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교훈(1)

Excerpt

이 글은 유럽 사회가 미대륙을 침략하는 폭력적 과정에서 그들의 성경 해석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드러내고 이러한 역사를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어떻게 성경을 해야 할지에 대해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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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서구 유럽 사회는 지난 20세기 말까지 약 오백여 년의 기간 동안 전 세계를 대상으로 침략과 수탈을 해왔다. 그런데 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기독교를 근간으로 한 문명을 이루었던 사람들이었다. 기독교인으로서 그들은 사랑, 친절, 섬김 등과 같은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덕목들을 존중하고 또 실천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유럽 밖에서 그들은 전혀 다른 존재였다. 그들은 세계 곳곳에 전쟁과 착취의 흔적을 진하게 남겼고, 그들의 잔혹한 행위들을 성경 해석을 통해서 정당화하곤 했다. 여기서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구약성경이 그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데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본문은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의 폭력적 가나안 정복이다. 물론 구약성경의 가나안 정복 이야기를 근거로 강대국의 약소국에 대한 폭력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성경 해석은 잘못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가한 폭력이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었음은 엄연히 성경에 기록된 사실이다. 물론 구약성경은 이러한 폭력을 지양하고 사랑과 화합의 메시지를 주는 본문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는 하나님이 허락한 폭력을 누구도 성경에서 지울 수는 없다는 데에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성경 해석을 통해서 타자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 하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가령 야웨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을 점령하라고 하신 것은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린 명령이지 다른 누구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는 성경을 통해 희생과 사랑을 정당화하는 것 역시 같은 논리로 부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성경 해석은 성경이 말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이용하여 독자가 말하는 것이다. 의미 생산의 주체는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있고, 따라서 성경 해석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있다.1) 그렇다면 과연 이 시대가 요구하고 우리가 따라야 할 해석의 관점과 자세는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뉘우침의 일환으로 성경 해석으로 기독교가 정당화해 온 타자에 대한 폭력을 비판해야 하고 또 희생자의 관점에서 기존의 성경 해석을 반성하며 대안적 의미를 생산해 내야 한다.

이른바 ‘반성적 성경 읽기’를 고취하기 위해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먼저 나는 유럽 기독교의 성경 해석과 종교 권력의 용인에 기반 하여 미대륙에서 벌어진 폭력의 역사를 개괄할 것이다.2) 그리고 그 폭력의 희생자들인 미대륙 원주민들에게 정복자의 경전인 성경과 그들의 종교인 기독교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고찰할 것이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 나는 두 권의 모음집에 실려 있는 원주민들의 증언과 기록을 소개할 것인데, 그 중 하나는 Eating Fire, Tasting Blood이다. 이 책은 승자의 역사에서 외면되어 왔던 원주민들의 개인적 기억과, 그들의 고통, 그리고 생존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두 번째 책은 Native and Christian이다. 이 책은 침략자의 종교인 기독교를 자신의 종교로 수용한 원주민들의 정체성 고민과 신학적 고민을 다루고 있다. 이 희생자들의 증언은 제국주의와 결탁하여 폭력을 정당화했던 기독교의 참혹한 역사를 드러낼 것이며 아울러서 희생자의 해석학이 우리 시대에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그리고 과연 이 해석학이 무엇인지도 보여줄 것이다.

정복 그리고 원주민

유럽에서 미대륙으로 건너온 기독교 정복자들의 역사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잔혹한 사건들로 가득 차 있다. 돈 벌치필드(Don Birchfield)에 따르면, 1830년대에 삶의 터전을 잃고 강제 이주를 당하다가 목숨을 잃은 척토우(Choctaw) 부족인들의 수가 무려 2500여 명에 달했고 이는 당시 척토우 인구의 1/7에 해당했다.3) 정복자들이 원주민들을 언제나 겨울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추방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파멜라 킹피셔(Pamela Kingfisher)에 따르면 체로키 부족의 경우 16000여 명 인구 중에 4000여 명이 넘는 원주민이 강제 이주 중 사망했다.4) 이런 이유로 원주민들은 이 강제 이주 행렬을 가리켜 눈물의 길(the Trail of Tears)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아이티와 도미니칸 공화국으로 알려진 지역에서 일어난 참상은 이 보다 더 충격적이다. 제이 한스포드 베스트(Jay Hansford Vest)가 그의 글에서 인용하고 있는 15세기의 한 스페인 선교사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정복자와 원주민간의 전쟁 중에 8백만 명의 원주민이 죽거나 노예로 팔려 갔으며, 광산과 같은 곳에서 강제 노동에 끌려가기도 했고, 또 20세기의 한 역사가, 커크페트릭 세일(KirkPatrick Sale)의 기록에 의하면, 유럽의 정복이 시작되면서 대략 20여 년의 기간 동안 원주민 인구의 99%가 사망하여 총 8백만 정도에서 28000여 명 정도만이 살아남았다; 베스트에 따르면 세일은 “미래에 태어난 사람들 중 이런 일이 과거에 있었을 것이라고 과연 누가 믿기나 하겠는가”라고 탄식했다.5) 이뿐만이 아니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Eduardo Galeano)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미대륙 진출 이전의 총 7천만 원주민 인구가 유럽의 침략이 시작된지 150여 년 만에 3만5천여 명으로 감소했다고 보고한다.6) 베스트가 주장 한 바 유럽의 소위 ‘신세계’ 진출이 세계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인종청소라는 것은 분명 이해할 만 하다.7)

물론 이러한 인구 감소의 원인이 전적으로 유럽 정복자들의 직접적인 학살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던 미대륙은 유럽인들이 이미 면역력을 가지고 있었던 병균에 항체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유럽인들의 정착과 함께 퍼지기 시작한 전염병으로 사실상 많은 인명 피해를 보게 되었다. 베스트도 이를 인정한다. 유럽인들이 조직적로 전염병을 활용하여 원주민들을 죽이려했다는 증거도 발견된 것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스트가 유럽의 정복자들을 대량학살의 주범으로 여기는 것은 타당하다. 지난 2014년, 리베리아 출신의 토마스 던컨(Thomas Duncan)은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된 채로 미국 땅을 밟았다. 에볼라는 감염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병이었기 때문에 단 한 사람의 입국은 미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공포에 떨 게 만들었다. 자신과 접촉한 모든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은밀히 입국한 던컨의 행동이 분명 무책임했다. 지난 2020년 초에 시작되어 2년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경우도 이와 유사한 이유로 도덕적 책임을 묻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예를 들어 방역 조치가 강화되어 교회의 모임에 제한이 생기고 특히 교회에서 식사를 할 수 없게되었을 때, 대부분의 교회들은 이를 잘 지켰다. 하지만 일부 교회들은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결국 집단 감염을 일으키기도 했는데, 사람들은 감염병의 위험을 알면서도 이를 쉬이 여겨 방역 지침을 무시하다가 결국 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기독교의 도덕적 해이를 비난했다. 그렇다면 유럽인들이 과거에 미대륙에 퍼뜨린 전염병 사건은 어떠한가? 조직적 병원균 살포가 아니었어도, 결과적으로 믿기지 않을 정도의 인명 피해를 낸 유럽 기독교인들의 미대륙 진출은 도덕적 비난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유럽의 미대륙 정복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그 정복자들이 바로 우리가 읽는 바로 그 성경을 가진 기독교인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원주민들은 인종청소를 마다하지 않았던 무자비한 침략자들이 기독교라는 종교를 앞세워 자기 땅을 짓밟았다고 기억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반성적 성경 읽기’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이다. 물론 원주민들에게 호의적인 선교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럽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성경 해석을 통해 조직적으로 정당화했던 폭력의 결과를 뒤바꿀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었다. 제이스 위버(Jace Weaver)에 따르면 유럽인들의 미대륙 침략 당시 그들 사이에 널리 공유되는 믿음이 있었는데 이는 미대륙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유럽의 기독교인들)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이며 원주민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같이 모두 심판을 받아야할 죄인들, 심지어 “완전히 사탄에게 사로잡힌 자들”이라는 것이다.8) 위버가 인용한 16세기의 한 문헌에 따르면 당시 한 가톨릭 귀족은 원주민들을 “이교도”라고 부르며 모두 몰살시키던지 기브온 사람처럼 노역에만 사용해야 하며, 또 15세기의 교황 알렉산더 6세가 내린 칙령에는 미개한 원주민들은 믿음을 가질 수 없다면 반드시 굴종시켜야 한다는 선포가 들어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대륙을 약속의 땅으로, 또 원주민을 가나안 족속으로 유형화하는 성경 해석(typology)을 통해 유럽의 미대륙 진출은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었다.

유럽 기독교가 성경을 이용해 원주민 대량학살을 정당화했던 것은 이뿐이 아니다. 기독교 정복자들은 1636년 5월, 미스틱 마을(Mystic village)이라는 곳에서 피쿼트(Pequot) 부족 400여 명을 학살하기 위해 사사기 20장을 활용했다.9) 이 본문에서 한 레위인과 그의 첩이 베냐민 지파의 땅에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서 그 첩이 강간을 당하고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그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의 다른 지파들과 베냐민 지파 사이의 분쟁이 생기게 되고 결국 이는 전쟁으로 치달아 베냐민지파가 학살을 당하게 된다. 사사기는 이 전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표현한다(삿 20:3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시매……”. 민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우리로서는 매우 가슴아프고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다. 그런데 기독교 정복자들은 미스틱 마을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이 본문을 자신의 정복 행위를 정당화 하는 근거로 삼았다. 로라 도날드슨(Laura Donaldson)에 따르면, 당시 그 지역을 담당하던 유럽군 지휘관 두 명이 피쿼트 인들에게 살해당했다고 피쿼트 인들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발단이 되어 피쿼트인들과 유럽군 간의 분쟁이 결국 피쿼트인들의 대량학살로 이어졌고 유럽인들은 이를 사사기 19-20장과 비교하여 학살을 ‘하나님의 뜻’으로 정당화했다.

기독교 정복자들의 압제는 인명의 희생을 넘어 원주민들의 문화를 말살하는 데에도 이른다. 원주민들은 정복자의 조직적인 원주민 문화 억압을 “문화학살(culturecide or cultural genocide)”이라고 칭한다. 스티브 찰스턴(Steve Charleston)에 따르면, 기독교 정복자들은 원주민들의 문화를 원시적이고 미신적이며 미개한 것으로 인식했고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사라져야 할 것으로 바라보았다.10) 안타깝게도 문화학살을 주도한 사람들은 침략자들과 함께 들어왔던 당시 선교사들이었다11) 그중 존 엘리엇(John Eliot)은 나틱/기도 마을(Natick/Praying Town)을 세우고 최초로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기 위해 그들의 정체성을 조직적으로 지우려고 노력했던 선교사로 알려져 있다.12) 선교사들은 유럽의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고는 제대로 기독교를 수용할 수조차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엘리엇은 원주민 성인 남성들의 긴 머리는 게으르고 단정치 못하고 풍기 문란한 것으로 보았고, 따라서 그들은 원주민들의 머리를 유럽인들처럼 자르게 했다. 그러나 도날드슨에 따르면 원주민 성인 남자들에게 긴 머리는 그들의 나이, 성별, 사회적 위치, 그리고 심지어 영성까지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에 머리를 자른다는 것은 원주민들에게는 극단적 모욕이며, 성적 정체성을 유린하는 것이고, 그들의 문화적 정체성 표현을 철저히 묵살한 것이다.13) 이런 문화말살은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미국의 기숙사 학교들에서 아직도 벌어지고 있다. 마리 테레스 아치암볼트(Marie Therese Archambault)는 자신과 같이 경제적인 이유로 기독교에서 지원하는 기숙사 학교에 입학할 수밖에 없는 많은 원주민 자녀들이 대게 기독교인이 되곤 하는데 그 과정에서 그들은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게 되며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적어도 문화와 종교 차원에서는, 마치 원주민과 기독교 정복자의 관계처럼 형성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14)

기독교 정복자들이 말살한 원주민 문화 중 이제 오히려 그들이 회복하려고 하는 것도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남녀평등의 원리이다. 일례로 체로키 부족은 본래 모계사회였으며 외가 거주제(matrilocal)를 가졌었다. 사회적으로 남성과 동등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체로키의 여성들은 공동체에 큰 공을 세운 경우 기가우(Ghigau)라고 불리곤 했는데 이들은 정치, 종교, 군사적인 문제에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스티브 러셀(Steve Russell)에 따르면 이런 여성의 지위나 권리는 유럽 남성들에게 불쾌한 것이었다.15) 가부장적 세계관 속에서 만들어진 성경의 가치관으로 무장되어 있던 기독교 정복자들은 이런 평등한 문화를 비웃었고 여성이 소위 ‘남자 하는 일’에 참견해도 제재하지 못하는 것을 비하하기 위해 체로키의 사회 제도를 여성의 속옷에 비유하여 “페티코트 체제(petticoat government)”라고 모욕했다고 로라 도날드슨은 보고한다.16) 기독교 정복자들이 무시했던 원주민들의 문화 중 이제 다시 회복하려고 하고 있는 또 다른 문화의 예는 인간이 신의 피조물로서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모든 만물과 균형을 이루고 조화롭게 살아가야한다는 의식이다.17)

원주민들은 지구를 그들의 어머니라 부르며 산과 들의 짐승들을 그들의 형제와 자매라고 부른다고 스탄 맥케이(Stan McKay)는 가르쳐준다.18) 이런 친생태적 문화권에서 가치관을 형성하는 원주민들은 칭의에 관하여도 그들 문화에 바탕을 둔 근본적 성향을 드러낸다. 틴커와 슐츠(Tinker and Schultz)에 따르면 한 개인의 의(義)는 그가 속한 공동체와 신의 관계라는 맥락에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신이 창조한 세계에 불균형과 부조화를 불러온 공동체는 신과의 관계도 깨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의로운 개인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19) 그러나 자본주의 사상과 결탁 되어 있는 서양의 기독교는 한 개인이 최선을 다해서 경제적 번영을 추구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으며, 결과적으로 얻게 된 번영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여겼다. 이 또한 그들의 성경 해석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이런 식의 극단적인 이윤 추구는 결과적으로 극심한 빈부의 격차로 인한 계급 갈등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의 훼손으로 이어졌다. 

가령 현재 햄버거 생산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소를 사육하려면 소의 오물로 인한 가스 생산을 감수해야 하며 소 사육을 가능하게 할 대지 확보를 위한 벌목을 감행해야 한다. 한 보고에 따르면 햄버거를 생산해 내기 위해 온실효과를 만들어내는 가스는 연간 총량의 22%에 육박하며 0.5파운드짜리 햄버거 고기 하나가 만들어지기 위해서 3000파운드짜리 자동차 한 대가 10마일을 달려야 나오는 정도의 온실 가스 배출을 감수해야 한다.20) 미대륙의 원주민들에게 자본주의 정신과 결탁되어 있는 기독교 정복자들은 오히려 신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균형과 조화를 무시하는 자들이었다. 만일 미대륙에 찾아온 기독교 이주자들이 성경을 다르게 이해하여 평화롭게 그 땅에 정착하고 원주민들과 교류하였다면 지금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생태신학’이라는 분야도 훨씬 더 오랜 역사를 가졌거나 더 깊은 담론을 형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부장적 문화로 빚어진 수많은 사회 문제들도 지금처럼 큰 문제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21)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들이 성경해석을 근간으로 한 신학적 합리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성경의 해석자들로서 반드시 인식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참혹한 경험 때문에 “차라리 지옥을 갈지언정 기독교인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접하게 되었던 16세기 한 선교사의 경험을 빌려, 갈레아노는 기독교가 원주민 의식 속에 얼마나 부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 설명한다.22) 위버는 ‘원주민 기독교인’이란 표현 자체가 모순이며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원주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까지 주장한다.23) 안드레아 스미스(Andrea Smith)에 따르면 원주민이 기독교의 신학적 담론에 참여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해방신학이라 할지라도 기독교적 담론에 가담하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침략자의 행위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원주민들은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기독교 원주민들과 전통을 고수하는 원주민들 사이의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제임스 트리트(James Treat)는 원주민 공동체 내의 기독교인들과 전통주의자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하고자 모인 1979년의 모임에서, 한 전통주의자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옮긴다: “침략 전쟁 당시 원주민들은 죽거나 기독교로 개종하거나를 강요받곤 했는데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살아가는 원주민들이 있다는 것은 자신이 누군지를 모르는 일이며 참으로 유감스럽다.”25) 트리트에 따르면 이 모임은 기독교인과 전통주의자 사이에서 태어나 중간자적 입장을 갖고 있는 조 롹 보이(Joe Rock Boy)의 상호 존중의 태도에 대한 강조 발언으로 마무리되었다.26) 그러나 이 모임 때문에 기독교 정복자들로 인하여 벌어진 원주민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원주민들의 관점에서 조망한 지난 5백여 년의 미대륙 역사는 성경을 기반으로 한 기독교인들의 침략의 역사다.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대인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 나치의 잔혹사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것 이상으로 미대륙 원주민들에게 가한 기독교 정복자들의 폭력은 큰 상처로 남아 있다.27) 그리고 원주민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땅에서 정복자들과의 불편한 동거를 유지해야 하며 자신들 내부에 정복자들의 신앙을 받아들인 일종의 ‘변절자’들과의 기막힌 인연을 이어가야만 한다. 물론 원주민 기독교인들은 변절자라는 오욕과 원주민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정체성을 동시에 갖게 되어 혼란스러운 인생의 굴레에서 빠져있다. 성서의 오용이 낳은 이 비극적 기독교의 과오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희생자의 해석학’과 ‘반성적 성경 읽기’는 이제 성서학자들이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될 숙제가 되었다.

참고 자료

  1. 의미 생산의 주체가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있다함은 읽기행위에 있어서 종종 저평가되는 독자의 역할을 강조하려는 표현이며 해석의 대상의 역할이 전혀 없음을 표현하고자 한 말이 아니다. 나는 읽기라는 행위가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의 표현으로 이미 잘 알려진 해석학적 관점 “지평융합(fusion of horizon)”으로 이해한다. Gadamer, Truth and Method, 2nd rev. ed. (New York: Continuum, 2004), 367.
  2.  여기서 미대륙은 미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전 아메리카 대륙을 의미한다.
  3. Don L. Birchfield, “Choctaw Legacy: How to Lose Your Country”, MariJo Moore(ed.), Eating Fire, Tasting Blood: Breaking the Great Silence of the American Indian Holocaust (New York: Thunder’s Mouth Press, 2006), 115. 이하 이 책의 다른 저자의 글은 Eating Fire, Tasting Blood로 줄임.
  4. Pamela J. Kingfisher, “Just One Dress to Walk 800 Miles”, Eating Fire, Tasting Blood, 212.
  5. Jay Hansford C. Vest, “Weeds From the Under World: The Conquest of Tsenacomoco and Monascane”, Eating Fire, Tasting Blood, 151.
  6. Eduardo Galeano, “A Flood of Tears and Blood: And Yet the Pope Said Indians Had Souls”, Eating Fire, Tasting Blood, 2.
  7. Vest, 윗글, 151.
  8. Jace Weaver, “From I-Hermeneutics to We-Hermeneutics: Native Americans and the Post- Colonial”, Laura E. Donaldson(ed.), Postcolonialism and Scriptural Reading (Semeia 75; Atlanta: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1996), 159-60.
  9. 미스틱 마을은 현재의 코네티컷주에 해당한다.
  10. Steve Charleston, “The Old Testament of Native America”, James Treat(ed.), Native and Christian: Indigenous Voices on Religious Identity in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New York: Routledge, 1996), 73. 이하 이 책의 다른 저자의 글은 Native and Christian으로 줄임.
  11. 유럽의 선교사들은 선한 의도를 가지고 미대륙에 발을 디뎠다. 그러나 그들은 유럽의 문화적 가치와 사회 구조를 그리스도의 복음과 혼동하고 있었고 이를 열성을 다해 실행에 옮겼다. 이런 이유로 죠지 틴커(George Tinker)는 그런 선교사들 역시 결국 미대륙 정복을 완수하는 여러 가지 계획의 일환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George Tinker, “Spirituality, Native American Personhood, Sovereignty, and Solidarity”, Native and Christian, 118.
  1. Laura Donaldson, “American Samson: Biblical Reading and National Origins”, Vincent L. Wimbush(ed.), Theorizing Scriptures: New Critical Orientations to a Cultural Phenomenon (New Brunswick: Rutgers University Press, 2008), 196-98.
  2. Donaldson, 윗글, (2008), 196-98.
  3. Marie Therese Archambault, “Native Americans and Evangelization”, Native and Christian, 136.
  4. Steve Russell, “The Cherokee Nation: A Colonial Morality Play in Three Acts”, Eating Fire, Tasting Blood, 139.
  5. Laura Donaldson, “‘But We Are Your Mothers, You Are Our Sons’: Gender, Sovereignty, and the Nation in Early Cherokee Women’s Writing”, Cheryl Suzack, Shari M. Huhndort, Jeanne Perreault and Jean Barman(ed.), Indigenous Women and Feminism: Politics, Activism, Culture (Vancouver: UBC Press, 2010), 44.
  6. Paul Schultz and George Tinker, “Rivers of Life: Native Spirituality for Native Churches”, Native and Christian, 59.
  7. Stan McKay, “An Aboriginal Christian Perspective on the Integrity of Creation”, Native and Christian, 53.
  8. Schultz and Tinker, 윗글, 65. 원주민들은 ‘신학’이라는 용어도 이런 문화적 의식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한다. 원주민들에게는 신학은 삶과 밀접한 생활 용어이지 서구적 관점에서의 학문 분과라거나 전문적인 지식이 아니라고 제임스 웨스트(James West)는 설명한다. James L. West, “Indian Spirituality: Another Vision”, Native and Christian, 31. 참조. James Treat, “Introduction: Native Christian Narrative Discourse”, Native and Christian, 12.
  9. Nathan Fiala, “The Greenhouse Hamburger”, Scientific American 300, no. 2 (2009): 72.
  10. 물론 유럽 사회와 미국이 회복하고자 하는 남녀평등의 원리나 자연과 조화로운 삶이라는 것이 이제 와서라도 미대륙 원주민의 문화를 존중하고 재생시키자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11. Galeano, 윗글, 5.
  12. Weaver, 윗글, 158.
  13. Andrea Smith, “Dismantling the Master’s House with the Master’s Tools: Native Feminist Liberation Theologies,” Pui Lan Kwok(ed.), Hope Abundant: Third World and Indigenous Women’s Theology (Maryknoll: Orbis Books, 2010), 7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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