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4장 분석

Jordan River By Jean Housen – Own work, CC BY-SA 3.0

들어가는 말

출애굽기 14장의 홍해를 건넌 사건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난 후 야웨께서 모세를 통하여 일으키신 엄청난 기적을 그리고 있다. 이 사건은 당연히 야웨의 힘을 보여 주고 있지만, 모세를 통하여 야웨가 역사하셨다는 면에서 모세의 지도력의 정당성을 보여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여호수아 4장의 요단 강을 건넌 사건도 마찬가지 이다. 모세의 자리를 승계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물’ 앞에 서게 되었고, 야웨께서는 모세에게 명령하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시어 이적을 행하게 하신다. 백성들은 마른 땅을 건넜으며, 이를 통해 여호수아의 위상은 높아 졌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당당히 설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담은 여호수아 4장을 자세히 읽어 보면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어떤 면에서 그런지 분석을 해 보고 그 의미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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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and Deuteronomy (3)

Intro

I have already posted two writings about “Joshua and Deuteronomy.” The primary concerns of the posts were that ① Deuteronomy is different from the first four books (Gen – Num) of the Pentateuch, and ② Joshua, as a part of the Deuteronomistic History(DH), is related to Deuteronomy.

There is one last item that I want to add here, but the general direction of this post is different because I am going to talk about Joshua’s connection with the four books (Gen – Num), not just Deuteronomy. Martin Noth understood Joshua, along with Judges, Samuel, and Kings, as “Deuteronomistic,” and many scholars still use the term “Deuteronomistic History” though they criticize or modify Noth’s ideas in a variety of ways. Consequently, the term “Deuteronomistic” or “Deuteronomistic History” can mislead you to think Joshua and other DH books are exclusively related to Deuteronomy. But that is not true. The books of DH are not homophonic but polyphonic. To understand Joshua (or the books of DH) properly, therefore, we must try to see a larger picture of the text instead of seeing its immediate context. Let me give you three simple examples of Joshua’s connection with Gen – 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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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와 신명기(3)

들어가는 말

나는 이미 ‘여호수아와 신명기’라는 제목과 주제로 두 개의 글을 올렸다. 그 글의 주된 관심은 ① 신명기가 앞선 네 권의 책(창~민)과 뚜렷하게 구분된다는 점과 ② 여호수아서는 소위 ‘신명기적 역사’의 일부분으로서 신명기와 깊이 연관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이번엔 방향을 정반대로 잡아 보았다. 즉 여호수아서가 신명기라는 특정 본문과만 관련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른 네 권(창~민)과도 관련된다는 것이다. 마르틴 노트는 그가 ‘신명기적 역사’로 분류한 전기예언서들(수, 삿, 삼, 왕)을 말 그대로 ‘신명기적'(Deuteronomistic)이라고 이해했고, 후대의 많은 학자들도 (다양한 비평을 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신명기적 역사’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그래서 여호수아를 포함한 소위 ‘신명기적 역사서들’은 ‘신명기적’이라는 면에서 일관성을 보여줄 것이라는 오해를 일으키게 되는데,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여호수아나 혹은 다른 신명기적 역사서들은 ‘단성'(homophonic)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다성'(polyphonic)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호수아서의 실체를 보기 위해 반드시 여호수아서와 오경 전체의 연관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그와 관련한 단편적인 예 세 가지만 들어 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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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shua and Deuteronomy (2)

Intro

This is the second post on “Joshua and Deuteronomy.” Previously, I dealt with the book of Deuteronomy to explain the subject’s background. Now let’s talk abou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books.

Why bother?

You may wonder, “why the relationship between Joshua and Deuteronomy matters so much to you?” In fact, it seems natural to assume that the two books are connected because Joshua follows Deuteronomy. However, that “this book” follows “that book” in the Hebrew Bible does not mean that those books are rel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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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와 신명기(2)

들어가는 말

이 글은 ‘신명기와 여호수아’라는 주제로 쓰는 두 번째 글이다. 지난 글에서는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신명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여기에서는 본격적으로 신명기와 여호수아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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