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아들과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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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유대인들은 ‘아들'(벤, ben)이라는 표현을 ‘후손’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썼기 때문에 히브리어는 ‘손자’ 같은 구체적인 관계를 뜻하는 표현이 잘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구약성경에는 손자를 칭할 때 ‘아들의 아들’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창:11:31; 45:10; 46:6). 참고로 ‘아버지'(압, ʾab)라는 말도 ‘선조’를 뜻하는 단어로 넓게 쓰인다.

그런데 구체적 표현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혼동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다음을 예들을 보자.

1. 일반적으로 가족 관계를 지칭하는 아들, 딸, 손자 등의 어휘는 외국어로 번역해도 원어에 어떤 단어가 쓰였는지 비교적 명확하다. 예컨대 한글 문서를 영어로 번역한 글에 ‘grandson’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그 부분의 원문은 필시 ‘손자’라는 표현이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어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번역만으로 원문에 구체적으로 어떤 단어가 쓰였는지 알기 어렵다. 예컨대 ‘손자’는 언급한 것처럼 ‘아들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흔히 쓰는데, 이와 유사한 ‘자손’ 혹은 ‘후계자’란 표현은 ‘닌, nin‘과 ‘네케드, nekhed‘라는 단어가 따로 있다. 그리고 이 단어들도 ‘아들,’ 혹은 ‘손자’라는 말로 번역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 아비멜렉이 부지중 그의 아내를 취할 뻔했을 때, 그는 아브라함에게 앞으로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맹세를 시키는데(창 21:23), 그 부분을 개역개정판은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되이 행하지 아니하기를…… 맹세하라.” 여기서 ‘내 아들과 내 손자’는 ‘내 ben(아들)과 benben(손자)’이라는 표현이 쓰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원문은 위에 소개한 ninnekhed라는 단어가 쓰였는데, 이를 ‘자손과 후계자’라고 하지 않고 ‘아들과 손자’라고 한 것이다.

2. ben은 기본적으로 아들이란 의미이면서 동시에 손자라를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따라서 ben을 ‘손자’라고 번역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런 경우 같은 어휘를 문맥에 의존하여 달리 해석해야 하는데 해석은 항상 논란의 여지를 남길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개역개정판 창 29:5에 따르면 아브라함의 시종은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밧단아람에 가서 한 우물가에 이른다. 그리고 거기서 낯선 사람들에게 ‘너희가 나홀의 손자 라반을 아느냐’라고 묻는데, 원문에 따르면 시종은 ‘나홀의 아들(ben) 라반을 아느냐’라고 물었다. 다른 본문들에서 라반은 나홀의 아들인 브두엘이 낳은 아들이라고 소개되기 때문에 여기서 ben은 손자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라반이 나홀의 아들이라는 전승도 있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나홀의 손자라는 해석/번역은 희박하나마 논란의 여지가 있다.

모세의 장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민 10:29은 모세의 장인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이 구절에서 모세의 장인은 아마도 호밥일 것이다. 그런데 출 2:18에서 모세의 장인은 호밥이 아니라 ‘르우엘’이기 때문에 모순이 발생한다. 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두가지인데, (1) 하나는 민 10:29의 르우엘을 출 2:18과 마찬가지로 모세의 장인으로 보고 호밥을 처남으로 이해하는 것이며, (2) 다른 하나는 호밥을 장인으로 보고 르우엘을 가문의 선조로 보는 것이다. 후자의 해석이 가능한 이유는 창 25:3의 칠십인역에서 르우엘이 이미 한 문중의 조상격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자세한 사항은 여기를 참고하라). 따라서 호밥은 르우엘의 직계 자손, 즉 아들이라기보다 르우엘 가문의 아들, 즉 자손이라고 볼 수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라반도 브두엘의 아들이지만 ‘나홀의 ben으로 불린 것처럼 호밥도 르우엘의 ben으로 불렸을 수 있다. 즉 ‘호밥 벤-르우엘’이 모세의 장인의 공식 명칭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호밥이 곧 르우엘이 된다. 따라서 민 10:29은 출 2:18에서 모세의 장인을 르우엘로 소개하는 부분과 모순되지 않는다. 만일 이 관점이 옳다면 민 10:29의 ‘르우엘의 아들 호밥’은 ‘르우엘의 자손 호밥’으로 번역해야 한다.

하지만 ben을 손자라고 하는 것이 명확하게 옳은 경우도 당연히 있다. 예를 들어 창 31:28에서 라반은 도주한 야곱을 쫓아가서 만난 후에 인사할 기회도 주지 않고 도망친 것에 대해 야곱을 질책하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내 손자(ben)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여기서 ‘손자’라는 표현에 ben이 쓰였다. 문자적으로는 ‘아들과 딸’이라는 말인데 의미상으로는 손자와 딸이다. 번역은 당연히 ‘손자와 딸’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3. 히브리어 ben이 명확히 ‘아들’이라는 뜻이지만 ‘손자’로 번역해야 하는 특이한 경우도 있다.

출 31:2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이 구절은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기술자인 브살렐(Bezalel)을 소개하는데, 그는 훌(Hur)의 손자이다. 위에서 살펴본 경우들을 종합해 보면 브살렐은 ‘훌의 ben‘이거나 훌의 ‘benben‘이거나 훌의 ‘nin‘ 혹은 ‘nekhed‘여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다른 모든 경우는 가능해도 ‘훌의 ben‘이란 표현은 굉장히 어색하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해당 구절이 ‘우리(Uri)의 ben, 훌(Hur)의 ben‘이라는 표현이 되기 때문에 ben이 두 번 중복면서 의미가 모호해 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히브리어 원문에는 훌의 ben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많은 족보들이 대체로 이런 식의 구문을 갖는다. 이 경우 ‘브살렐, 우리(Uri)의 ben, 훌(Hur)의 ben‘은 브살렐은 우리의 아들, 우리는 훌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여기에 쓰인 모든 ben은 모두 아들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말로는 이런 단순 나열 방식의 구문으로 뜻이 통하지 않기 때문에 첫 번째 ben은 아들로 두 번째 ben은 손자라고 번역해야 한다(출 35:30; 38:22도 보라). 하지만 원문에서의 의미는 명확히 둘 다 ‘아들’이라는 뜻이다.

위 예와 마찬가지이면서 조금 더 복잡한 예는 다음을 보라: 민 16:1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 이 번역 역시 ‘고라, 이스할의 아들, 고핫의 아들, 레위의 아들’이라는 표현을 번역한 것이다. 우리말 구조상 어순만으로 이 혈연 관계를 명확히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ben을 꼭 ‘아들’이라고 번역하고 싶다면 다음과 같이 괄호에 있는 말을 추가해야 정확히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고라, 이스할의 아들, (이스할은) 고핫의 아들, (고핫은) 레위의 아들’ 다음 예도 보라: 민 25:7, 11; 27:1; 36:1; 신 4:9, 6:2

오늘은 히브리어의 아들과 손자라는 표현이 가진 흥미로운 부분들에 대해 알아 보았다.

1 thought on “구약성경의 아들과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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