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는 다양한 종파가 존재한다. 소위 신교와 구교가 있는데, 구교는 크게 가톨릭(천주교)과 정교회로 나뉘고, 신교(혹은 개신교)는 훨씬 더 많은 분파가 존재한다. 크게 나누면 장로, 감리, 성결(소위 장.감.성)교가 세 개의 주요 교단이지만 2018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대한민국 종교 현황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개신교는 126개 교단이 공식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외에도 비인가 교단이 수없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루터교도 개신교에 속하지만 교회의 수가 50여개 정도로 매우 적고 신도의 수도 통계가 나와 있지 않다. 그외 당연히 가톨릭(천주교)이 있으며 정교회가 있다. 이 포스트에서는 교회 분열과 교단/교파에 대해 간략히 하려고 한다.
기독교의 기원
신약성경을 따르면 기독교는 예수가 창시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이들에 의해 형성된 것이며 오랜 세월을 지나며 정교하게 조직화되었고 성장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조직화된 종교로서 기독교의 출발점은 무엇일까? 마태복음 16:18에 따르면 예수는 베드로를 ‘반석’이라고 부르며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고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고 말했다. 복음서를 제외한 신약성경 거의 모든 본문이 사도 바울의 것이며 기독교 교리와 생활 원리에 대해서 가르친다. 이 두 사실은 초기 기독교에서 베드로와 바울이 기독교의 창시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를 밝힌다.
참고: 신약성경은 역사책이라기보다 초기 기독교가 조직화되고 굳건히 서기 위해 필요로 했던 것을 문서적 근거로 삼기 위해 저작된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가 ‘반석’이며 하늘 나라의 열쇠를 받은 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 베드로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저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의 글이 신약성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바울 말고는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기보다 기독교 조직에서 그의 권위가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의 전파와 분열
예수는 로마가 유럽과 중동 지역을 지배하던 1세기에 팔레스타인 땅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었다. 신약성경을 따르면 예수의 승천 후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이 유대인의 정기 모임인 토요 안식일 외에 예수가 부활했던 날, 즉 안식일 다음 날(현재의 일요일) 함께 모여 예수를 기리는 모임을 가졌다. 이것이 기독교의 기원이다. 처음에는 유대인들에게만 국한된 모임이 바울에 의해 외국인에게 전파되었고, 급기야 로마에까지 전파되었다.
로마의 황제 중 처음으로 기독교인이 된 사람은 콘스탄티누스1세(콘스탄틴)였다. 그는 313년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여 기독교를 합법화하였고 이로써 기독교 박해 시대를 종결지었다. 그는 그리스의 비잔티움으로 천도하여 그곳의 이름을 콘스탄티노폴리스(혹은 콘스탄티노플)로 바꾸었다. 이때부터 콘스탄티노폴리스가 기독교의 중심지가 된다. 국호는 그대로 로마 제국이었지만 이제 비잔틴 제국 시대가 시작된다. 이를 동로마 제국 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럽을 중심으로 기독교가 확산되던 중 기독교는 교리적, 정치적 혼란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콘스탄틴 황제 이후로 기독교의 중심지는 동방의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중심이었는데, 그중 서방에 있던 ‘로마교회’는 기회를 보던 중 11세기에 들어 ‘서방교회'(Catholic)로 1054년에 분리되어 교황중심주의를 펼치며 교세를 확대해 나갔다. 서방교회는 현재 가톨릭교회이다. 콘스탄티노플리스를 중심으로 이어져 내려온 기독교는 ‘동방교회’(Orthodox)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거대 기독교였던 동방교회는 이미 7세기부터 이슬람과의 잦은 전쟁으로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신성로마제국과 결탁한 서방교회는 성장을 지속하여 교황중심의 기독교를 확대해 나갔다.
교황을 중심으로 한 서방 가톨릭교회의 교리적 문제를 묵과할 수 없었던 가톨릭 사제이자 비텐베르크 대학 교수, 마르틴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95개조의 반박문’을 대학 교회의 문에 게재하여 소위 ‘종교개혁’을 촉발한다. 그리고 이후로 서방교회는 ‘개신교’와 ‘가톨릭’으로 나뉘게 된다(동방교회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한국의 기독교 전파
1. 대한성공회: 16세기 기독교 개혁 당시 파생된 교파로 영국에서 국교화하였으며 후에 세계로 퍼져 19세기 말 한국에 전파되었다.
2. 한국정교회: 동방교회에 기원을 두며 19세기 말 러시아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에 전파되었다.
3. 로마 가톨릭 교회/천주교: 기원이 정확하지 않으나 대략 16말~17세기 경에 ‘서학’으로 전래되어 스스로 신자가 되는 경우가 있었고 18세기부터는 체계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4. 한국 개신교: 1879년 이응찬, 서상륜 등의 사람들이 중국 만주에서 세례를 받고 한반도에 들어오면서 한반도에 개신교 역사가 시작되었고, 1884년 의료선교사 알렌,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들어와 포교활동을 하였다. 초기에는 선교사 신분으로 드러내 놓고 포교활동을 할 수 없어 의료선교와 학교 설립으로 선교 활동을 하였다.
5. 2018년 공식 집계에 따르면 개신교가 약 9,675천명, 가톨릭이 약 3,890천명 정도 이며, 종교를 가진 총인구 약 21,553천명 중 약 63퍼센트가 기독교인이고, 대한민국 총인구를 51,606천명으로 볼 때 26퍼센트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신앙의 다양성과 자의성
기독교는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로 분열을 거듭해 왔으며 각 교단 혹은 신도들은 그만큼 다양한 신앙관을 가지고 살아 가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공통적으로 본인이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보면 신앙은 참 자의적이다. 내가 가진 독특한 신념 혹은 믿음이 ‘기독교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인데 그 믿음의 종류가 교단마다 미묘하게 혹은 분명하게 다르고 심지어 각 교단/교파에 속한 개인들의 생각도 그 내부 안에서조차 서로 다르다. 그런데 그들 모두는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하나의 표현으로 자신을 묘사하고 규정한다. 기독교의 역사가 2000년 넘었지만 제도와 조직이 아무리 정교하게 발달하여도 다양하게 반응하고 변해가는 사람들의 신념과 믿음을 통제하거나 규범화할 수는 없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시간이 지날 수록 다양하게 변하여 가는 것이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단순하게 보이던 것이 잘 알면 알수록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은 그 대상이 무엇인든 일반적으로 사실인 경우가 많다. 예수를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단순한 믿음에서 출발하여, 믿음이란 무엇인지, 천국이란 무엇인지, 예수는 누구인지, 등등의 본질적인 질문들을 성실하게 답하다보면 무엇하나 명쾌하게 결론 내리고 절대화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기독교 신앙이 다양해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일 우리가 신앙의 다원화를 지나치게 통제할 필요가 없다면, 교리로 굳어진 제도화된 교단에 ‘철저히’ 속하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 교단의 신앙이 ‘철저히’ 옳다고 느끼는 만큼 타 교단의 신앙이 옳지 않다고 여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가장 옳은 교단으로 다른 옳지 못한 모든 교단이 흡수 통일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그 자체로 이미 타락의 길을 걷는 것임이 중세 기독교의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다. 그러나 각 사람이 자의적 관념과 자신 생각으로 자기 신앙을 추구하는 데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면 다원화를 넘어서 무질서와 혼란으로 치닫을 것도 분명하다. 그러니 교단의 역할은 다수의 사람들이 추종할 수 있는 건전한 신앙을 수립, 제시하고 교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마땅히 해야 한다. 하지만 신도들은 교단의 건전성을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필요하다면 견제할 수 있도록 신학적 소양을 키워가도록 노력하여 건강한 긴장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