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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개역개정, 전 2:24
코헬렛은 인생을 괴로움으로 가득 채우는 것보다 즐기며 사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중 2장 24절에서 코헬렛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것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는데, 이를 『개역개정』은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이라고 번역한다. 그런데 이 번역은 코헬렛의 생각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코헬렛은 ‘수고하는 것’을 인생을 즐기는 방식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먹고 마시는 것을 인생에 있어 거의 유일하게 좋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고하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달리 헛된 것이며 괴로움을 더하는 요인이다. 아래 구절을 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전도서 1장, 『개역개정』
코헬렛은 수고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역개정』의 번역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수고하는 것’이란 표현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떻게 번역해야 적절한지 알아 보자.
원문 살펴 보기
먼저 아래 원문을 보라. 2장 24절의 원문에 ‘수고하는 것’이란 표현은 구절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단어(정확히는 ‘그의 수고 속에서'(8))이다. 반면에 코헬렛이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 그 예시로 삼는 것은 ‘먹는 것과(3) ‘마시는 것과'(4) ‘보여 주는 것'(5), 이렇게 세 가지다. 이 중에서 마지막에 제시된 ‘보여 주는 것’은 경험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는 은유적인 표현으로 쓰였으며, 구체적인 사항은 아래 부연 설명을 하겠다.
이 문장은 1, 2번과 나머지 3-8번으로 나뉘어진다.
사람에게(2) 좋은 것은 없다(1)
+ 먹는 것과(3) 마시는 것과(4) 그의 수고 속에서(8) 그의 영혼/마음에게(6) 좋은 것을(7) 보여 주는 것(5)
이 문장의 두 부분을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 문맥상 들어갈 수 있는 말은 아마도 ‘~외에’일 것이다. 즉 이 문장은 ‘~외에 사람에게 좋은 것이 없다’는 식의 표현이 된다. 그런데 이 두 부분이 연결되는 곳에 있는 표현은 3번의 첫 글자인 접두사 ש(쉐)이다. 이 접두사가 과연 ‘~외에’라는 의미로 쓰일 수 있는 것인지를 파악해야 이 문장의 의미가 확실해 진다.
여기서 이 문장의 첫 번째 난관을 만나게 된다. 왜냐하면 접두사 ש(쉐)는 일반적으로 관계대명사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관계대명사는 보통 앞에 어떤 선행사가 등장해야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데, 이 문장에서는 선행사로 볼 수 있는 것이 2번 ‘사람에게’밖에 없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 문장은 ‘먹고 마시고… 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good in human who eats, drinks …)라는 식으로 번역을 해야 하는데, 문맥상 먹고 마시는 것은 인생에 있어 거의 유일하게 좋은 것이라고 코헬렛은 평가한다. 따라서 이 번역은 수용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3번의 접두사 ש(쉐)의 기능을 무엇으로 보아야 할까?
3번에 쓰인 관계대명사 ש(쉐)는 후기 히브리어(Late Biblical Hebrew-LBH)에서 종종 כי(키)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전도서의 히브리어가 후기 히브리어라는 사실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여기서 ש(쉐)는 כי(키)와 같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의미는 ‘제외하고/exept for’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위에 내가 제시한 ‘~외 사람에게 좋은 것은 없다’라는 식의 번역이 가능해 진다. 전도서의 언어 분석에 대해서 자세히 공부하고 싶다면 안톤 슈어스(A. Schoors)의 The Preacher Sought to Find Pleasing Words를 참고하라.
따라서 이 문장은 “사람에게 (ㄱ)’먹는 것’과 (ㄴ)’마시는 것’과 ‘(ㄷ)’그의 수고 속에서(8) 그의 영혼에게(6) 좋은 것(7)을 보여 주는 것(5)’ 외에 좋은 것은 없다”가 된다.
개역개정의 문제
그런데 『개역개정』은 3번의 첫 글자(접두사 ש)를 관계대명사로 번역하여 ‘사람이 먹고 마시고…’라는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ㄷ)항목의 ‘그의 수고 속에서 그의 영혼에게 좋은 것을 보여 주는 것’을 ‘수고 하는 것’으로 번역했다. 즉 8번의 부사구(그의 수고 속에서)를 명사구로 번역하여 ‘수고 하는 것’이라고 번역한 것이다. 그 결과 코헬렛이 인생에 있어 좋은 것이 거의 없는데 그 와중에 좋은 것이라고 추천하는 세 가지 중 하나에 ‘수고 하는 것’을 추가했다. 즉 “사람이 먹는 것(3번)과 마시는 것(4번)과 수고하는 것(8)보다 더 기쁜 것/좋은 것은 없다(1번).”라고 해석한 것이다(참고: 1번의 ‘엔-토브’는 ‘좋은 것은 없다’라는 말로도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라는 말로도 번역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해석은 코헬렛의 생각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며, 나아가 문법적으로도 ‘먹는 것과 마시는 것’과 병행 문구로 볼 수 없는 8번의 부사구(그의 수고 속에서)를 명사구(수고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러면 일단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외하고 명확한 부분만 번역해 보자: ‘먹고 마시는 것 외에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 이렇게 번역하고 나면 남은 어휘는 5-8번이다. 이제 아래 그림을 보면서 5-8번 단어를 번역해 보자.
사실 5-7번의 구문은 어렵지 않다. 5번(베헤르아)은 ‘보다’라는 말의 사역형 동사로 ‘~에게 ~을 보여 주다’라는 의미이며 뒤이어 나오는 6번과 7번이 명확하게 각각 ‘~에게’, ‘~을’의 기능을 수행한다. 즉 ‘그의 영혼/마음에게 좋은 것을보여 주다(문맥상 ‘보여 주는 것’)’라는 말이다.
그런데 『개역개정』은 5번 어휘를 번역하지 않고 무시한다. 그렇게 하면 결국 6번 ‘그 마음을’이라는 목적어는 1번 동사의 목적어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게 된다. 즉 ‘~보다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로 이해하게 된다는 말이다 . 하지만 6번 어휘는 5번 동사의 간접목적어 역할을 해야만 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역개정처럼 5번 동사를 무시하게 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탄생한 번역이 바로 ”사람이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것[보다] 그 마음을(6)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1)”라는 번역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문제를 삼을 수 있는 부분은 『개역개정』의 ‘비교급’ 구문 사용이다. ‘~보다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라는 표현은 아마도 본문의 구문을 소위 ‘better-than saying’이라 불리는 지혜문헌의 통상적 수사(טוב……מן)(토브-민 구문)로 파악했기 때문일 것이다(예컨대 잠 3:14; 8:11, 19; 15:6: 16:8, 32; 17:1; 22:1; 27:5, 10 등).
그러나 이 문장의 구문은 טוב(1번 토브), 뒤에 전치사 מן(민)이 등장하지 않아 ‘better-than saying’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다. 만일 בעמלו(바아말로, 그의 수고 속에서)의 전치사 ב를 מן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일종의 better-than saying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번역하게 되면 ‘사람이 수고하는 것보다 그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는 말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외 ‘먹고 마시는 것보다 그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은 없다’는 말을 만들 수는 없다. 3번과 4번(먹고 마시는 것)은 비교를 나타내는 מן이나 8번 같은 전치사 ב가 없기 때문에 오직 8번만 비교급으로 번역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문장은 ‘~외에’라고 번역할 수 있는 ש(쉐)가 분명히 존재하고, 일반적인 better-than saying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도 않기 때문에 『개역개정』의 비교급 번역은 수용되기 어렵다.
히지만 ‘~외에’를 비교급으로 의역할 수는 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번역이 가능하다
사람에게 먹고 마시고 그 수고 속에서라도 영혼에 좋은 것을 경험하게 하는 것보다/외에 좋은 것은 없다
이상으로 2장 24절의 『개역개정』이 가진 문제에 대해 알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