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번역 시리즈(2): 헛되고 헛되다

  • 이전 포스트에서 전도서의 주 화자의 명칭을 코헬렛으로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는 설명을 제시했으므로, 이 글에서는 ‘전도자’라는 번역 대신 코헬렛이란 음역을 쓰겠다.

문법의 문제

Eccl 1:2 accordance screenshot, from the left column, BHS, NRSV, 개역한글

코헬렛의 ‘헛되고 헛되다’(הבל הבלים 하벨 하발림)라는 특징적 표현은 히브리어의 최상급인 ‘~ 중의 ~’이라는 구문으로 쓰여져 있다. 일반적으로 이 최상급 구문은 동일 단어의 단수와 복수를 병치하고 복수 단어에는 정관사를 붙여 표현한다. 즉 히브리어로 ‘가장 헛됨’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헛됨 그 헛됨들’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전도서에 등장하는 ‘헛되고 헛되다’라는 표현은 복수 명사에 관사가 결여되어 있어, 일반적인 최상급 형태와 경미한 차이가 있다. 즉 전도서의 본문에는 ‘헛됨 헛됨들’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전도서의 ‘헛됨 헛됨들’은 최상급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 정도의 변형은 다른 예시도 존재하기 때문에 여전히 최상급의 의미로 쓰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 예를 들어 창 9:25의 עבד עבדים(에베드 아바딤)을 『개역개정』은 ‘종들의 종’으로 번역했는데, NRSV는 이를 ‘lowest of slaves’로 옮겨 번역자가 이 표현을 최상급으로 이해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전도서에 쓰인 ‘헛됨 헛됨들’은 여전히 최상급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유대인 영문 번역인 JPS(Jewish Publication Society)는 이 구문을 ‘철저한 헛됨’(utter futility)으로, 즉 최상급으로 번역했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간혹 최상급의 변형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동일 어휘의 단수와 복수를 병치하여 사용하되, 복수에 관사를 사용하지 않는 용례로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표현은 אל אלהים(엘-엘로힘) 혹은 אל אלהי ישראל(엘-엘로헤-이스라엘)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אלהים(엘로힘)의 단수 형태가 אל(엘)이 아니라 אלוה(엘로하)라는 문제가 있다. 나아가 이 표현은 몇 가지 용례를 찾아 보면 최상급이라기보다 신에 대한 일반 복합명사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예컨대 민 16:22의 אל אלהי הרוחת(엘-엘로헤-하루호트)의 경우 『개역개정』은 ‘생명의 하나님’으로, NRSV는 ‘O God, the God of the spirits’로 옮겼다. “엘-엘로헤”를 각각 따로 번역한 것이다. 그만큼 단, 복수의 명사가 연달아 나오는 이런 표현이 해석하기 애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신 31:18의 אל אלהי אחרים(엘-엘로헤-아헤림)의 경우 『개역개정』은 ‘다른 신들’로 NRSV는 ‘other gods’로 옮겼다. 여기서는 ‘엘-엘로헤’를 단순히 ‘신’으로 옮겼다. 따라서 אל אלהים(엘-엘로힘)이나 אל אלהי(엘-엘로헤)의 경우는 최상급의 변형된 형태의 예로 제시하기 어렵다.

위 예시는 전도서의 ‘헛됨+헛됨들’과는 다른 경우다. 전도서의 용례는 문맥상 최상급으로 보는 것이 맞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역시 최상급이 아닌 어떤 다른 관용적 의미일 가능성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점도 하나의 가능성으로 열어 둘 필요는 있어 보인다.

의미론적 사안

HALOT, accordance screenshot

그러나 ‘헛되고 헛되다’라는 문구의 번역의 문제는 구문 이해의 문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어휘의 문자적 의미와 은유적 의미에도 있다. ‘헛됨’으로 번역된 הבל(헤벨 *전도서에는 ‘하벨’로 나타나는데 이는 일반적인 모음 형태가 아니다. 아람어의 영향으로 여겨지곤 하는 현상임)은 문자적으로는 ‘호흡’이나 ‘수증기’처럼 매우 짧게 지속되거나 쉽게 어이없이 날아가 없어져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아벨’로 알려져 있는 인물의 히브리어 이름이 הבל(헤벨, 구약성경은 ‘아벨’로 옮김)인데, 그가 하나님이 흡족히 받으실 제사를 올려 드리고도 갑작스럽게 살해를 당한 것은 הבל(헤벨)의 문자적 의미를 활용한 은유적 이름이다. 사실 구약성경에서 הבל(헤벨)은 대부분 상징적으로나 은유적으로 활용되며, 문자적으로는 별로 쓰이지 않는다. 그 흔치 않은 경우 중 하나가 앞서 언급한 창세기의 ‘아벨’이며 다른 하나는 시편 62:9에 등장한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개역개정

『개역개정』은 이 구절의 הבל(헤벨)을 ‘입김’으로 직역했고, 의미는 인간의 생명이 어이없이 쉽게 날아가 없어져 버린다는 뜻이다. 전도서에서 코헬렛이 인생에 대하여 말하는 바와 상통하는 점이 있는데, 전도서와는 달리 이 구절에서는 הבל을 직역했다. 그렇다면 전도서에서 이 어휘를 반드시 의역하여 ‘헛됨’으로 번역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대부분을 차지하는 은유적 용례들은 보통 실체가 없는 거짓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죄를 짓는 행위’나 ‘우상’을 뜻하는 말로도 빈번히 나타난다. 이런 경우 『개역개정』은 ‘허무한 것’ 혹은 그와 유사한 표현으로 번역하며, 직접 ‘우상’으로 번역하기도 한다(신 32:21; 왕상 16:13, 26; 왕하 17:15; 렘 2:5; 8:19; 10:8, 15 등) 몇 가지 예만 보자.

렘 2:5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가르침은 나무뿐이라

렘 10:15 그것들은 헛 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왕상 16:13 이는 바아사의 모든 죄와 그의 아들 엘라의 죄 때문이라 그들이 범죄하고 또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하여 그들의 헛된 것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더라

신 32:21 그들이 하나님이 아닌 것으로 내 질투를 일으키며 허무한 것으로 내 진노를 일으켰으니 나도 백성이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개역개정

위 용례들에서 הבל(헤벨)은 대부분 우상과 관련된 은유적 표현들이며, 특히 첫 번째 구절에서는 ‘우상’이란 말로 의역되기도 했다.

전도서에 나타난 הבל(헤벨)을 의역해야 하는 가의 문제는 해석의 영역이므로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적어도 ‘헛됨’으로만 의역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이미 전도서의 הבל(헤벨)의 의미에 대하여 연구해 온 많은 영어권 학자들이 다음과 같은 다양한 번역을 제안한 바 있다:

futility, empty, sorry thing, senseless thing, transient thing, transitoriness, uselessness, futility, the deficiency of existence in its totality, vanity, the expression of a nihilistic judgment on life and its values, ephemerality, worthlessness, folly, unsubstantiality, cosmic iniquity, absence of an ethical principle, mystery or incomprehensibility, enigma, irony, the contingent rationality of the created reality.

Schoors, The Preacher Sought to Find Pleasing Words, (Dudley: Peeters Publishers, 2004), 2:120.

나아가 학자들은 이 표현들 중 어느 하나가 전도서의 모든 הבל(헤벨)이 들어간 문장에 적합한 것이 아니라 문맥상 다른 어휘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הבל(헤벨)은 분명 쉽게 번역할 수 있는 어휘는 아니다. 그러나 코헬렛이 느낀 인생에 대한 감정 중 전도서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믿음과 현실 사이의 괴리와 모순에서 비롯된 감정이기 때문에 이와 연관된 어휘인 הבל(헤벨)은 부당함과 어이없음을 나타내는 말로 번역될 수 있다. 마이클 폭스(Michael Fox)는 이러한 관점에서 הבל(헤벨)을 ‘absurdity’로 이해한다. 물론 전도서의 הבל(헤벨)을 ‘헛됨’으로 옮기는 것이 오역이라는 말은 아니다. 이 어휘가 ‘일장춘몽’을 연상시키는 측면을 배제하고, 그 문자적 의미와 문맥적 의미를 동시에 고려하여 읽는다면 ‘헛됨’이란 표현은 무난하게 받아들일 만한 어휘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이 많은 의견이 제시된 만큼 이 어휘의 의미의 확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과 코헬렛이 인생에 대하여 느낀, 전도서 전체를 관통하는 그의 감정이 ‘부당함’이나 ‘어이없음’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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