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간의 가문
유다 지파: 세라 > 삽디 > 갈미 > 아간
여호수아서에서 아간보다 더 자세히 인물의 족보를 소개하는 경우가 없다. 무려 4대씩이나 아간의 족보를 싣고 있다(수 7:1).
이름들
1. 아간: 수 7:1, 18, 19, 24
• 아갈: 대 2:7(갈미의 아들은 아갈이니 그는 진멸시킬 물건을 범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힌 자이며)
2. 아간의 할아버지, 삽디의 이름
• 삽디: 수 7:1, 17, 18
• 시므리: 대상 2:6
3. 아간의 증조할아버지, 세라의 이름
• 세라: 수 7:1, 18, 24; 대상 2:6
• 시므리: 대상 2:6(역대기에서 아간이 아갈로, 삽디가 시므리로 바뀌어 나오는 것과 달리 세라는 같은 세라로 등장)
• 세라 족속: 수 7:17 – 이 경우 특정 인물명으로 쓰인 것이 아니라 문중의 이름으로 쓰임
이름의 어근(root)이 가진 뜻
1. 아간: ‘굽은/휘어진'(be curved)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으나 정확하지 않음. 성경 외 문헌에서도 사람 이름으로 등장.
2. 아갈: 어근(root)의 의미는 ‘부수다'(break, disturb, destroy). 같은 어근을 가진 ‘오그란’이란 이름이 민수기에 다수 등장(민 1:13; 2:27; 7:22, 77; 10:26). ‘아갈’이란 이름은 대상 2:7 외 성경 어디에도, 성경 외 문헌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음.
3. 갈미: vineyard
4. 삽디: give a gift
5. 시므리: sing praise or prune
6. 세라: shine
이야기의 핵심
아간의 족보에는 여섯 개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중 아갈을 제외하고 나머지 이름은 모두 고대근동의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갈미, 삽디, 시므리의 경우는 한 단어 짜리 이름에 쓰이는 전형적인 접미사가 쓰였고, 아간과 세라는 성경 외 문서에서 이름으로 쓰이는 것이 확인된다. 그러나 유일하게 아갈의 경우는 대상 2:7 외 어떤 고대근동 문헌에도 나타나지 않으며, 이름에 쓰이는 흔한 접미사도 쓰이지 않았다.
나아가 갈미, 삽디, 시므리, 세라의 어근은 긍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어 사람 이름으로 쓰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아갈은 매우 부정적 의미의 어근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아갈은 이름으로 사용되던 어휘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 따라서 대상 2장의 아갈이란 특수한 용어는 여호수아 7장, 아간 이야기의 핵심인 ‘괴롭게 함’을 연상시키는 것이며 아골 골짜기에 대한 언어유희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수정한 이름일 것이다. 조금 더 자세히 알아 보자.
아간/아갈은 가나안 정복 당시 첫 정복지였던 여리고의 ‘온전히 바친 물건'(헤렘)에 욕심이 생겨 이를 훔쳤고, 자기 장막에 숨겼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계속 정복을 진행하여 다음 성읍인 ‘아이’를 공격했으나 어이 없이 패배하고 말았다.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아간의 범죄 때문이었다. 여호수아는 야웨로부터 패배의 원인을 듣게 되었고, 곧장 이스라엘에 괴로움을 가져 온 자가 누구인지 제비뽑기를 통해 색출한다. 아간이 뽑혔을 때 여호수아는 아간/아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25절):
“아카르타-누 야으코르-카 야웨”(너는 우리를 괴롭게 하였다. 야웨께서 너를 괴롭게 하실 것이다.)
최대한 단순하게 ‘아카르’의 활용을 보여 주기 위해 본문의 일부만 번역한 것이다. 본래 위 문구의 첫 문장은 “너는 왜 우리를 괴롭게 했느냐?”라는 의문문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괴롭게 하다’라는 표현에 쓰인 히브리어의 기본형이 ‘아카르’ 즉 ‘아갈’이다. 동사 ‘아카르'(아갈)는 ‘카’에 단모음 /ㅏ/가 쓰이고, 이름의 ‘아카르'(아갈)는 ‘카’에 장모음 /ㅏ’가 쓰인다. 하지만 동사와 명사의 모음 길이 차이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역대기 본문은 의도적으로 아간을 ‘아카르'(아갈)이라고 표현하여 그가 불러온 ‘괴로움’을 연상시키려고 한 것이다. 또한 아카르는 괴로움의 골짜기인 아골(아코르) 골짜기의 언어유희이기도 하다. 실제 아갈이란 이름이 쓰인 대상 2:7을 보면 이 점은 더 분명해 진다. 본문은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아카르 오케르 이스라엘” (아카르(아갈)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했다)
여호수아 7장에서 아간으로 명시된 이름을 역대상 2장의 편집자는 아카르(아갈)로 표시했고, 이어 ‘오케르’(‘아카르’ 동사의 칼-남성-능동분사-단수형)를 써 언어유희를 구사했다.
그런데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과연 ‘아간’이 원래 이름이고 ‘아갈’은 언어유희를 위해 수정된 이름일까? 오히려 여호수아서가 ‘아갈’을 ‘아간’이라고 바꾸어 기록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만일 여호수아의 ‘아간‘이 원본이라면 역대기는 언어유희와 본문 의미 강조를 위해 다소 동화적 이름인 ‘아갈‘을 작명하여 삽입한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반대의 경우라면, 즉 이 일화가 본래 교훈적 설화로 그 주인공의 이름이 ‘아갈’이라면, 여호수아서 최종본은 이 동화적 이름을 ‘아간’으로 수정하여 동화적 성격을 감춘 것이 된다. 구약성경에는 ‘동화적 이름’을 활용한 ‘동화적 이야기’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다음과 같은 예를 들 수 있다. 창세기 4장에서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고도 허망하게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을 ‘아벨’이라고 부르고 있고, 룻기에서는 허약하게 태어나 요절한 나오미의 자식들을 ‘말론’과 ‘기룐’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그런데 ‘아벨’의 히브리어는 ‘헤벨’로,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다’는 표현에 쓰인 말과 같은 단어이며, HALOT에 따르면 ‘말론’은 ‘sickly person’, ‘기룐’은 ‘frailty, mortal’이란 뜻이다. 이런 이름들은 동화적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허구적 이름으로, 마치 ‘견우와 직녀’ 이야기에서 ‘견우'(牽牛)가 소를 치는 자로, ‘직녀'(織女)가 베틀을 짜는 자로 등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아갈’은 괴로움이라는 뜻이며 그의 이야기에서 정말 그가 괴로움을 일으키며 그 스스로도 괴로운 결말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여호수아 7장의 아간이 본래 ‘아갈’이라면 이 이야기는 교훈적 허구이며 후에 여호수아서에 편승될 때 허구적 성격을 줄이기 위해 아갈을 아간으로 수정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칠십인역을 들 수 있다. 칠십인역은 여호수아와 역대기상 모두에서 ‘아간’을 achar(Αχαρ), 즉 ‘아카르'(아갈)로 음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처드 헤스는 칠십인역의 음역이 더 오래된 본문 혹은 원본을 옮겼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마소라 본문이 훌륭한 언어유희를 담고 있는 ‘아갈’이란 이름을 수정하여 굳이 ‘아간’으로 바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헤스의 생각과는 달리 이 설화의 허구적 성격을 줄이기 위해 본래 ‘아갈’이었던 본문을 여호수아서의 편집자가 ‘아간’으로 수정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헤스에 따르면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그의 의견이 가능성의 측면에서 더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본문의 이야기에서 아간이 처한 운명과 직결되는 표현인 ‘아갈’을 아간이란 이름 대신 사용하고 싶은 경향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아갈은 수정된 이름이며, 원래 이름은 아간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