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와 신명기(1)

Excerpt

Deutche Bible Gesellschaft>>WiBiLex>>Noth, Martin

들어가는 말

여호수아와 신명기의 관련성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먼저 신명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이 포스트에서는 신명기에 대한 기초적인 사항을 먼저 알아 보고 그 다음 여호수아와 신명기에 대해 공부해 보자.

우선 마르틴 노트부터

신명기와 여호수아의 관련성을 이해하려면 먼저 마르틴 노트의 업적을 알 필요가 있다.

마르틴 노트(Martin Noth)는 구약성경의 형성 과정에서 ‘오경’이라는 첫 단락은 본래 사경(창~민)으로 구성되었고, 여기에 신명기가 추가되었다고 주장했다. 즉 신명기가 본래 오경의 결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트는 신명기가 그 뒤로 이어지는 네 권의 책들(본래 유대교 경전의 순서를 따라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의 서론이었으며 후대에 와서야 오경에 편입되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네 권의 역사서를 신명기와 상통한다고 하여 ‘신명기 역사’라고 칭했다. 물론 노트 이전에도 드 베테(de Wette)가 신명기를 앞 네 권의 책으로부터 분리해서 보아야 한다는 획기적인 발상을 제시하기는 하였으나 노트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를 한 데 묶어서 보아야 하는 이유가 그가 단지 전승 수집가 정도가 아니라 매우 창의적인 역사 편찬가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드 베테의 연구가 매우 혁신적이라고 본다. 그러나 ‘신명기 역사’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신명기로부터 네 권의 역사서로 이어지는 대 서사를 하나의 모음집으로 본 노트의 영향은 그보다 훨씬 컸다. 지금도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이 네 권의 책이 ‘신명기’ 역사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은 노트의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가늠하게 한다.

  • 주의: 노트가 주장한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의 개념은 모든 학자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니나 워낙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개념이어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자신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소위 신명기 역사’라는 말을 쓰곤 한다. 즉 “흔히 신명기 역사라고 부르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는 뉘앙스를 주기 위해 ‘소위’라는 말을 앞에 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 역시도 노트의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한 것이었는지 말하고 있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우선 오경 안에서 신명기는 이미 기술된 출애굽 과정과 율법을 반복하여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신명기는 모세가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자신은 그 자리에 남은 채 이스라엘 백성들만 떠나 보내야 하는 상황에서 전한 세 편의 연설로 되어 있는데, 이 연설에서 모세는 앞선 책들에서 이미 모두 기술된 율법을 포함하여 광야의 여정을 모두 재언급한다. 물론 그게 뭐가 이상하냐고 할 수도 있겠으나 오경 안에서 동일한 사건을 두 번, 혹은 그 이상 언급하는 것은(특히 언급한 내용이 세부 사항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은) 자료 구분의 근거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명기를 전체적으로 특수한 자료로 보는 것이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다.

또 신명기는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하지 않는다. 창세기는 당연히 첫 책이기 때문에 ‘그리고’ 라는 말로 1:1을 시작하지 않지만 오경의 다른 책들의 경우 1:1이 모두 ‘그리고’라는 말로 시작하여, 이야기가 이전 서사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개역개정 번역에서는 말을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그리고’를 생략하고 있으나 원문에는 모두 ‘그리고’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유독 신명기만 첫 구절에 접속사 ‘그리고’가 없이 독립적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런 점은 신명기가 다른 책들에 비해 독립적인 성격을 가졌다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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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조금 복잡한 이야기를 해 보자. 오경에 존재하는 네러티브와 법율들은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여 집대성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전통적으로 오경에 사용된 자료를 네 개로 분석하는데, 그게 바로 그 유명한 J, E, D, P 자료이다(J=야웨 자료, E=엘로힘 자료, D=신명기 자료, P=사제 자료). 그런데 특이한 것은 J, E, P 자료의 경우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 골고루 사용되었는데, D 자료의 경우는 거의 신명기에 국한되어 있다. 이는 D가 앞 네 권으로부터 독립된 책이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사실 신명기에 쓰인 자료를 D, 즉 Deuteronomic source(신명기 자료)라고 칭하는 것도 ‘신명기’ 자료의 독특성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창세기부터 민수기까지의 책들에는 창세기 자료 혹은 민수기 자료 같은 표현이 없다.

그렇다면 신명기는 무엇이 그렇게 독특할까? 신명기의 저자는 우상 숭배를 배격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 ‘다른 신들'(엘로힘 아헤림)이란 표현을 유달리 많이 사용한다. 우상 숭배 금지야 구약 전체에서 강조되어 있기 때문에 특별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지만 금지 조항을 표현함에 있어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의 표현이 독특하다는 것이다. 대한성서공회의 성경읽기 웹사이트에서 ‘다른 신들’이란 표현을 검색해 보면 출애굽기에서 두 구절이 나오는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대부분 신명기에서 발견되며(무려 16구절) 그 외에도 ‘신명기 역사’에서 매우 빈번하게 사용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신명기는 ‘마음, 힘, 뜻’이라는 단어(예컨대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를 자주 사용한다. 대중에게 잘 알려진 ‘쉐마 이스라엘’로 시작하는 신 6:4-5이 이 표현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구절이다.

신 6: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개역개정)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혹은 이와 유사한 표현은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며 다른 곳에서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이런 특징적 표현들은 아무래도 ‘말’이다 보니 보기에 따라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신명기는 신학적으로도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는데 대표적으로 ‘제의중앙화’ 사상이 그것이다. 신명기에 따르면 예배는 야웨께서 선택하신 오직 한 곳에서만 드려야 한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출 20:24은 예배의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출 20:24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개역개정)

위 구절은 예배하는 곳 어디든 야웨께서 임하여 복을 주시겠다고 말한다. 그런데 다음 신명기의 구절은 야웨께서 택하신 곳에서만 예배하라고 명령한다.

신12:13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개역개정)

신명기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야웨께서 택하실 한 곳에서만 예배하라고 명령한다. 분명 출애굽기 20:24과 양립하기 어려운 신학이다.

그런데 신명기의 제의 중앙화 사상은 신명기 역사의 마지막 책인 열왕기가 왕들의 행적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히스기야와 요시야는 모든 지역 성소들과 산당을 제거했기 때문에 야웨 앞에서 정직하게 행한 왕이였다고 평가하며 심지어 전무후무한 위대한 왕으로 칭송된다. 반면에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 여로보암은 북왕국의 벧엘과 단에 성소를 마련하여 제의 질서를 교란하고 우상 숭배를 부추겼다는 이유로 매우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고, 악한 왕들은 하나같이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는 표현을 쓰는 등 ‘악의 상징’으로까지 사용되었다.

정리

이외에도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를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다양한 표현이나 신학 관점이 있겠지만 일단 이정도로 설명을 마무리 하겠다. 노트의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 이론은 발표 이후 구약 학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물론 모든 학설이 그렇듯 그의 이론은 완벽한 것은 아니어서 현재 그의 이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에 대한 연구가 이만큼 발달하게 된 것은 노트의 공로가 크다. 특히 과거 여호수아 연구는 오경(특히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이 여호수아서에서 성취된다는 네러티브의 연속성 때문에 신명기 역사로서의 연구보다 오히려 ‘육경'(Hexateuch, 창~수)의 마지막 책이라는 관점에서의 연구가 중요했다. 특히 오경의 P 자료와 여호수아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중요한 여호수아 연구의 화두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게 된 것은 마르틴 노트가 신명기와 신명기 역사를 한데 묶고 그 저자를 ‘창의력 있는 위대한 신명기 사가’라고 평가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나가는 말

이 글은 여호수아와 신명기의 연관성에 대하여 글을 쓰려다가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쓴 것이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본격적으로 여호수아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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