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 광야의 한 산 앞에 장막을 친 것은 그들이 애굽을 나온 후 삼 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시내 산으로 일컬어 지는 그 산은 야웨께서 강림하시어 모세와 소통하시는 곳이었으며,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수여하신 곳이기도 했다.
나의 짐작이긴 하지만 아마도 독자들은 시내 광야에서의 이야기를 매우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산에 올랐고, 무려 사십 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거기에 있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수여 받았다. 그리고 돌판에 새긴 십계명도 받았다. 그러나 이 첫 번째 돌판은 그가 하산 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상을 만들어 축제를 벌인 것을 보고 화가 나서 깨뜨렸다. 그래서 모세는 다시 산에 올라 새로운 돌판에 십계명을 받아야 했다.
이것이 모세가 십계명과 율법을 수여 받기까지의 대략적인 과정이라고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출애굽기가 그리는 모세의 동선은 생각보다 훨씬 더 파악하기 어렵다. 오경 수업을 진행해 본 결과 성경을 꼼꼼히, 많이 읽은 분들도 이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내용이 워낙 복잡해서 분석을 하듯이 본문을 읽지 않으면 사실 아무리 정독을 한다고 해도 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 한 번 정리를 해 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세는 무려 일곱 번 시내 산에 올랐고 그 중 두 번은 매우 긴 분량의 율법을 수여 받았다. 등반과 하산을 분명하게 기록하지 않은 경우도 있으나 정황상 그렇게 이해해야 하는 경우를 포함하면 모두 일곱 번 등반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본론
출애굽기 19장: 1~3차 등반
1차 등반과 하산: 출 19:3~8절
3절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개역개정
- 명령: 야웨께서 모세에게 다음 사항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하심: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다.
- 실행: 즉시 하산하여 야웨의 말씀을 전함. 백성들이 그대로 할 것을 서약함
- 이상한 점: 모세의 말을 들은 백성들이 야웨의 명대로 행할 것이라고 응답하자 모세는 그 말을 다시 야웨께 전달했다. 모세가 야웨와 소통하던 장소는 시내 산 정상인데 모세가 즉시 야웨께 백성들의 서약을 전달했다는 것은 모세가 다시 등반을 한 상태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더구나 9절에서 모세는 확실히 산에 올라 야웨와 대화를 하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면 7절에서 모세는 이미 하산하여 백성들을 만났기 때문에 9절에서 모세는 다시 등반을 한 상태로 보아야 할 것이다.
2차 등반과 하산: 출 19:9~19
위에 언급한 것처럼 2차 등반의 경우 ‘올라갔다’ 혹은 ‘부르셨다’ 이런 표현이 없이 그냥 야웨와 모세의 대화 장면(9절)으로 전환된다. 야웨와 모세의 대화가 반드시 산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등반에 대한 묘사가 없는 9절은 그냥 모세가 자신의 장막에서 야웨와 나눈 대화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10절에서 야웨는 모세에게 하산을 명령했고 14절에서 모세는 실제로 하산을 했기 때문에 9절의 내용은 산 위에서의 대화가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9~19절은 모세가 2차 등반에서 받은 명령을 다루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9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14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을 성결하게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
개역개정
- 명령: 모세는 야웨로부터 백성들을 성결하게 하여 야웨를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아직은 레위기의 성결법이 주어지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간소한 성결례들만 주어진다. 그것은 옷을 빨고 삼 일간 신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주의 사항이 있다면 야웨께서 산 위에 강림하실 때 가까이서 보기 위해 산에 올라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 실행: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백성들을 성결하게 했다.
- 이상한 점: 하나님께서는 성결하게 되는 규칙으로 성관계 금지를 명하지 않으셨으나 모세는 삼 일간 성관계를 금했다
- 결과: 야웨는 삼 일 후 시내 산 꼭대기에 강림하셨다. 그러나 강림 후 별다른 사건이 없이 또 다시 모세를 산 위로 부르셨다(3차 등반 예고). 이 장면에서 바로 십계명의 선포 장면으로 이어진다면 오히려 자연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3차 등반과 하산: 출 19:20-25
모세의 3차 등반은 다소 싱겁게 끝난다. 20절에서 야웨는 모세를 산으로 부르셨고 모세는 곧장 산에 오른다. 하지만 야웨는 21절에서 백성들이 야웨를 보기 위해 절대 올라 와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모세를 즉시 내려 보내셔서 백성들을 경고하게 하신다.
- 이상한 점: 야웨를 보기 위해 산에 올라서는 안된다는 경고는 이미 2차 등반시 전달된 내용이다. 그런데도 야웨는 모세를 다시 내려 보내셨다. 또 이상한 것은 4차 등반시 아론을 함께 데려 오라고 명령하신다. 단순히 이 명령을 위해서 내려 보내신 것이라면 2차 등반시 미리 말씀하실 수 있었던 부분이다.
20 …… 모세가 올라가매 2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려가서 백성을 경고하라…… 24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라 너는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고 제사장들과 백성에게는 경계를 넘어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 내가 그들을 칠까 하노라 25 모세가 백성에게 내려가서 그들에게 알리니라
개역개정
출애굽기 20장 1절 ~ 17절: 십계명 선포
- 맥락상 이상한 점: 모세는 19장의 말미에 나오는 3차 등반에서 아론과 함께 다시 산에 올라오라는 명령을 들었다. 따라서 20장 처음에는 아론과 함께 한 4차 등반 이야기가 이어 나와야 한다. 그러나 20장 첫 부분은 그 유명한 십계명 선포(출 20:1~17)로 시작되어 다소 맥락에서 벗어난 듯한 느낌을 준다. 이 부분은 오히려 백성을 성결하게 하라는 명령(2차 등반) 후에 나왔다면 훨씬 더 자연스럽게 이어졌을 것이다.
출애굽기 20장 21절 ~ 24장 11절: 4차, 5차 등반
4차 등반: 출 20:21~23:33(하산: 출 24:1~3)
아무튼 십계명 선포가 마무리되자 백성들은 신의 현현 앞에서 두려워 떨며 모세가 중재하여 주기를 호소한다(18~20절). 그리고 모세는 홀로 야웨께 다시 돌아간다(21절). 독특하게도 이 부분은 모세가 산에 올랐다고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흑암으로 가까이 갔다고 전한다.
4차 등반도 1차 때와 마찬가지로 모세가 하산을 했다는 기록은 없다. 다만 야웨께서 아론, 나답, 아비후, 이스라엘 70 장로들을 모두 데리고 다시 시내 산에 올라오라고 명령(5차 등반 예고)하시는 구절이 24:1, 2에 등장을 하고 있고, 모세가 백성들에게 모든 말씀과 율례를 전했다는 구절(24:3)이 있기 때문에 그가 하산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4차 등반의 이상한 점: 야웨께서는 지난 3차 등반시 모세에게 분명 아론을 함께 데리고 오라고 하셨는데 모세는 혼자 갔다.
- 주요 내용: 계약법전/언약법전의 수여(20:22~23:19)
- 법전의 주요 내용: 제단에 관한 법, 종에 관한 법, 폭행에 관한 법, 손해 배상에 관한 법, 각종 윤리 규정, 사회 정의에 대한 규정, 안식년과 안식일에 관한 법, 절기에 관한 법 등이 포함되어 있다.
- 주목할 부분
- 모세는 수여 받은 모든 율법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기록했다. 산 위에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산 하여 백성들에게 선포한 후 기록한 것이다.
- 율법을 선포한 후 모세는 백성들과 더불어 제사를 올려 드리며 언약을 지키겠다는 서약식을 거행한다. 4차 등반에서 수여 받은 법전을 ‘언약법전’ 혹은 ‘계약법전’이라 부르는 이유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5차 등반과 하산: 출 24:9~11(하산 기록이 따로 없음)
4차 등반에서 예고된 5차 등반은 아론, 나답, 아비후, 이스라엘 70 장로들과 함께하는 등반이었다. 주의 사항은 그들 모두 일정 부분 올라오다가 멈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오직 모세만 정상까지 올라가 하나님을 알현할 수 있다.
- 이상한 점: 모세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분명 정상까지 오를 수도, 야웨를 알현할 수도 없어야 하지만, 실제 5차 등반에서 그들은 산 정상에 올라 야웨를 알현한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개역개정
출 24장 12절 ~ 40장: 6차 등반, 황금 송아지 사건, 7차 등반, 시내산을 떠날 준비, 성막 건설
6차 등반: 출 24:12~31:18
출 24:11에서 산 정상에 있었던 모세는 24:12에서 다시 산 위에 오르라는 명령을 받는다. 따라서 하산에 대한 묘사가 없으나 독자는 11절과 12절 사이에 모세와 그의 일행이 이미 하산을 했다고 이해해야 한다. 모세는 6차 등반에서 여호수아를 데리고 산에 오른다(하지만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함께 시내 산에 오르라고 명령하신 적이 없다).
- 주요 내용: 추가 율법과 돌판의 수여(25~31장), 40일 동안 산에 머뭄
24: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네가 그들을 가르치도록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31:18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개역개정
- 이상한 점: 6차 등반 단락의 첫 구절과 마지막 구절에서 모두 ‘돌판’을 언급하는데, 이 돌판의 내용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첫 구절(24:12)에서는 6차 등반 동안 말씀하실 모든 율법을 다 돌판에 써 주실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마지막 구절(31:18)에서 모세에게 실제 주어진 돌판은 ‘증거판’이라 불리는 단 두 개의 판이다. 이 증거판에 쓰여진 내용을 흔히 십계명으로 이해하곤 하지만 6차 등반에서 주어진 율법에는 십계명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십계명은 이미 20장에서 선포되었다)
- 율법의 내용: 주로 성막과 제사에 관한 것
- 증거궤의 규격, 진설병을 두는 상의 규격, 등잔대와 기구들의 모양, 성막의 규격, 제단의 규격, 성막 뜰의 규격, 등불 관리 규정, 제사장의 옷에 대한 규정, 제사장이 입는 흉패에 관한 규정, 제사장 위임 예식 규정, 매일 번제의 규정, 분향할 제단의 규격, 생명의 속전에 관한 규정, 놋 물두멍 규격, 거룩한 향기름을 바르는 성물에 대한 규정, 거룩한 향품에 대한 규정, 회막의 기구에 대한 규정, 안식일 규정 등
6차 하산 후 황금 송아지 사건: 32장
황금 송아지 사건의 내용 역시 모세의 등반 과정에 버금가게 혼란한 면이 있으나 이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자. 아무튼 모세는 하산을 했고 금송아지를 만들고 축제를 벌이고 있던 백성들을 보고 화가난 모세는 증거판을 던져서 깨뜨려 버린다. 그리고 출애굽기 32장이 마무리된다.
시내 광야를 떠나라는 명령: 33장
이제 모세는 다시 산에 올라 깨뜨린 돌판을 다시 받아야 한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33장에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시내 광야를 떠나라고 명령하신다. 실제로 시내 광야를 떠나는 이야기는 민수기 10장까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출애굽기 33장의 내용은 안그래도 복잡한 출애굽기 내러티브의 흐름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7차 등반: 출 34장
33장에서 끊어진 모세의 등반과 하산 이야기는 34장에서 다시 이어진다. 32장에서 돌판을 깬 모세는 34장에서 돌판을 다듬어 만들어 다시금 시내 산에 오른다.
- 주목할 점: 제의십계명 수여(출 34:11~26)
- 34장에 다시 한 번 십계명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 십계명은 출애굽기 20장에서 선포되었던 십계명과는 달리 주로 제의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그래서 앞서 나왔던 십계명을 보통 ‘윤리십계명’이라고 부르며 34장에 새롭게 등장한 십계명을 ‘제의십계명’이라 부른다. 이 계명을 받은 후 모세가 하산 했을 때 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나고 있었다고 본문은 전한다.
- 하산 후(출 35~40): 7차 하산 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7차 등반시 받은 말씀을 전하는데, 이 말씀의 핵심은 성막을 짓는 데 필요한 예물을 바치라는 것이었다. 백성들은 자원하여 예물을 드렸고, 드디어 광야에서의 성막 건축이 시작되고 마무리되었다(35~39장). 출애굽기의 마지막 장인 40장은 완성된 성막을 야웨께 봉헌하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제 모든 율법을 수여 받았고 그 율법 중 상당 부분을 수행하게 될 성막도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드디어 시내 광야를 떠날 준비가 되었다. 이미 33장에서 시내 광야를 떠나라는 명령이 주어졌으나 위치상 40장 이후로 나와야 자연스럽다.
나가는 말
시내 광야에 도착 한 후의 모세의 동선 파악은 어떤 면에서는 별로 유용한 일이 아니다. 출애굽기 최종 본문이 다양한 자료를 취합하여 편찬한 것이라면 현재 본문의 흐름은 각 자료를 최대한 시간의 흐름 대로 짜깁기하여 나열했기 때문에 우연히, 그리고 필연적으로 발생한 부자연스러움을 갖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독자는 마치 한 사람의 저자가 이런 구조(모세의 복잡한 동선)를 의도한 것으로 이해하고 이 구조 속에서 어떤 특별한 의미를 파악하려고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내가 이 글을 올리는 이유는 시내 광야에서의 이야기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흐름을 가지고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며, 이 부자연스러움을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좋을지 이 블로그의 독자들이 직접 생각해 보았으면 했기 때문이다. 물론 문서가설을 기반으로 다양한 자료의 취합으로 생겨난 흐름이라고 이해하면 간단히 해결 될 문제지만 그것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된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1 thought on “모세는 시내 산에 몇 번 올랐나”
Pingback: 황금 송아지 사건의 전말 – unofficial bible ・ 언오피셜 바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