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구조와 저작권 문제
혹시 “제2이사야”, “제3이사야”, 혹은 “원이사야”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사야를 연구하는 구약 학자들은 늘 사용하는 말이지만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말이다. 직관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이 말들이 이사야서의 저자와 관련이 있다는 정도를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이사야의 저자가 역사적 이사야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이사야서는 기원전 8세기의 이사야라는 인물이 살아있는 동안 예언을 선포하면서 하나님께 들은 이야기를 받아적듯 그렇게 쓴 책은 아니다. 그렇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이사야서를 3구분 하면 보통 (원)이사야(1-12, 13-23, 28-33, 36-39), 제2이사야(34-35, 40-55), 제3이사야(24-27, 56-66)로 나눈다. 원이사야는 전통적으로 1-39까지라고 여겨졌으나 최근 학계에서는 24-27과 34-35를 각각 제3, 제2이사야로 제외하기도 한다. 원이사야의 주 내용은 이스라엘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이다. 예언의 지리적 배경은 예루살렘이며 하나님이 유다를 심판하시는 도구로 사용되는 나라는 아시리아/앗수르이다 (7:17-25). 이사야라는 인물이 활동했던 기원전 8세기 중・후반은 아시리아가 근동의 제왕으로 군림하며 급기야 이스라엘을 멸망시키기까지 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원이사야의 내용은 그가 살았던 시기적 상황과 잘 맞아 떨어진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의 이사야가 “이사야서”라는 책 전체의 저자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이사야의 바벨론에 대한 경각심이 “원이사야”에서는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다는 기원전 587년, 아시리아가 아닌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였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유다의 멸망’을 예언하게 하셨다면 비록 이사야가 바벨론이 아닌 아시리아가 근동 사회를 쥐락펴락하던 시대에 살았다 하더라도 그는 아시리아보다 바벨론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했어야 한다. 그러나 이사야는 8세기 당시 아시리아의 속국 신세였던 바벨론에 크게 주목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심판하신 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 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사야가 원이사야에서 경고하고 있는 ‘심판’은 ‘유다의 멸망’이 아니라 아시리아에 의한 ‘뼈아픈 시련’ 정도로 보인다. 물론 39장에서는 유다 왕가의 몇몇이 바벨론에 끌려 갈 것을 예언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이 예언은 히스기야가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유다의 보물과 무기고를 공개한 사건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예언으로, 히스기야와 이사야 모두 이 예언을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멸망’이라는 큰 사건으로 보고 있지 않고 그저 히스기야의 잘못으로 인한 질책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원이사야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사실 이사야가 자기 시대의 정황에 맞게 예언 활동을 했다거나 혹은 바벨론에 대하여 별로 예언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원이사야의 이러한 내용을 제2, 3이사야의 내용과 연계하여 볼 때 드러난다.
To be continued…(See 이사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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