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레아의 아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야곱은 결혼하여 레아로부터 첫 네 아들을 갖게된다. 창 29:31에 따르면 하나님은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를 불쌍히 여겨 그의 태를 먼저 여셨다–엄밀히 말해서 이 구절의 히브리어 본문(마소라 본문)은 레아가 미움을 받았다고 기록한다(‘미워하다'(שנא)라는 동사의 수동태가 쓰여있음).
첫째 아들의 이름은 르우벤이다. 레아는 남편에게 미움을 받았지만 사랑을 받았던 라헬보다 먼저 아이를 낳았고 이를 하나님이 자기 괴로움을 ‘보셨다’는 징표로 이해했다. 그리하여 ‘보다’라는 동사 라아(ראה)를 사용하여 ‘르우’+’벤'(아들)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둘째 아들의 이름은 시므온이다. 레아는 이 아들의 출생을 하나님이 자기 사정을 ‘들으셨다’는 징표로 이해하고 ‘듣다’라는 뜻을 가진 ‘샤마으'(שמע)라는 동사를 활용하여 ‘쉬므온’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샤마으’는 ‘쉐마 이스라엘'(들으라 이스라엘아)이라는 표현의 어원이기도 하다.
셋째 아들의 이름은 레위이다. 미움을 받았던 레아는 이제 자기가 아들을 셋이나 낳았으니 남편이 자기와 ‘연합’할 것이라고 희망을 품었다. 그래서 ‘연합하다’라는 뜻의 동사 לוה(LV or LW; 기본형 용례가 없어 기본형 발음을 알 수 없음)를 활용하여 레비(LeVi)/레위(LeWi)라고 이름을 지었다.
넷째 아들의 이름은 유다이다. 레아는 아들을 넷씩이나 낳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마음으로 이 아들의 이름은 ‘찬양하다’라는 동사 ידה(YD; 기본형 용례가 없어 기본형 발음을 알 수 없음)를 활용하여 ‘예후다'(YehuDa)라고 지었다. 넷째 아들 후로 레아는 (한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었다.
2. 라헬의 시녀 빌하의 아들: 단, 납달리
언니 레아가 아들을 넷이나 낳자 라헬은 야곱에게 자기도 아들을 낳을 수 있도록 무엇이라도 해보라고 생떼를 쓴다. 라헬은 정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아이를 갖기 원했고, 급기야 자기 시녀인 빌하를 대리모로 사용하여 아들을 얻어낸다.
그렇게 빌하가 낳아 라헬에게 바친 첫 아들(서열상 다섯 번째 아들)의 이름은 ‘단’이다. 빌하는 자기 자식이었지만 대리모였기 때문에 아이 이름을 지을 권한이 없었다. 라헬은 이 아이를 정말 자기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식이 없던 원통함을 하나님이 ‘판결/판단을 내려’ 풀어주신 것이라고 여기고 그 아이의 이름을 ‘판결/판단하다’라는 뜻의 동사 ‘딘'(דין)을 활용하여 ‘단’이라고 지었다. 그러나 이는 라헬 자신이 선택한 자기만의 해법이지 하나님의 해법은 아니었다.
빌하는 또 다시 라헬을 위하여 아들을 낳았다. 이 아들을 갖게된 라헬은 이제 레아와의 ‘경쟁/싸움(레슬링)‘에서 이겼다고 선언하며 ‘경쟁’이란 말인 ‘납툴림'(נפתולים)을 활용하여 아이의 이름을 ‘납탈리’라고 지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주목할 부분은 라헬이 단순히 경쟁이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납툴레 엘로힘’ 즉 ‘신과의 경쟁’에서 자기가 이겼다고 표현했다는 것이다. 자기가 직접 낳은 아이가 없었던 라헬은 신이 자기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고(이것은 맞는 말이다), 신의 도움 없이도 자기는 아이를 둘이나 낳았으니 신과 싸워 이겼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하지만 라헬은 하나님과 싸워 이기지도 언니 레아와의 경쟁에서 이기지도 못했다. 레아는 성숙해가고 있지만 라헬은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여유를 갖지 못하고 출산에 집착을 보이며 섣부른 말(단, 납달리 등의 이름을 지은 것)로 실수하는 모습을 보인다.
3. 레아의 시녀 실바의 아들들: 갓, 아셀
유다를 낳고 더 이상 임신을 하지 못했던 레아는 라헬이 자기 시종을 통해 아들을 둘이나 낳는 것을 보고 자기도 같은 방식으로 더 많은 자식을 가지려고 한다. 하지만 라헬이 야곱에게 생떼를 썼다가 야곱과 크게 싸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과는 달리, 레아의 대리모 출산은 별다른 부정적인 기록이 없다.
레아는 실바가 자기에게 낳아 준 첫 아들의 이름을 ‘갓’이라고 했다. ‘갓'(גד)은 ‘행운'(fortune)이라는 뜻이다. 개역개정판에서는 ‘복되도다’라고 번역한다.
레아는 실바의 둘째 아들의 이름을 ‘아셀(아쉐르)’이라고 지었다. 이 이름 역시 갓과 비슷하게 ‘행운이라 여기다’ 혹은 ‘행복이라 부르다’는 동사 אשר(기본형 용례가 없어 기본형 발음을 알 수 없음)를 활용하여 만든 이름이다.
라헬의 도발적인 작명과는 달리 레아의 작명은 심리적으로 성숙해지는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레아도 물론 경쟁심에 아이를 가지려고 했겠지만 라헬처럼 과도하게 부정적 감정에 매몰되어 있지 않다. 특히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의 ‘유다’를 낳은 후로 ‘행운’이라든가 ‘행복’이라는 말로 아들의 이름을 지은 것은 자기 처지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고 부정적 감정들을 승화시켜 오히려 초연한 상태에 이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니면 진짜 승자의 여유로운 도발이라고 볼 수도 있다.
4. 합환채 사건, 그리고 레아의 뜻밖의 아들: 잇사갈, 스불론
야곱의 여덟 아들이 태어난 시점에 르우벤은 이미 꽤 많이 성장했다. 그는 밀을 추수하던 시기에 밭에 일을 하러 나갔는데, 우연히 ‘합환채'(두다임)를 발견한다. ‘합환’이라는 말은 “합할 합”에 “기쁠 환”을 쓰는데, ‘합하여 기쁘다’라는 뜻이다. 즉 ‘합환채’라는 말은 성적 암시가 있다. 히브리어로는 ‘두다임’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이는 여성의 가슴을 뜻하는 ‘닷데임’이라는 히브리어와 소리가 비슷하고, 성적 유희를 뜻하는 ‘도딤’이라는 히브리어와도 비슷하다. 아마도 두다임/합환채는 여성이 먹어서 성적 매력 혹은 성적 능력을 증대시키는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고대의 민간 요법이나 속설 같은 것이였던 듯하다. 르우벤은 자기가 발견한 합환채를 어머니에게 드린다.
그때까지 자기가 직접 낳은 아이가 없었던 라헬은 르우벤의 합환채 이야기를 듣고 이것을 먹으면 혹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하여 언니에게서 합환채를 뺏을 궁리를 한다. 자기에게 순순히 합환채를 내줄 리 없다고 생각했던 라헬은 언니와 야곱이 합방을 하는 조건으로 합환채를 요구한다. 라헬은 언니가 유다를 낳은 후로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되었다고 확고히 믿었기 때문에 그런 조건을 생각해 낸 것이다. 자기가 합환채의 효능으로 임심을 할 수만 있다면 언니가 야곱과 합방을 한번 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라헬은 여전히 성숙함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하지만 라헬의 계획은 크게 실패했다. 레아는 합환채를 라헬에게 준 값으로 남편 야곱과 합방을 했고 그날 기적적으로 임신하여 또 아이를 낳게 되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며 성숙해 갔던 레아와 달리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사실에 지나치게 비관한 라헬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낳으려고 했으나 신앙적 방법으로는 이 문제를 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자기 계략에 자기가 넘어가 남 좋은 일만 시킨 꼴이 되었다.
레아는 자신의 다섯 째 아들(서열상 아홉 째 아들)의 이름을 ‘잇사갈'(잇사카르)이라고 지었다. ‘잇사갈’은 ‘임금/ 값(wage, payment)’이라는 뜻의 ‘사카르’라는 말을 활용하여 만든 이름이다. 레아는 자기가 남편에게 시녀를 주었고, 하나님이 그 값을 지불하셨다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태가 닫혀 더는 아이를 못 낳을 줄 알았던 레아가 잇사갈을 낳은 뒤, 그는 또 아들을 낳는다. 그는 그 아들의 이름을 ‘스불론'(제불룬)이라 지었는데, 이는 ‘거처‘라는 뜻의 히브리어 ‘제불’을 활용한 단어이다. 아들을 여섯이나 낳았으니 이제는 남편 야곱이 자기와 함께 거할 것이라는 염원을 담은 이름이다.
스불론까지 다 합하여 이제 야곱은 열 명의 아들을 얻게 되었다.
이후에 레아는 딸 디나를 낳았다.
5. 라헬이 몸소 낳은 아들: 요셉, 베냐민
열째 아들이 나올 때까지 한 명의 자식도 낳지 못한 라헬이 마침내 아들을 낳았다. 그의 이름은 요셉인데, 이 이름의 기원은 두 가지로 설명되어 있다. 하나는 창 30:23에 나온 하나님이 자기의 치욕을 ‘없애 주셨다’라는 의미로 ‘요셉’은 ‘없애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아사프(אסף)를 활용한 이름(=오세프)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창 30:24에 나온 ‘더하다’라는 의미로, 야사프(יסף)라는 동사를 활용한 이름(=요세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라헬이 아이를 낳기 시작했으니 하나님이 자식을 ‘더하여 주실 것’이라는 의미다.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열한 명의 아들이 이렇게 태어났다. 마지막 아들은 라헬이 낳은 베냐민인데 그의 이름은 다른 열한 명이 태어난 이야기를 다루는 창세기 29-30장에 등장하지 않는다. 창세기 서사를 따르면 야곱은 31장에서 이미 밧단아람(라반의 집)을 떠나 고향으로 향한다. 그는 형 에서를 만나 극적으로 화해 하고 세겜에서 한 동안 지냈다. 그런데 거기서 레아의 딸 디나가 봉변을 당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야곱은 세겜을 떠나 벧엘로, 그리고 벧엘에서 다시 고향으로 향하는데, 라헬은 벧엘에서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베냐민을 낳고 거기서 산고로 사망하게 된다(창 35). 그곳은 에브랏이라고도 하는 베들레헴이었다. 라헬은 출산 중 죽음을 직감한 듯 ‘벤-오니’라고 소리쳤다. ‘벤-오니’는 ‘비탄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야곱은 이를 ‘빈-야민’, 즉 ‘오른손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아이러니하게도 후에 베냐민 지파는 ‘왼손잡이’로 유명해졌다(삿 20:16)
한 가지 더 주목할 사실은, 이러한 서사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창 35장에서 베냐민 출산 이야기 직후에 야곱의 열두 아들들을 모두 소개할 때는 베냐민을 포함해서 모두 밧단아람에서 태어난 것으로 소개한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