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기원 설화에 대한 뢰머의 관점
위 구절은 포로기에 본토에 남아 있던 자들(황폐한 땅에 거주하는 자들)이 자신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간주하면서 땅의 상속권을 주장했다는 포로 후기의 정황을 알려 준다.
그러나 이 구절의 기본 취지는 포로 귀환자들의 입장에서 본토에 남아 있던 자들을 비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포로후기에 귀환자들과 남은 자들 사이에 ‘진정한 이스라엘은 누구인가’에 대한 입장을 두고 서로 갈등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뢰머의 말대로 남은 자들은 족장 시대를 그들의 기원으로 보려고 했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유배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신명기사가는 출애굽 세대를 그들의 ‘조상’(아보트/아버지)으로 칭했고, 오랜 조상들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이름 등)을 피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뢰머는 주장한다.
예컨대 신명기 26:5이하(폰 라트가 주장한 바 소위 유대인의 ‘역사신조'(historical credo)는 ‘조상’들이 애굽에서 학대를 당하다가 야웨의 도움으로 가나안을 차지하게 되었다는 신앙고백을 담고 있는데, 이 고백에서 출애굽 조상 이전의 조상은 아브라함, 야곱, 이삭으로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고 단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 통칭되었을 뿐이다. 뢰머는 유배자의 입장에서 족장들을 명시하는 것을 회피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라고 이해한다.
그렇게 보면 포로기의 신명기사가에게 그들의 기원으로 더 적합한 존재는 고대의 족장들이라기보다 출애굽 세대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 포로였던 유배자들은 출애굽 세대처럼 가나안을 차지하여 다시금 나라를 세워야 한다는 과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로후기의 상황에서 이 두 관점은 각자의 기원설화와 그와 관련된 이념적 담론을 가지고 서로 대립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제계 편집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신명기사가의 신명기 편집본이 모세의 담론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4경과 연속성을 갖는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들이 구성하려는 거대한 서사의 흐름이 모세의 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모세의 시대를 동일하게 다루고 있는 신명기만 따로 분리되어 있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뢰머는 사제계 편집자들이 신명기를 4경의 뒤에 덧붙이는 작업을 했다고 보고 있다. 즉 창조에서 시작하여 고대 족장들을 거쳐 모세의 죽음까지를 다루는 거대한 서사를 완성했다는 것이다. 그 편집의 결과, 본래 신명기역사의 서문이던 신명기는 오경의 결론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신명기역사에서는 분리되게 되었다.
사제계 편집은 신명기의 ‘조상’을 출애굽 세대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바꿔 놓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충돌하던 두 관점이 어느 정도 절충된 문서가 탄생한 것이다. 물론 보기에 따라 ‘절충’이라기보다 단지 ‘모순된’ 문서가 탄생되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아무튼 신명기는 애초에 신명기역사의 서문이었다. 최종 편집자는 그 근본을 바꿔 놓는 수준의 편집을 한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신명기는 최종 편집자의 의도대로 오경의 결말을 장식하게 되었지만 여전히 신명기역사의 서문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