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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4:63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개역한글)
1. 이삭의 묵상
이삭은 아브라함의 적자로 이스라엘의 조상의 계보를 이어 갈 인물이다. 그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노년에 기적적으로 얻은 아들이며, 신께서 그를 제물로 바치라고 하시어 한 번 죽임 당할 뻔하는 위기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는 이미 노인이었던 아버지를 힘을 제압하고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순종하여 제단 위에 올라,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신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준 인물로 종종 묘사되기도 한다.
창 24:63은 이삭의 신앙을 칭송하는 또 하나의 근거로 쓰이곤 한다. 창 24장은 아브라함의 종이 이삭의 신부감을 찾으러 밧단아람에 사는 아브라함의 친족에게로 갔다가 만난 리브가를 가나안으로 데려 올 때의 일화를 그린다. 63절에 따르면 이삭은 자신의 신부가 집에 가까이 오던 날 우연히 들에 나가 묵상을 하고 있었다. 기도를 강조하는 기독교 문화에서 이삭의 행동은 마치 열심히 기도하는 신앙인의 표본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랬을까? 본문의 ‘묵상’에 해당하는 단어는 사실 의미가 명확하지 않아 이삭이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개역한글판에서 ‘묵상하다’로 번역한 단어 ‘수아흐'(원형)는 구약성경 중 이 구절에 단 한 번 나온다. 이런 어휘들이 구약성경에 꽤 많이 있는데, 이를 학계에서는 hapax legomenon이라고 부른다. 고대어들은 이미 사어여서 용례가 많아야 의미가 명확해지기 때문에 이런 단어들은 의미를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심지어 고대 역본도 이 어휘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그리스어역에서는 이 단어를 to gossip이란 표현으로 해석했는데, 반면에 불가타역에서는 to meditate로 번역했다. 이 두 고대 번역이 전혀 연관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당시 번역자들에게도 이미 어휘의 뜻이 잊혀져 있음을 의미한다. 유명한 영어 번역인 KJV는 불가타역을 따라 이 부분을 “Isaac went out to meditate”로 번역했다. 마찬가지로 RSV도 “Isaac went out. . . to meditate”라고 번역했다. 이 말은 ‘묵상했다’는 번역이 과거 영어 번역의 일반적인 선택이었다는 말이다.
개역개정판에서 이삭이 묵상하고 있었다고 표현한 것은 영어 성경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더 근원적으로는 불가타역을 따르는 것이지만, 우리말 성경은 처음 번역이 시작되었을 때 영어를 쓰는 선교사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영어 성경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우리말 성경 번역에 대해서는 여기를 보라). 하지만 위에 언급한 것처럼 이 어휘의 뜻은 불분명하다. 불가타역이 무엇을 근거로 이삭이 묵상하고 있었다고 해석했는지도 알 수 없다.
2. 이삭의 배회
이삭은 리브가를 처음 만난 날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65절에서 리브가는 멀리 있는 이삭을 보고 종에게 이렇게 물었다: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리브가가 보기에 이삭은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63절의 ‘수아흐’는 아마도 배회한다는 의미와 유사한 다른 단어일 가능성이 높다. 이삭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저녁에 기도를 하러 들에 나온 것이 아니라 그냥 산책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RSV의 개정판인 NRSV는 이 해석을 받아들여 “Isaac went out. . . to walk”라고 번역했다. 그리고 ‘새번역’에서는 “산책을 하려고 들로 나갔다가”라고 번역했고 가톨릭 성경은 “들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고 번역했다.
3. 성경 속 유머
이삭이 배회했다는 상황은 아주 재미있지는 않지만 약간의 익살이 들어 있다. 리브가가 본 이삭의 첫 모습은 ‘배회하는 자’였다. 고대 사회의 풍습을 따라 리브가가 평생을 믿고 의지해야 할 남편의 첫 모습으로는 그리 믿음직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언제 자기 색시가 오려나 하고 매일매일 들에 나가 서성이며 배회하는 상황이었다면 가슴 설레는 ‘썸타기’가 의도되었을지도 모른다. 정확한 의미는 모르지만 ‘배회’하는 상황에서 처음 마주한 이삭의 모습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이 보이는 신앙적 진지함과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러니 약간의 반전이 주는 재미가 있다. 이미 다른 포스트에서 몇 번 언급을 했지만 ‘이삭’이라는 캐릭터는 그 이름도 ‘웃음’이라는 뜻이고, 성경에서 웃음을 주는 요소로 자주 등장했기 때문에, 아마도 여기서도 그럴 것이라고 추측이 가능하며, 익살스러운 요소를 더해 준다는 점에서 이삭 관련 서사의 맥락에 잘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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