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의 족보 속 리브가

Excerpt

창세기 22장에 보이는 편집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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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21   그의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형제는 부스와 아람의 아버지 그므엘과
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23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의 아내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24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창 22:20-22절은 나홀의 아들 여덟 명을 소개한다. 그리고 23절에서는 ‘이렇게 총 여덟 명이 나홀의 소생이다’라는 자연스러운 문구로 나홀의 족보를 종결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삭의 아내가 바로 나홀의 막내 아들 브두엘의 딸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런데 이 번역은 감추고 있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다’라는 말이 히브리어 23절 원문에는 후반절이 아닌 전반절에 나온다는 사실이다.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이 순서를 바꾸고 문장을 하나로 이어 번역했다. 만일 순서만 바꿨다면 다음과 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여덟 명이 나홀의 소생이다. 그리고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다.’

이 어순의 변경이 갖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 그런데 그 의미를 생각해 보기 위해 먼서 이해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본문이 편집의 결과로 현재 형태가 되었고, 창 22장의 끝자락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를 먼저 살펴 보자.

창 22:20-24은 나홀의 족보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나홀의 아들의 명단을 나열한 문서에 그의 막내 아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의 이름이 등장한다. 리브가가 이 족보에 유일하게 등장하는 나홀의 손녀이다. 그외에 누구도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리브가의 오빠 라반도, 나홀의 장남의 자녀도 등장하지 않는데 리브가의 이름이 등장한다. 그러니 당연히 이 이름은 편집의 결과로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의 편집자 혹은 저자는 더 큰 서사의 흐름을 위해 리브가를 삽입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나홀의 열두 아들의 명단에 리브가의 이름을 넣을 이유가 없다.

이 글의 서술자가 리브가를 넣으려 했던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다. 그런데 창 22에서 그 약속을 성취하여야 할 이삭이 거의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며, 하나님의 약속도 파기될 위기에 당면하게 된다. 하지만 이삭은 결과적으로 살아남게 되었고, 이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위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수행해야 했다. 즉 그는 누군가와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이야기의 저자는 이삭의 아내를 소개하고 싶은 것이다. 그 아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여 아이를 낳고 후손을 이어 그 민족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는 은총을 실현 할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리브가의 이름이 이삭이 인신제사 사건으로부터 가까스로 살아남은 직후, 그리고 실제로 이삭이 결혼을 하기 직전에 나타나고 있는 이유다.

그래서 저자는 기존에 있던 나홀의 족보를 활용하였다. 리브가를 언급하기 위해서는 브두엘을 언급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반드시 나홀을 언급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홀 이상은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이, 이미 데라의 자손으로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이 언급되었었기 때문이다.

그 원본 형태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홀의 족보에서 그의 아들이 모두 열둘이라는 사실은 이 족보가 리브가나 브두엘의 정체를 알기기 위해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본래 나홀의 위대함이나 열두 부족을 이룬 나홀 족속의 기원을 알리려는 의도로 작성된 것임을 말한다. 이는 마치 이스라엘 역사에서 야곱/이스라엘의 열두 아들이 상징하고 있는 바가 매우 크다는 점과 유사한 것이다. 원래 문서 혹은 구전 전승에서 나홀의 막내 브두엘은 그리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리브가도 마찬가지다. 리브가는 수많은 손녀들 중 하나였거나 아니면 아예 손자 손녀들은 없었던 족보였을 것이다. 리브가의 오빠 라반조차 등장하지 않으며 나홀의 장남의 자손들도 아무도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짐작이 가능하다. 만일 이 족보가 원래 훨씬 더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면 이 글의 편집자는 나홀의 열두 아들만을 간추리고 유일하게 리브가만 남겨 놓았다고 보아야 한다. 아무튼 이야기의 저자는 리브가의 이름을 나홀의 아들의 목록에 넣고, 이 족보 이야기를 22장 20절 이하에 위치시켜 브두엘과 그의 딸 리브가를 부각시켰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 사건의 전조가 되는 이삭과 리브가의 결혼을 미리 준비하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개역개정판 23절에서는 히브리어 원문의 전반절과 후반절의 위치를 바꾸어 놓음으로 편집의 흔적을 감추어 버린다. 이것에 내가 처음에 ‘어순의 변경이 갖는 의미는 생각보다 크다’라고 말한 이유다. 물론 어순을 바꾸어 놓아도 곰곰히 생각해 보면 편집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흐름이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에 원문의 어순에 비하여 편집의 흔적을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개역개정의 23절은 ‘이것이 나홀의 여덟 아들이다’라는 식의 언급으로 나홀의 아들의 목록을 종결한 후, 마지막에 리브가의 이름을 ‘추가’로 언급한다. 이런 어순 변경은 나홀의 아들의 목록에 부가적으로 리브가의 이름이 언급된 것으로 보이게 만들어 매우 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하지만 23절 원문은 22절 마지막에 브두엘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바로 리브가의 이름을 언급하고, 그 후에 ‘이것이 나홀의 여덟 아들이다’라고 나홀의 아들의 목록을 종결하기 때문에 편집자가 손을 댄 흔적을 후대의 독자들에게 상당히 두드러지게 남겨 준다.

번역이 자연스럽다고 원문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원문은 수 많은 편집의 결과로 완성되어 지금의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창 22:20-24처럼 많은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 이 본문 분석을 통해 구약성경의 편집 역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참고로 조엘 베이든(Joel Baden, Yale University)은 그의 책 The Composition of the Pentateuch에서 이 본문의 저자가 야훼 기자(Jahwist)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나의 번역으로 CLC에서 곧 출판될 예정이다(<오경의 형성: 문서가설 새롭게 하기>).

2 thoughts on “나홀의 족보 속 리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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