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노트의 신명기사가/신명기역사가

Excerpt

신, 수, 삿, 삼(상하), 왕(상하) – 이 다섯 권의 책을 신명기역사라고 칭하고, 그 저자를 포로기의 독자적 저술가라고 보았던 마르틴 노트의 생각을 대강 정리한 글. 주요 자료는 Knopper와 McConville이 2000년에 편찬한 Reconsidering Israel and Judah의 Part 1, 첫 글 “The Central Theological Ideas” (20-30).
Martin Noth
image source: UT-Austin Hebrew Bible Comps Wiki: Martin Noth

마르틴 노트의 생각

이 글은 다음 글을 요약한 것임: Martin Noth, “The Central Theological Ideas,” in Reconsidering Israel and Judah: Recent Studies on the Deuteronomistic History, ed. Gary N. Knoppers and J. Gordon McConville (Winona Lake: Eisenbrauns, 2000), 20-30. 참고: Knoppers와 McConville의 책이 담은 마르틴 노트의 글은 그의 원작(1957)을 1981년에 영어로 번역한 The Deuteronomistic History 중 13장의 내용임.

1. 신명기사가(Deuteronomist 혹은 Dtr)는 (당연히) 자신의 신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독자들이 이미 그와 같은 관점에 익숙해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며 그 관점을 드러내려는 노력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2. Dtr은 ‘성민’ 즉 선택된 백성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사용한다(주: 기독교인들에게 ‘성민’은 익숙한 개념이지만, 노트에 따르면 오경 안에서 ‘성민’의 개념은 독특한 것이다).

3. Dtr은 하나님과 그 백성의 관계를 ‘계약’이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그리고 ‘계약’은 ‘법’과 동일시된다(주: 여기서 법은 오경 전체에 걸쳐 등장하는 모든 법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신명기법전(신12-26장)을 가르킨다. ‘법’이 백성들에게 선포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그 백성의 특별한 관계성을 확정짓는 사건이 된다.

4. Dtr에서 하나님은 역사에 개입하는 신이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사역을 통해 개입하신 하나님은 그들이 죽은 후에도 이스라엘 역사에 지속적으로 개입하는 신이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 역시 하나님의 개입이 부재하여 생긴 사건이 아니라 그들의 배교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으로 일어난, 하나님의 역사 개입 사건이다.

5.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시내산 전승’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사건을 보여 준다. 그러나 그 중요한 사건에 대해 Dtr은 ‘시내’를 언급하지 않고 오직 ‘호렙’을 언급한다(주: 예외로 신 33:2과 삿 5:5에는 시내 산을 언급함).

6. 광야로부터 가나안 점령까지의 모든 일화들은 이스라엘 백성들로하여금 하나님께 충성해야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리고 ‘행위와 운명의 상관 관계’라는 신명기 역사(Deuteronomistic History or DtrH/DtrG)의 핵심 주제를 표출하는 근간이 되기도 한다.

7. Dtr은 신을 자비로운 모습으로 그리지만 결국 이스라엘의 배교는 자비의 한계를 넘어 선다. 하나님은 사사라는 구원자를 때때로 보내기도 하시며,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신하는 왕을 요구하는 죄악에도 즉각 그 죄를 징벌을 하기보다 그 왕을 통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도 하신다.

8. Dtr에게 ‘제의중앙화'(centralization of cult) 사상은 제의 자체를 장려하는 정책이 아니라 제의를 통제하는 정책이다.
– 포로기의 인물인 Dtr에게 예루살렘 예배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오직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할 수 있었을 따름이다.
– Dtr은 성전을 언급할 때나 언약궤를 언급할 때 사제(Priest)들처럼 예배를 언급하지 않는다. 심지어 솔로몬의 성전 봉헌 기도에도 성전 예배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는다. 그 기도는 주로 회개와 주님의 용서에 대해 말한다. 이는 포로기의 상황에 걸맞는다.
–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선택한 도시이며 그곳의 성전은 주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선택하신 장소로 소개된다. Dtr에게 성전은 제의의 장소라는 인식이 강하지 않다(1 Kgs 11:13, 32, 34, 36; 14:21; 2 Kgs 21:7, 23:27)
– Dtr에게 성전은 지나간 ‘역사’ 속에서 유일한 합법적 제의 장소이다.
– Dtr에게 제의중앙화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 제의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언약궤가 있는 곳에서의 제의는 예루살렘에 아니어도 가능하다. 예컨대 실로(삼상 1장)에서의 예배가 그렇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 혹은 하나님의 임재 혹은 그와 유사한 현상이 암시되어 있는 곳에서의 예배도 가능하다. 기드온의 예배(삿 6:11-24)가 그 예이다. 하지만 이 모든 예시들은 예루살렘 성전 준공 전에 허용되던 일들이다.
– Dtr은 솔로몬 성전 준공 이전의 예배 장소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사실 어떤 ‘이론’이든 신명기사가가 활용한 이론은 자기가 만든 이야기에 맞게 적당히 교정을 한다.

9. 포로 이전 예언자들은 국가적 재난을 진정한 마지막으로 여기지 않았으며 오히려 새로운 시작으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신명기사가에게 멸망은 멸망일 뿐이다. 국가적 재난은 불순종의 결과로 일어난 신의 최종 형벌이다.

10. 어떤 이는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의 말년이 회복되는 기록을 이스라엘의 회복과 새로운 시대로의 희망으로 보기도 하지만 Dtr은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기 때문에 여호야긴의 말로를 공동체적 희망을 제시하는 사건으로 볼 수 없다. 이는 남겨진 기록을 단순히 전달한 것일 뿐이다.

11. Dtr의 글은 공식적인 성격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사제 그룹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당연히 지배자 그룹에서 나온 것도 아니다. 그가 쓴 역사는 그의 사적이고 독립적인 프로젝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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