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번역 시리즈(3): ‘괴로운 일’, ‘큰 폐단’, ‘큰 불행’

*Note: This post deals with problems of Korean translations of a few verses in Ecclesiastes. So the English version of the post won’t be necessary.

들어가는 말

제목에 언급한 세 표현, ‘괴로운 일’, ‘큰 폐단’, 큰 불행’은 각각 전 1:13; 5:13, 16에 등장하는 개역개정의 번역이며, 모두 동일한 히브리어 רע(라으)를 번역한 것이다. 하나의 단어를 세 가지 다른 어휘로 번역했기 때문에 왜 그런 것인지 혹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이 포스트는 이러한 부분을 설명하고자 한다.

1장 13절의 ‘괴로운 일’이란 번역에 대하여

코헬렛은 1장 13절 전반절에서 자신이 지혜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펴보았다고 말하고, 이어 후반절에서는 이 일이 ‘괴로운 일’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를 『개역개정』은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개역개정

여기서 ‘괴로운 것’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רע(라으)를 번역한 것인데, 이 어휘는 구약성경에서 주로 도덕적, 종교적 ‘’을 묘사하는 어휘로 쓰이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란 번역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시될 수 있다. (물론 주로 그렇다는 것인지 항상 그렇게만 쓰인다는 것은 아니다)

BDB, accordance screenshot

이 본문의 번역에 있어 우선 고려해야 할 것은 코헬렛이 연구하고 살펴본 ‘모든 일’ 혹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수고하게 하신 일들’에 대하여 코헬렛이 ‘악하다’고 말했을 리가 없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전 1:13의 רע(라으)를 ‘악한’으로 번역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개역개정』의 ‘괴로운’이란 의역은 רע(라의)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코헬렛은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들을 연구한 후 그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이지 그 일들을 통해 자신이 느낀 고통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이 인간에게 수고하게 하신 모든 일이 괴로운 것이라는 평가를 할 수도 있다. 다만 그런 평가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수고하게 하신 일을 하고 있고, 이로 인해 모두가 다 괴롭게 느낀다고 단정짓는 것이기 때문에 별로 설득력이 없다. 코헬렛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에 대해 넘겨짚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 혹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수고하게 하신 모든 일들에 대해 자기 자신이 관찰하여 이해한 바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רע(라으)라는 것이다. 예컨대 다음 구절인 14절에서 코헬렛은 사람이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이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평가’한다. 이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자체에 대한 묘사이지 그 결과로 자신 혹은 모든 사람이 느낀 고통스런 감정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만일 감정을 묘사하는 의미로 이 단어가 쓰였다면 ‘괴로운 일‘이라는 번역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רע(라으)는 고통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다. 그러나 13절의 רע(라으)는 현상에 대한 평가로서의 의미가 어울린다.

히브리어 사전 HALOT에 따르면 רע(라으)는 ‘of little worth’, 즉 ‘가치가 거의 없다’는 의미가 있다(주로 희생 제사에 쓰일 제물이 흠이 있는 경우). 코헬렛은 세상만사의 부질없음을 본문 전체를 걸쳐 한탄하기 때문에 이 의미를 살려 번역하면 굳이 의역을 하지 않아도 13절이 의미하는 바를 충실히 우리말로 옮길 수 있다.

HALOT, accordance screenshot

이에 더하여 רע(라으)는 전 2:17에서도 전 1:13과 유사하게 ‘괴로움’으로, 4:3에서는 ‘악한’으로, 4:8에서 ‘불행한’으로 표현되었다. 같은 어휘를 문맥에 따라 다른 대응어를 사용하여 번역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위 구절들은 이 단락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감정 묘사라기보다 상황에 대한 평가 묘사이며, 특별히 다른 각기 다른 어휘를 써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에 모두 ‘거의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옮기는 것이 더 낫다. 

5장 13절의 ‘큰 폐단’, 16절의 ‘큰 불행’이라는 번역에 대하여

먼저 본문을 보자

13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16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

개역개정 (주의: 위 구절은BHS에서 각각 12, 15절이다)

『개역개정』 번역이 사용한 위 두 표현은 모두 רעה חולה(라아 홀라)를 번역한 것인데 13절과 16절에서 서로 다른 어휘를 사용했다. רעה 는 위에 설명한 어휘의 여성형이다. 여기서는 חלה(할라)칼 능동분사 여성 단수חולה에 맞추어 여성형이 쓰였으며, 문맥상 의미는 위와 달리 ‘어처구니없음‘을 뜻한다. 왜냐하면, 코헬렛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재물은 소유한 자에게 행복과 만족을 주는 수단이 되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그 수단(재물)이 목적이 되어,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해로울 정도로 그 수단(재물)을 지키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어처구니없음을 수식하는 חולה(홀라)는 NRSV에서 ‘grievous’, 즉 한탄스럽다는 말로 번역되었다. 즉  רעה חולה(라아 홀라)는 한탄스러울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현상을 묘사한다.

Sisyphus, oil on canvas by Titian, 1548–49; in the Prado Museum, Madrid.
시지푸스는 ‘어이없는 인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개역개정』 번역의 ‘큰 폐단’이나 ‘큰 불행’은 몇 가지 문제를 가진다. 우선 이 표현들은 근접한 위치에서, 또 같은 맥락에서 사용된 רעה חולה(라아 홀라)라는 반복 문구를 다른 어휘를 사용해 번역하여 원문의 반복 효과를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이 문맥에서 רעה חולה(라아 홀라)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현상에 대한 어이없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1회용 용기를 사용하는 것(수단)은 편리함이 그 목적인데 이것을 완벽하게 설거지하여 배출해야 한다면 일반 식기를 사용하는 것이 차라리 낫고, 따라서 수단으로서의 1회용 용기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에 ‘어이없는 일’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폐단‘은 1회용 용기를 사용하므로 초래되는 환경오염 문제가 바로 폐단이다. 이처럼 코헬렛은 재물을 소유한 사람이 행복의 수단으로서의 재물을 자기 행복을 해치도록 지키려고 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지 부의 추구로 인해 초래되는 폐단(예컨대 자본 배분의 양극화 현상 등)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13절과 16절의 ‘큰 폐단’과 ‘큰 불행’은 적절한 번역이라고 보기 어렵다.

현재 개역개정이 사용한 번역어의 문제는 쉽게 파악이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를 대체할 번역어가 있는가하는 것이다. 문맥상 רעה חולה(라아 홀라)의 의미는 ‘한탄스러울 정도로 어이없음’이다. 그런데 רע(라으)는 위에 간단히 설명을 했지만 어이없다는 의미의 단어가 아니다. 과연 어떤 단어로 이 문맥에서 이 어휘를 번역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다양한 해석에 달렸으나, 나는 첫 부분에 제시한 ‘거의 가치가 없다‘는 표현이 여기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표현인 것 같다. 그렇게 번역하면 위 문장은 아래와 같이 옮겨진다(16절의 맥락 이해를 돕기 위해 15절을 추가했다).

13 내가 해 아래에서 개탄스러울 정도로 쓸데없는 일을 보았다.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다.

15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16 이 역시 개탄스러울 정도로 쓸데없는 일이다.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갈텐데 바람을 잡는 수고가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

개역개정의 수정

의미상으로 5장 13, 16절의 רעה חולה(라아 홀라)는 ‘개탄스러울 정도로 쓸데없는’이라고 옮길 수 있으나, 과연 ‘쓸데없는 일’이라는 격조 없는 표현을 성경 본문의 번역어로 쓰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의미상으로는 이보다 더 과격한 말도 사용될 수 있으나, 그것을 어떤 어휘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래도 성경 본문의 번역어는 의미가 과격하더라도 표현은 고상하게 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문맥에 따라, 특히 전도서의 경우 코헬렛이라는 인물의 성격이나 성향에 따라 반드시 고상한 용어를 골라서 쓰지 않아도 될 수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코헬렛이 다소 ‘상스러운’ 표현이라도 거침없이 하는 인물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서슴치 않으며, 심지어 그 권력의 정점에 있는 신에 대한 비판까지도 과감하게 내밷는 사람이다. 특히 유대인으로서 종교적/교리적 권위에 굴하지 않고 세상만사의 헛되고 덧없음을 거리낌없이 내밷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그가 רעה חולה(라아 홀라)라고 말한 부분을 ‘개탄스러울 정도로 쓸데 없는’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본다.

나가는 말

이상으로 전도서에 쓰인 רע(라의)의 의미를 몇 가지 맥락에서 알아 보았다. 이 단어는 매우 많은 경우에 신앙적, 도덕적 ‘‘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떤 본문에 이 단어가 나오더라도 일단 ‘악’으로 생각하고 일차적으로 본문을 이해하게 된다. 하지만 전도서의 경우는 쓰임새가 일반적이지 않아 해석자의 의미 파악이 번역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기 때문에 당연히 해석도 다양해 질 수밖에 없다. 이 포스트는 그러한 해석에 일조하려는 것이다.

위에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동일 어휘가 동일 본문에 나온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어휘로 번역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되도록 그렇게 하는 것이 좋지만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그러나 조금 조사를 해 본 결과 위에 나온 예시들은 일반적인 ‘악’의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거의 의미가 없다’는 동일한 의미로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따라서 개역개정의 번역처럼 모두 다른 표현을 사용할 필요는 없어 보이며, 동일 의미를 살려 해당 구절의 앞뒤 구절 맥락에 맞게 적절히 번역어를 선택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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