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번역 시리즈(10): ‘너의 창조주'(전 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개역개정

개역개정의 전도서 12:1에는 ‘너의 창조주’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단어는 신의 창조 행위를 묘사하는 데 쓰이는 동사 ברא(바라)단순능동(칼) 분사 남성 복수‘너의’(2인칭 남성 단수)를 뜻하는 대명접미사(ך 카)가 붙은 형태로 되어 있다. 직역하면 ‘너의 창조자들’, 즉 복수이지만 탁월의 복수 혹은 존엄의 복수로 본다면 단수로 번역이 가능하기 때문에 ‘너의 창조자’라고 옮길 수 있다. 그런데 개역개정의 ‘창조주’라는 표현은 ‘주’(Lord)라는 말이 가미되어 있어서 교조주의적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오역으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친 평가이다. 이 번역은 정경의 맥락 속에서 충분히 용인 가능한 범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의 번역은 원문에 없는 ‘주’를 첨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적절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구약성경에서 ‘창조자’를 의미하는 ברא(바라)의 분사 형태는 총 13회밖에 나타나지 않는데, 그중 11 번이 이사야에 등장하며(보다 구체적으로는 제2, 3이사야), 모두 단순능동 분사의 남성 ‘단수’ 형태이다. 그외 아모스와 전도서에서 각각 한 번씩 나타나는데, 아모스에서는 이사야의 용례와 같은 형태, 즉 단수가 쓰였다. 그러니 유독 전도서에서만 이 어휘가 복수 형태로 쓰인 것이다. 따라서 ‘창조자’의 일반적인 표현은 단수로 쓰인다는 추정이 가능한데, 이를 이스라엘의 신을 지칭하기 위한 용례로 이해한다면, 전도서의 복수 형태 용례는 모종의 의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아마도 ‘복수’ 형태가 가진 상징적인 의미는 하나가 아닌 여럿, 즉 여러 신을 의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보편주의를 표방하는 저자의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도서가 ‘보편주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창조자’의 복수형이 쓰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우선 고려할 것은 지혜문헌 자체가 다른 성경 본문에 비해 민족주의 정서가 상대적으로 약하고 보편주의 정서가 강하다는 점이다. 특히 전도서의 경우 야웨(יהוה)라는 명칭은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으며 오직 엘로힘(אלהים)만 등장한다. 물론 엘로힘(אלהים)은 이스라엘의 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빈번히 사용되기 때문에 단지 ‘야웨’가 사용되지 않았다고 하여 전도서의 אלהים(엘로힘)보편적 ‘신’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도서의 אלהים(엘로힘) 사용은 일반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총 39 개의 용례 중 32 개가 관사를 동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담’, ‘사탄’ 등의 어휘가 관사를 갖지 않을 때 고유명사의 기능을 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전도서가 신의 명칭을 위해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אלהים(엘로힘)이 아닌 האלהים(하-엘로힘), 즉 관사가 붙은 형태를 사용했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고유명사의 느낌을 경감시키려고 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개신교 독자들은 흔히 구약성경의 신의 명칭은 바알이나 다곤 등 외국의 신을 제외하면 모두 ‘하나님’(엘로힘의 번역어) 혹은 ‘여호와’(야웨)로 옮기거나 이해하면 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본문의 맥락을 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하려 들면 신을 지칭하는 표현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신을 가르키는지 의외로 모호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개역개정의 요나 3:4에 따르면 요나는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라고 예언했는데, 이 구절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인 5절에서 니느웨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는 행동을 취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원문에는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אלהים(엘로힘)이 쓰였다. 그러나 그 의미가 과연 이스라엘의 신을 지칭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논의 대상이 된다. 왜냐하면 אלהים(엘로힘)은 일반명사로 ‘신들’ 혹은 ‘’을 의미할 수 있으며, 요나는 이스라엘의 신을 믿으라고 전파하지 않았고, 니느웨의 사람들은 당연히 야웨를 섬기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요나서의 문학적 특징이나 대상 독자를 고려할 때 욘 3:4의 אלהים(엘로힘)이스라엘의 신을 지칭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지만, 앞서 언급한 이유를 들면 이 본문의 אלהים(엘로힘)이 누구라고 확정하기는 어렵다. 구약성경의 신의 명칭 해석과 번역의 문제는 디아스포라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네러티브(요셉, 다니엘 등)에서 언제나 마주하게 되며, 보편주의 정서가 강한 지혜문헌에서도 논란을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 

구약성경에서 אלהים(엘로힘)은 본문에 따라 ‘’ 혹은 ‘신들’로 해석될 수 있으며, 특히 전도서에 사용된 신의 명칭은 보편주의적 의도에서 관사를 대부분 동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전 12:1절에 쓰인 ברא(바라)의 분사 복수 형태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개역개정의 번역은 정경이라는 맥락에서 문제가 없으나, 전도서의 구체적인 사상적, 문학적 맥락 속에서는 정확한 번역으로 보기 어렵다. 나는 ‘창조주’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교조주의적 느낌을 준다고 평가하며, ‘창조자들’ 역시 지나치게 문자적이라고 본다. 따라서 복수는 말 그대로 복수가 아니라 탁월의 복수로 받아 이를 단수로 해석하여 ‘창조자’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무난한 번역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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