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말과 유다(1)

Excerpt

1. 사건

창세기 38장에는 며느리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를 꾀어 성관계를 갖는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현대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고대의 문화와 관행을 고려해 보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2.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나?

다말의 변

다말은 남편과 사별한 후 성욕을 이기지 못해 시아버지까지 꾀어 관계를 가진 것이 아니다. 다말은 시집을 온 이상 반드시 아이를 낳아 자기 남편의 유산을 이어가고 이를 통해 생존해야 했다. 시집 온 여성으로서 아이를 낳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는 성경의 불임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그들은 모두 불임에 대해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그려져 있으며 대부분 대리모를 통해서라도 반드시 아기를 얻어내는 모습까지도 보인다. 사라도 그랬고 라헬도 레아도 그랬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경우는 대리모를 쓰지는 않았지만 아이를 낳고자 하는 열망이 얼마나 컷던지 술에 취하여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기도했다. 그만큼 시집온 여자가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은 여성에게 큰 고통이었던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 것이었을까? 다말이 만일 외부인과 재혼을 하거나 혹은 가난을 이기지 못해서 남편의 땅을 외부인에게 팔아 버리면 그것은 영영 외인의 것이 된다. 다시 말해서 다말은 유다 가문에게서 아들을 낳아야 그 가문의 재산을 보호할 수 있고 본인도 이를 통해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어떻게 해서든 유다 가문의 남자에게서 임신을 하려고 한 것이다.

룻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나오미 남편(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를 은밀히 유혹하는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룻은 엘리멜렉 가문의 아이를 낳기 위해서라면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성관계를 맺을 각오를 하고 있으며 실제로 실행에 옮기는 대범함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의 묘사는 이 부분을 성적 타락으로 그리지 않으며 오히려 여성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좋은 여성으로 그리고 있다.

Photo by Luis Galvez on Unsplash

유다는 다말 임신 사건이 자신이 셋째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아서 생긴 일이라고 자책하며 다말이 자기보다 옳다고 고백한다(38:26). 또 다말의 남편의 동생 오난이 다말과 성관계를 갖고 임신을 시키지 않으려고 매번 씨를 주지 않자 하나님은 그의 행위가 악하다 하여 그를 죽이셨다. 오난의 행위는 죽어 마땅한 죄라고 생각할 정도로 여성에게 아이를 낳는 일은 중요한 일이라는 사실이 본문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다말이 시아버지를 꾀어 관계를 가진 것은 잘못된 일이긴 하지만, 당시 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오히려 다말을 그런 절박한 상황으로 내몬 유다의 잘못이 더 크며, 다말의 잘못은 동정을 살 수 있는 일이었다.

유다의 변

창세기 38장의 사건에서 다말의 행동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두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는 것처럼 다말의 행위로만 이 사건이 성립될 수는 없다. 과연 유다는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이 역시 고대 사회의 관습을 살펴 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성매매의 평범성

한 때 매춘과 향락에 찌들었다고 하는 파리의 물랑 루즈(Moulin Rouge), Image by salander from Pixabay

성경을 포함한 많은 고대의 문헌이 ‘창녀’에 대해 매우 많이 언급한다. 다만 남성중심적 관점에서 ‘창녀’는 언제나 천한 여자로 묘사된다. 일례로 야곱의 딸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을 당했을 때 야곱의 아들들은 마을 모든 남자들을 죽이고 약탈까지 하는 매우 혹독한 복수를 했다. 왜냐하면 세겜이 디나를 ‘창녀’처럼 대했기 때문이다(물론 디나는 강간을 당한 것이지 창녀가 된 것이 아니다). 이 기록은 당시 성적으로 순결하지 않은 여성을 창녀로 취급했다는 것과 당시 창녀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한 가문에게 불명예스러운 것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이렇게 창녀는 매우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성매매를 하는 남성에 대한 비판은 찾아 보기 쉽지 않다. 성적 순결에 대한 이중잣대가 매우 컸다는 것이다.

구약은 이스라엘이 우상을 숭배한 것도 ‘창녀’에 비유하여 비판한다. 잠언은 어리석음과 음녀를 동일시하며 소년에게 지혜자가 되기 위해서 어리석음 즉 음녀를 멀리하라고 끊임 없이 종용한다. 하고 많은 비유 중 ‘창녀’의 비유가 구약의 다양한 맥락에서 빈번히 선택되었다는 것은 매춘이 그만큼 흔했던 사회상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이렇게 창녀에 대한 언급이 많다는 것은 역으로 그만큼 성매매를 하는 남성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유다도 다른 사람들 다 하는 성매매를 한 번 했을 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창세기 38장 본문도 다말이 몰래 임신을 한 것은 ‘태워 죽일 죄'(38:24)로 보면서 정작 유다의 성매매 자체는 별 문제가 아닌 것처럼 다루고 있다. 본문 내용상 유다의 잘못은 성매매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말이 아이를 낳는데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는 것에 있다. 그래서 심지어 시아버지를 통해 다말이 낳은 아이들은 당당하게 유다의 족보에 아들로 등록된다(창 46:12).

얼굴을 가리는 문화, 과부의 특별한 복장

유다는 시아버지로서 자기 며느리를 알아보지 못하고 성매매를 위해 접근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고대 근동 지역 여자들은 일반적으로 얼굴을 가리는 풍습이 있었다. 창 24:65에 따르면 리브가는 이삭을 처음 만나던 날 그를 멀리서 보고 너울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

과부는 보통의 여자들과 다른 어떤 특별한 복장을 해야 했다. 창 38:14에 따르면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고 너울을 하고 온 몸을 가렸다고 전한다. 즉 과부 티를 내지 않고 평범한 여자인 척했다는 것이다. 다말이 친정에서 과부의 차림새를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유다가 평범하게 얼굴을 가리고 있던 다말을 알아 보지 못한 것은 고대 문화에서는 분명 가능한 일이다.

평범한 여성의 신전매춘

하지만 유다가 평범하게 보이는 여자를 어떻게 ‘창녀’로 인식했느냐하는 부분은 여전히 설명이 필요하다. 정확한 답을 찾아 내기는 어렵겠지만 매우 가능성 있는 하나의 이론이 있다. 본문 38:15에 따르면 유다는 다말을 ‘창녀'(zonah)로 인식하고 관계를 맺었다. 그런데 관계의 대가를 지불하는 장면에서 다말은 단순한 창녀가 아니라 ‘케데샤/크데샤’ 즉 ‘성창'(sacred prostitution/temple prostitution)으로 소개된다.

Ishtar: British Museum, CC0, via Wikimedia Commons

헤로도투스에 따르면 바벨론에는 ‘성창’ 즉 ‘신전매춘’을 위한 여성이 존재했으며 심지어 모든 여성은 일생에 한 번은 (이슈타르) 신전에 가서 ‘신전매춘’ 행위를 해야 했다고 한다. 이 기록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기에 너무 충격적인 것이어서 어떤 학자들은 실제로 이런 풍습이 있지 않았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 그러나 신전매춘에 대한 기록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으며, 이 관습은 단지 바벨론 뿐 아니라 고대 근동 사회에도 널리 퍼져있었다고 학자들은 말한다(Marten Stol의 Women in the Ancient Near East에서 “Temple Prostitution”을 보라). 만일 헤로도투스가 묘사한 관행이 가나안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면, 유다가 보기에 다말은 얼굴을 가린 평범한 여성(혹은 지체 높은 여성)이 종교적 의무를 위해 신전의 주변에서 낯선 남자의 선택을 받으려고 얼굴을 가린 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얼굴을 볼 수 없는/보지 않는 관계

마지막으로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어떻게 성관계를 맺은 여자가 며느리라는 것을 모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사건은 유다가 다말의 얼굴을 전혀 보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 역시 고대 사회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던 거 같다. 일례로 야곱의 경우 라헬과 결혼했다고 생각했지만 아침에 일어나 보니 레아였다. 즉 고대 근동에서는 남자가 여성의 얼굴을 보지 않고 혹은 알아보기 힘든 환경에서 성관계를 갖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 38장의 사건은 고대의 문화적 맥락에서 볼 때 아주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은 아니다.

다말과 유다(2)에서 계속

1 thought on “다말과 유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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