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멘트(R. Smend)의 신명기역사 분석

Excerpt

이 글은 스멘트의 연구를 요약한 것으로, 그는 신명기역사가 ‘율법적 편집자(DtrN)’에 의해 편집되었다고 주장한다. 스멘트는 특히 여호수서의 두 부분(13:1과 23:1)에서 ‘노년 고지’가 반복되는 것을 편집의 증거로 보았고, 이는 신명기역사 텍스트의 특정 양식을 나타낸다. 그의 제자 W. Dietrich는 후속 연구에서 예언적 편집자(DtrP)의 존재를 추가로 주장하며 이론을 확장하였다.
Peter Matzen,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스멘트는 신명기역사의 2중 편집설을 주장했다. 다른 글에서 이미 소개한 것처럼 크로스(F. Cross)도 신명기역사의 2중 편집설을 주장했는데, 이 두 학자의 분석은 접근 방식에 있어 큰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다음과 같다.

크로스는 왕정기와 포로기의 시대적 차이에 근거하여 신명기역사에 흐르고 있는 두 가지 관점을 발견했다고 믿었고, 이를 2중 편집의 근거로 제시했다. 이와 달리 스멘트는 신명기역사 본문이 가진 작문의 특징에 근거하여 소위 ‘율법적 편집자(DtrN)‘의 존재를 주장했다. 즉 신명기역사의 원저자가 보이는 작문상의 패턴을 파악하고 여기서 벗어난 부분을 살펴 보면 유독 율법을 강조하는 ‘편집층’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의 이론은 그의 제자인 W. Dietrich예언적 편집자(DtrP)가 편집한 부분을 추가로 주장하면서 3중 편집설로 발전하게 된다. 스멘트가 원신명기역사의 층에서 DtrN을 구분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여호수서는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죽을 때가 가까왔다는 의미의 표현(노년 고지)을 13:1과 23:1에 각각 한 번씩 보여 준다. 스멘트는 이러한 반복이 불필요한 것이라고 보았고, 따라서 편집의 가능성이 있다고 파악했다. 그렇다면 어떤 구절이 더 후대의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직관적으로 보면 23장이 더 후대의 발언이다. 23장은 실제 여호수아의 임종 직전 마지막 유언을 전하는 대목이지만, 13장은 여호수아가 이미 나이가 많은데 여전히 점령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땅이 있었다는 맥락이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상 여호수아의 임종 전 마지막 말을 전하는 23장이 13장에 비해 ‘노년 고지’와 더 잘 어울린다. 그런 관점에서는 당연히 13장의 ‘노년 고지’가 편집에 의해 추가된 본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스멘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다: 13장이 편집의 결과라면 그는 왜 23장에 어차피 나올 이야기를 한참 앞선 단락에 굳이 삽입해야 했을까?

이 질문으로부터 출발하여 스멘트는 결국 13:1의 ‘노년 고지’가 원문이며 23:1의 것이 편집에 의한 추가분이라고 결론 내린다.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스멘트에 따르면 원신명기사가는 중요 인물의 나이/죽음과 그에 따른 새시대의 도래를 연달아 보여 주는 패턴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그리고 13장은 바로 그러한 원신명기사가의 작문 패턴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예컨대 수 1:1-2a에서 신명기사가는 모세의 죽음을 보여 주었고 그후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13장도 그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수 1:1-2)

스멘트에 따르면 원신명기저자는 위 구절에서 모세의 죽음과 더불어 여호수아가 이끄는 새로운 시대를 소개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신명기저자는 수 13:1에서도 여호수아가 죽음이 임박했을 정도로 나이가 많았다고 언급하며 곧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임을 암시한다. 위 구절의 밑줄 친 부분과 굵은 글꼴을 염두에 두고 아래 구절을 확인해 보라(주의: 이 단락에서도 회색 부분은 원신명기저자의 것이 아니라고 스멘트는 주장한다)

1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스멘트에 따르면 1bβ에서 6절까지는 동일 저자의 저작이 아니며 후대에 첨가된 부분이다. 원저자의 글은 7절에서 이어진다. 이 부분을 설명하면 장황해 질 것 같아 건너 뛴다. 다만 주목해 볼 점은 신명기역사의 원저자는 요단 동편 지파의 땅을 이미 분배한 것으로 저술했기 때문에 남은 땅은 아홉지파와 므낫세 반지파의 땅 뿐이다. 하지만 1bβ에서 6절까지는 온 이스라엘의 땅에 대한 이야기다. )

7 [이제] 너는 이 땅을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누어 기업이 되게 하라 하셨더라

스멘트는 수 1:1-2과 수 13:1에서 ‘나이 언급‘과 ‘신의 말씀‘이 병치되어 나온다는 점을 공통점으로 파악했고 이러한 패턴 혹은 작문 방식이 한 저자의 스타일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여겼다. 참고로 개역개정 번역에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7절 번역은 ‘너는’이라고 시작하지만 원문은 ‘이제 너는‘이란 표현으로 시작하며 이 표현은 수1:2에도 나타난다. 스멘트는 이를 동일 저자의 작문 스타일에서  기인한 현상으로 파악했다.

원신명기저자와 율법적 편집자의 관점 차이는 다음과 같다. 원신명기의 저자는 13장에서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죽을 때가 되었고, 이제 곧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인데, 그 시대는 하나님께서 요단강 서편 지역을 아홉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시는 것으로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남겼다. 이러한 패턴은 여호수아 1장에서 모세가 죽고 이제 여호수아가 이끄는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이라는 이야기 패턴을 다시 활용한 것이다.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죽을 때가 되었다는 언급은 다시 수 23장에 등장한다. 스멘트에 따르면 이 부분은 ‘율법적 편집자(DtrN)’의 작품이다. 율법적 편집자가 원신명기역사에 첨가한 내용은 율법의 강조이다.

예컨대 율법적 편집자는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두 행했고 또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가나안을 온전히 이스라엘에게 주시어 그 땅을 ‘안식’하게 하셨다. 다만 정복되지 않은 족속들은 후에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저주가 임하게 하시기 위하여 남겨 두신 것이다. 

이러한 편집의 결과로 율법적 편집자는 신명기적역사의 정복기사를 모순되게 만들었다고 스멘트는 평가한다. 원신명기사가는 개별적이고 점진적 정복 과정을 그렸지만 율법적 편집자는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진 역사를 보여 주기 위해 단합된 총공격에 의한 총체적 승리의 관점을 추가했기 때문이다. 

이 논문에서 스멘트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에 대한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지만 그는 이러한 문학적 분석을 통해 신명기역사 전체에서 율법적 편집자를 구분해 낼 수 있다고 여긴다. 예를 들어 위에 언급한 수 23장의 여호수아의 임종에 대한 내용은 율법적 편집자의 관점이다. 따라서 사사기 등, 이후의 문서에서 이 관점과 유사한 관점, 어휘, 표현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율법적 편집자의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보자면, 삿 2:20b, 21는 수 23장의 내용을 이어 받는다. 즉 가나안 족속이 이스라엘과 섞여 살게 된 것은 점진적 정복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못하여 쫓아 내지 못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시기 위해 일부러 남겨 두신 것이라는 것이다.

총평: 스멘트의 구조, 표현, 어휘 등 관련된 분석은 율법적 편집자 혹은 2중 편집설을 주장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기에는 다소 빈약하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그가 이러한 분석의 과정에서 발견한 이야기 흐름상의 분절이나 불일치는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다. 

나는 그가 근간으로 삼은 문학적 분석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오히려 오경의 자료 비평의 관점에서와 같이 흐름상의 부자연스러움이나 내용상의 불일치로부터 출발하여 그의 문학 분석을 곁들였다면 더 설득력 있는 주장이 되었을 것 같다. 

예컨대 스멘트의 주장 대로 여호수아의 정복 기사는 개별 전투에 의한 점진적 정복이라는 관점과 단합된 공격에 의한 총체적 승리라는 상충되는 관점이 등장한다. 그리고 총체적 승리를 주장하는 내용에는 유독 율법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는 편집사적 구분점으로 볼 타당한 근거가 된다. 

따라서 상충되는 내러티브 요소들은 분리하고 연결되는 내용끼리 엮어 보면 결과적으로 율법적 편집자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에 더하여 원신명기역사가의 스타일을 추가로 주장하는 방식이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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