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라는 제목에 대하여

Excerpt

‘출애굽’은 애굽에서 나왔다는 말이다. ‘나옴’은 해방이나 탈출을 의미한다. Exodus는 그보다 조금 더 넓은 의미의 단어다. 우선 ‘애굽’이란 표현이 없으며 탈출뿐만 아니라 출발, 이주 등의 의미도 있다.

출애굽기란 제목에 대한 이야기

출애굽기(出埃及記)라는 말은 애굽에서 나온 이야기의 기록이란 말이다. ‘애굽’은 ‘티끌 애(埃)’와 ‘다다를(혹은 미칠) 급(及)’자를 쓴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기보다 유사한 음을 달은 제목이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애굽이 아니라 ‘애급‘이다. 아마도 ‘굽’이란 발음을 나타낼 한자가 마땅치 않아서 ‘‘자를 쓴 듯하다. 

애굽은 히브리어로는 מצרים(미츠라임)이다. 애굽은 미츠라임의 헬라어 Αἴγυπτος(아이귑토스)에서 어미(suffix) ‘오스’를 제외한 ‘아이귑’을 ‘애굽’으로 음역한 것이다. 영어의 Egypt 역시 헬라어 Αἴγυπτος의 음역인데 영어 발음의 특성상 ‘이집트’로 소리를 내게 되었다. 우리가 미츠라임 대신 애굽/이집트란 명칭을 쓰는 이유는 유럽과 미국이 전세계에 끼친 영향이 커서 세계의 지명을 나타낼 때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집트’가 더 나은 표현이고 ‘애굽’은 성경에서만 쓰이는 어설픈 음역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애굽‘이 ‘이집트‘보다 원어(헬라어)의 발음에 더 가까운 음역이다.

영어 번역 성경에서 이 책은 ‘Exodus‘이다. 그리스어 ἔξοδος(엑소도스)를 라틴어화한 명칭이며 다양한 맥락으로부터의 ‘나감‘을 뜻한다. 즉 탈출이 될 수도 있고 어려움으로부터의 해방, 체액의 배출, 다툼이나 논쟁의 종결 등의 의미로 쓰일 수 있다. 여기서는 ‘탈출’이나 ‘해방’의 의미로 쓰였으며 단순히 ‘나옴’의 의미로 쓰였다고 볼 수도 있다. 가톨릭성경의 명칭인 ‘탈출기‘는 ‘엑소도스‘의 의미를 ‘탈출‘에 국한시켜 해석한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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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icore 님의 사진, 출처: Pexels

영어에서 Exodus는 일종의 외래어로 일반명사로 쓰일 수 있으며 탈출, 이주 등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반드시 ‘애굽‘에서의 탈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애굽이라는 지역명이 특정된 ‘출애굽기’이라는 말에 비하여 더 다양한 맥락에서 쓸 수 있다. 신학에서는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과 귀환도 제2의 엑소더스라는 말로 표현한다. 아쉽게도 ‘출애굽’은 ‘제2의 출애굽’이란 표현을 쓸 수 없다. 

그렇다고 ‘출애굽기’라는 표현보다 ‘탈출기’라는 표현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제2의 탈출‘이라는 표현도 쓸 수 없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내용상으로 보자면 엄밀히 말해서 이스라엘은 몰래 도망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출애굽‘의 성격을 어떤 말로 묘사할 것인가는 상당 부분 해석에 달렸다. 가령 출 12:39에 따르면 그들은 쫓겨나듯 나왔다. 초라해 보이긴 하지만 어쨌든 도망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열 번째 재앙 후 충격을 받은 바로가 이스라엘인들에게 나가라고 하여 나온 것이다.

출 12:39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웠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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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on Berger 님의 사진, 출처: Pexels

그러나 출 14:5에서는 명백히 ‘도망’이다. 이스라엘인들이 바로가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나왔으니 여기서는 ‘탈출‘이란 표현이 더 적합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구절에서 “우리가 어찌 이같이…… 놓아 보내었는가”라는 표현이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이 구절의 의미는 애매한 면이 있다.

14:5 그 백성이 도망한 사실이 애굽 왕에게 알려지매 바로와 그의 신하들이 그 백성에 대하여 마음이 변하여 이르되 우리가 어찌 이같이 하여 이스라엘을 우리를 섬김에서 놓아 보내었는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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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14:8에서도 출애굽 사건을 묘사하는 말이 나오는데, 이 역시 ‘탈출‘이란 표현이 적절한지 재고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도망친 것이 아니라 ‘담대히‘ 나왔기 때문이다.

14:8 여호와께서 애굽 왕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자손의 뒤를 따르니 이스라엘 자손이 담대히 나갔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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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인들이 애굽에서 나온 사건을 ‘탈출’이란 말로 묘사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따라서 탈출기 혹은 엑소더스라는 표현은 이 책의 내용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단지 애굽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출애굽’이란 말은 내용과 상충되는 면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제목이다.

이제 출애굽기가 과연 가장 적절한 제목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출애굽기라는 명칭은 이 본문이 가진 내용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출애굽기는 이스라엘인들이 주인공이 되어 애굽에서 탈출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모세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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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Prawny의 이미지

모세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인들이 학대를 받던 시기, 특별히 영아살해의 위협 속에 태어나 기적적으로 생존했고, 놀랍게도 애굽의 왕궁에서 성장했다. 그는 자기 동포를 위해 사람을 죽였다가 미디안으로 도주했으며, 미디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라는 사명을 받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왔다. 그는 하나님이 명령하신 갖가지 기적들을 일으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으며 시내산에 이르러 율법을 수여받았다. 하나님과 대면하여 이야기한 유일한 사람이 모세였다. 

결국 모세가 전무후무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앞 모압 광야에 다다른 후에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다룬 것이 출애굽기에서 신명기까지의 이야기다. 그러니 ‘출애굽기’ 역시 출애굽기의 전체 내용을 반영한다기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나왔다는 사실 하나를 반영하는 제목이라 할 수 있다.

 

 

*note: Quotations marks are not properly typed because of wordpress system e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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