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뢰머(T. Römer)의 신명기 연구(1): 얼개

Excerpt

이 글은 토마스 뢰머의 연구를 요약한 것이다(Thomas Römer, “Deuteronomy in Search of Origins” in Reconsidering Israel and Judah: Recent Studies on the Deuteronomistic History, ed. Gary N. Knoppers and J. Gordon McConville (Winona Lake: Eisenbrauns, 2000)). 그는 신명기적 역사의 서문 역할을 하는 신명기가 어떻게 최종적으로 오경의 결말 역할까지 담당하는 특별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는지에 대해 연구한다. 첫 번째 요약글에서는 그의 연구의 전체적 얼개만 언급할 것이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의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예시나 설명을 첨가했으나 그의 주장과 나의 설명을 따로 구분하하여 표기하지는 않았다.
Thomas Römer
© European Union, 2024, CC BY 4.0, via Wikimedia Commons

뢰머의 신명기 연구는 오경, 특별히 신명기의 역사 진술에서 이스라엘의 기원을 누구로 보는가에 대한 그의 분석에서 출발한다. 이스라엘의 기원은 창세기의 아브라함, 이삭, 야곱, 즉 고대 족장들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 국가 설립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출애굽 세대 역시도 이스라엘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뢰머에 따르면 유대인들에게 이 두 그룹 모두 ‘조상'(아보트)으로 여겨졌다. 

한 민족의 기원 설화로서 이 두 이야기(족장사와 출애굽 서사)는 표면적으로는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아브라함에서 비롯된 일개 족속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으로 성장했고, 후에 거기서 나와 가나안에 정착하여 한 국가를 형성하는, 하나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포로후기를 구성했던 ‘남은 자들’과 ‘귀환자들’의 갈등의 관점에서 보면 족장사와 출애굽 서사의 상충되는 면을 볼 수 있다고 뢰머는 주장한다. 그 주장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포로기 후로 이스라엘 백성은 본토에 남은 자유배자로 나뉘었고, 그들은 각자 자신들을 진정한 이스라엘로 여겼다. 그리고 자기 그룹의 정당성을 내세우기 위해 각 그룹은 고대 족장 설화(아브라함, 이삭, 야곱)와 출애굽 설화(출애굽 조상)를 각각의 기원 설화로 내세웠다. 땅을 잃어 버린 유배자들은 당연히 출애굽 설화에서 자신의 기원을 찾았고, 본토에 남았던 자들은 더 오랜 기원을 말하는 족장들에게서 자신의 기원을 찾았다.

그런데 위에 제시한 이유가 정말 창세기에서 신명기에 이르는 대서사를 굳이 두 가지 기원이 합성된 것으로 봐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까? 뢰머는 그렇다고 할 것이다. 왜냐하면 족장사와 출애굽 서사는 가나안/가나안인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과 태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족장사에서 가나안인들은 더불어 함께 살아가야 할 자들이다. 아브라함은 애초에 가나안에 평화롭게 정착하려고 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매장지(막벨라 굴)를 헷 족속에게서 구매했던 일화(창23장)를 보면 아브라함과 헷 족속이 쌍방간에 얼마나 신사적이고 우호적 태도를 보였는지 알 수 있다. 헷 사람들은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선물하려 하지만 아브라함은 정중하게 거절하며 제값을 치르고 땅을 매수한다. 족장사에서 가나안인들은 반드시 죽여야할 추악한 죄인들이 아니다.

반면에 출애굽 서사에 가나안인들은 반드시 죽여야할 죄인들이다. 소위 ‘신명기사가’의 관점에서 보면 이스라엘은 그들과 어떤 계약도 해서는 안되며 불쌍히 여겨서도 안된다. 앞서 언급한 헷 족속에게도 마찬가지다. 헷 족속을 존중하고 매우 우호적인 태도로 정식 매매 계약을 한 아브라함은 신명기사가의 관점에서는 옳지 않은 사람이다. 

뢰머는 족장사와 출애굽 서사가 이렇게 상반된 관점으로 쓰였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즉 이스라엘의 기원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이 오경 안에서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오경이 최종 편집 단계에서 어느 한 가지의 관점으로 축소된 것이 아니라 둘 모두를 포함하는 절충된 형태로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뢰머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초기 신명기(요시야 판)는 본래 법전 중심으로 편찬되었다(이 단계는 기원 설화와 관련 없음). 이 독립 문서는 후에 신명기사가의 편집이 더해져 신명기역사(수, 삿, 삼, 왕)의 서문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편집본은 이스라엘의 기원을 출애굽 ‘조상’들의 이야기로 전개했다. 이 편집본은 아직 신명기가 오경에 편입되기 전 단계의 문서이다.

그러다가 사제계 학파(Priestly school)에 의해 신명기는 4경(창-민)의 뒤에 첨가되고, 결과적으로 5경이 완성된다. 신명기사가의 편집본에서 ‘조상’(아보트)은 본래 출애굽 세대였으나 5경의 끝에서 ‘조상’은 창세기에서 시작된 서사의 흐름을 따라 족장들을 연상시키게 된다. 이상이 뢰머가 분석한 신명기 연구의 얼개이다.

다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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