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이 글은 ‘신명기와 여호수아’라는 주제로 쓰는 두 번째 글이다. 지난 글에서는 이 주제를 다루기 위한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신명기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여기에서는 본격적으로 신명기와 여호수아의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왜 연관성이 중요한가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아마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구약에서 신명기 다음 책이 여호수아니까 여호수아와 신명기가 연관성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냥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 것일 뿐인데 여기에 무슨 별다른 분석이나 설명이 필요하지?” 물론 여호수아와 신명기는 배열상 연달아 나오는 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연관성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욥기 다음에는 시편이 나오지만 욥의 내용이 시편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가서 다음에는 이사야가 나오지만 아가서의 내용이 이사야로 이어지지 않는다. 구약성경의 현 배열은 오랜 기간에 걸쳐서 다양한 저자와 편집자들이 만들어 낸 문서를 후대에 통합하여 편찬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이나 신학이 마치 하나의 책처럼 앞에서 뒤로 ‘끊김’ 없이 이어지지 않는다(다만 유사한 시기에 쓰여지거나 편집된 본문들이 있을 뿐이다). 심지어 개신교 구약성경의 현재 배열은 본래 유대교 전통에서 만든 배열과도 다르다. 유대인의 경전으로서의 ‘히브리어 성경’은 토라, 네비임(느비임, 혹은 예언서), 케투빔(크투빔, 혹은 성문서)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그 안에 배열된 순서는 개신교의 구약성경 배열과 많은 부분이 다르다. 그러니 현재 개신교 구약성경의 배열상 이 책과 저 책이 연달아 나온다고 하여 그 내용이 반드시 이어지리라고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같은 부류에 속하는 책들, 예컨대 역사서의 열왕기는 같은 부류의 사무엘 이야기의 흐름을 이어받을 수 있지만 애초에 다른 부류였던 여호수아와 신명기가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할 수 없다. 심지어 같은 부류 안에서도 서로 다른 시기에 다른 저자나 편집자가 편집한 작품이라면 내용이 반드시 이어질 필요는 없다. 그런 면에서 신명기와 여호수아의 연관성을 당연시 할 수는 없으며, 따라서 이 두 책의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이 두 책의 공통점을 분석하고 이를 해석해 보려고 하는 것이다.
참고: 유대교의 전통을 따르면 신명기는 율법서(혹은 오경)에 포함되지만 여호수아는 예언서(유대교 전통)에 속한다. 유대교의 예언서는 또 ‘전기’와 ‘후기’로 나누며 전기예언서에는 수, 삿, 삼(상하), 왕(상하)이 포함되고 후기예언서에는 개신교에서 예언서로 분류하는 책들이 포함된다. 그러나 다니엘과 애가의 경우는 유대교의 예언서에 들지 못했고 결국 ‘성문서’에 분류되었다.
여호수아와 신명기의 연관성
여호수아에 나타난 신명기 특징은 다섯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1) 거룩한 전쟁
여호수아에서 가나안 점령을 위한 전쟁은 거룩한 것이며 제의적 성격을 지니는데, 이는 신명기 20장의 내용을 반영한다. 신명기에서 말하는 가나안 정복 전쟁은 제사장의 선포로 시작되며 하나님이 직접 싸우시는 거룩한 전쟁이다. 이는 여호수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여리고 성에서의 전투가 그렇다. 이스라엘 백성이 싸운 것이 아니며 야웨께서 직접 싸우셨고, 제사장의 제의적 행위로 전쟁이 시작된다.
(2) 영토의 점령과 배분
신명기에서 언급한 가나안에서의 이스라엘 영토가 여호수아에서도 언급된다. 예를 들어 신 1:7에서는 ‘아모리 족속의 산지,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 네겝과 해변,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 등의 지역이 언급되는데 이는 여호수아에서 모두 언급된다.
또한 전쟁의 종식에 있어서도 신명기와 여호수아가 유사한 어휘를 공유하고 있다. 신명기에서는 정복 전쟁의 종결을 ‘안식’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여호수아도 동일한 개념으로 설명한다. 다음 구절을 보자
신 3:20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리니 ……
신 12: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수 1:15 여호와께서 너희를 안식하게 하신 것 같이 너희의 형제도 안식하며 그들도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을 차지하기까지 하라
수 23:1 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개역개정
(3) 하나됨
신명기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관념 중 하나가 ‘하나됨’이다. 하나님도 한 분 이시고, 그의 백성도 하나이며, 그를 섬길 장소도 오직 하나여야 한다. 여호수아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는 본문이라는 점에서 신명기의 신학을 이어받고 있다. 예컨대 가나안 정복 당시 이미 요단 동편 지파들이 살 곳은 정해져 있었고, 그들은 요단 강을 건너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나 모두 ‘하나’가 되어 강을 건넜고 함께 전투를 벌여 가나안을 점령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다시 동편으로 돌아갈 때 분열의 씨앗이 보이는 듯 한 일화도 수 22장에 기록이 되어 있는데 그 이야기도 결국 하나됨을 강조하는 본문이다. 이 일화에서 요단 동편 지파들은 요단 근처에서 자기들끼리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린다. 요단 서편의 지파들을 이를 보고 동편의 사람들이 ‘다른 제단’을 쌓아 범죄했다고 비판하는데, 동편 지파들은 오히려 그들 역시 서편 사람들과 같은 야웨의 백성이라는 증거를 삼기 위해 제단을 쌓았다고 변론한다. 이러한 목적을 이해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동편 지파의 행위를 좋게 여겼다고 기록한다. 결국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하나됨을 강조하고 있는 책이며, 그런 점에서 신명기의 강조점을 이어받고 있다.
(4) 모세의 뒤를 잇는 여호수아
모세를 잇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여호수아가 추대되는 내용은 신명기 31:7에 등장한다.
(5) 야웨의 명령(율법)을 실행하는 이스라엘
신명기가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이스라엘이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이며 특히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가진 백성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야웨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을 지켜야 할 의무와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내용은 가나안 정복 활동에 대한 여호수아의 묘사의 근본을 이룬다.
수 11:15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하나도 행하지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수 11:23 이와 같이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온 땅을 점령하여 이스라엘 지파의 구분에 따라 기업으로 주매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수 22:2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일에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여 3 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개역개정
이처럼 여호수아는 율법/토라/오경이 아닌, ‘예언서’ 혹은 ‘역사서’라는 새로운 단락을 시작하는 책이지만 명백히 ‘신명기’의 다양한 면모들을 이어받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여호수아의 내용이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로 이어지는 것은 ‘같은 역사서’ 안에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신명기에서 여호수아로 넘어가는데 이러한 긴밀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은 분명 의미심장한 것이다. 다만 그 의미가 무엇인가는 해석의 영역이라 ‘정답이 이렇다’고 말할 수 있지 않다.
나가는 말
이러한 공통점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우리는 더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또 스스로 답을 하면서 성경에 대한 진실과 진리에 조금씩 더 다가갈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지난 글에서 언급한 마르틴 노트는 이러한 공통점을 발견하고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라는 새로운 분류법을 생각해 냈고 구약 본문 형성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시했다. 그리고 후대의 학자들은 그의 주장에서 부족한 점을 비판하고 보완하여 성경 본문들이 어떻게 쓰여지고 편집되고 집대성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런 일들을 하였는지에 대하여 보다 합리적인 의견을 추가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