용과 잘 안어울리는 그림들인지 확인해 보라.

구글에서 ‘전도자’를 검색하여 나온 이미지 결과

보는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전도자’는 기독교의 교리를 전파하여 포교활동을 하는 사람이지 전도서의 전도자처럼 회의적으로 사유하고 전통에 도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전도자/전도서’라는 번역은 그만큼 오해의 소지가 크다. 이런 이유에서 이미 가톨릭 성경에서는 전도서를 코헬렛이라고 단순 음역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주인공의 명칭 혹은 이름도 그대로 코헬렛이라고 부르고 있다. 의미가 명확하지 않은 이 단어의 경우 차라리 음역을 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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