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뢰머(T. RÖMER)의 신명기 연구(3): 신명기의 ‘조상’

Excerpt

이 글은 토마스 뢰머의 신명기 연구의 요약 세 번째 글이다(Thomas Römer, “Deuteronomy in Search of Origins” in Reconsidering Israel and Judah: Recent Studies on the Deuteronomistic History, ed. Gary N. Knoppers and J. Gordon McConville (Winona Lake: Eisenbrauns, 2000)). 이 글에서는 뢰머가 주장하는 바, 신명기의 ‘조상’이 뢰머의 말 대로 정말 애굽에서 거주하던 ‘조상’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시 말해서 족장들은 신명기사가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인지를 확인한다.

신명기의 '조상'은 누구일까?

앞선 두 개의 글(12)에서는 뢰머의 신명기 연구 중 초기 신명기가 신명기사가의 손을 거쳐 신명기역사의 서문으로 편집된 경위와, 이 문헌이 다시 사제계 편집자에 의해 사경(창~민)과 합성되어 오경의 결말 단락으로 자리잡게 된 과정을 요약했다.

이 연구에서 뢰머는 신명기와 신명기역사에서 ‘아보트’, 즉 조상(아버지들)이란 어휘가 족장들(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아닌 출애굽 세대를 의미한다고 주장했고, 후에 사제계 편집을 거쳐 오경의 결말로 편입된 후에야 족장들을 암시하는 표현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글에서는 오경이 아닌 신명기역사의 서론이라는 맥락에서 ‘조상’의 의미가 정말 뢰머 주장대로 출애굽 세대라고 볼 수 있는지를 검토해 보려고 한다.

먼저 신명기의 ‘아보트’의 쓰임새를 뢰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 ‘너희의 조상에게 맹세했던’–>가나안을 주시겠다고 하나님이 조상들에게 맹세하셨다는 맥락
    신 1:8, 35; 6:1, 18, 23; 7:13; 8:1; 10:11; 11:9, 21; 19:8; 26:3, 15; 28:11; 30:20; 31:7, 20, 21
  2. ‘야웨, 너희 조상의 하나님’
    Deut 1:11, 21; 4:1; 6:3; 12:1; 26:7; 27:3; 29:24
  3.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의미
    Deut 13:6-7, 28:64
  4.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만나로 이스라엘을 먹이셨다는 맥락
    8:3, 16
  5.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나라)–>포로로 끌려 갈 것이라는 맥락
    28:36
  6. 기타(다양한 맥락에서 ‘조상’)
    Deut 4:37; 5:3; 10:15, 22; 26:5; 30:5, 9; 5:9; 31:16

위에 제시한 구절들에는 모두 ‘아보트'(조상)가 쓰였다. 

신명기가 창세기에서 이어지는 서사라는 점에서 신명기의 ‘조상’은 의례 족장들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실제 족장들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뢰머는 신명기사가의 이스라엘 역사(신+수, 삿, 삼, 왕)는 족장 시대가 아니라 애굽 시대에서 출발한다고 주장한다. 만일 그렇다면 최종편집이 이루어지기 전 신명기사가의 ‘신명기’에서 ‘조상’은 출애굽 세대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러한 면은 최종본에도 어느 정도 남아 있다.

근거 1

이 주장에 대해 뢰머가 제시하는 첫 번째 근거는 ‘네/너희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이라는 반복 문구가 지시하는 ‘조상’들이 족장들을 의미한다는 어떤 암시도 없고, 오히려 애굽 이후 세대나 가나안에 정착한 조상들을 광범위하게 의미한다는 점이다(조금 복잡한 세부 사항이라 다 요약할 수 없지만, 뢰머에 따르면 신명기에서 모세의 청중으로 ‘너/너희’로 지칭되는 대상은 1차적으로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사람들이지만 포로기의 독자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가나안에 정착한 사람들도 때로는 ‘조상’으로 간주된다).

예컨대 ‘네 조상들이’ 알지도 못했던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경고(13:6)는 가나안에 입성했을 때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섬기지 말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경우 그들이 ‘알던’ 가나안의 우상들에 대해서 창세기 서가가 중요하게 다루지 않기 때문에 뢰머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다.

또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우상을 섬기게 될 것이라는 예언성 진술(28:64)은 포로기 유대인의 입장에서 가나안에 정착한 조상들이 가나안의 우상을 섬겼던 이력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경우는 위 예와 달리 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에 확실히 애굽 세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만 ‘너희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이셨다는 표현(8:3, 16)은 출애굽 세대일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조상을 반드시 족장들로 특정할 수도 없긴 하다. 출애굽 이전에 애굽에 살던 조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뢰머는 여기서 ‘조상’ 역시도 족장들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애굽에 살던 조상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한 뢰머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가지려면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 이상 자세한 설명은 논문에 제시하지 않았다. 

근거2

다음은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란 표현이 등장하는 본문에 대한 뢰머의 해석에 대해 알아 보자. 이 본문들은 ‘너희’라는 말과 함께 쓰이는 부분이 많다. 예를 들어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1:11)와 같이 청중인 ‘너희’와 ‘너희의 조상’을 동시에 언급한다는 것이다. 

뢰머는 신명기사가가 이 수사적 전략을 통해 과거 세대와 현재 세대의 연속성을 강조하려 했다고 주장하며, 그 조상은 족장이라고 특정할 수 없는 광범위하고 불특정한 대상이고, 특히 가나안을 약속받은 출애굽 세대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 역시 뢰머의 해석이 확실이 맞다고 받아들여지려면 더 자세한 주장이 제시되어야 할 듯하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확실한 근거로 뢰머가 제시하는 본문은 신 26:5이하의 ‘역사 신조’ 단락이다. 이 본문에는 애굽 이전 세대의 조상을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명시하지 않고 단지 ‘방랑하는 아람 사람’으로 통칭할 뿐이다. 그리고 이 본문은 가나안을 족장들에게 약속하셨다는 말이 없고, 오히려 애굽에 내려간 자기 조상들이 부르짖자 야웨께서 그 부르짖음에 응답하시어 가나안을 주시게 된 것으로 묘사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단락에 쓰인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들으시고’라는 표현이다. 애굽에서 억압당하던 출애굽 세대의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께 부르짖는 내용이다. 여기서 조상이 반드시 애굽에 살던 조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뢰머는 명기 본문과 병행되는 민20:6을 비교해 보면 이 ‘조상’이 분명히 애굽에 살던 조상이라는 사실이 확실해 진다고 주장한다.

신26: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히며 우리에게 중노동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민20:15 우리 조상들이 애굽으로 내려갔으므로 우리가 애굽에 오래 거주하였더니 애굽인이 우리 조상들과 우리를 학대하였으므로 16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신 26:6이하와 민 20:15이하는 같은 내용으로 되어 있으며 표현도 매우 유사하다. 따라서 신명기 본문 이해는 민수기 병행 본문을 통해 보충할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민수기에서 ‘조상’이 애굽에 내려가서 학대를 당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신명기 본문 만으로는 신 26:7에 쓰인 ‘조상’이란 표현을 누구로 봐야 할지 명확하지 않지만 민수기를 토대로 보면 그 ‘조상’은 애굽에 정착하여 살던 ‘조상’임이 명확해 진다.

근거3

뢰머는 조상에게 ‘맹세하신’(šbʿniphal)이라는 표현이 쓰인 곳의 ‘조상’ 역시 애굽에 살던 조상들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신명기의 맥락에서 야웨께서 ‘맹세하신’ 언약은 ‘호렙’에서의 언약에 기초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야웨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이 있었고, 호렙에서 그 언약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며 계명을 주셨기 때문에 ‘조상’에게 맹세하신 언약은 곧 애굽에 살던 조상을 의미한다.

족장들의 경우 아브라함은 ‘언약’을 받은 조상이긴 하지만 이삭이나 야곱은 ‘언약’의 당사자로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상’(아보트, 아버지의 복수형)은 문자적으로 아브라함을 지칭할 수 없다.

예외로 신명기 속의 사제계 본문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맹세로 언약하신 대상으로 언급되긴 하지만 그것은 가장 최종 단계의 오경 편집에서 추가된 문구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신명기사가의 편집 단계에서 사제계 본문을 고려할 필요는 없다.

‘조상에게 주리라 맹세하신 땅’은 창세기부터 이어지는 서사상 맥락에서 당연히 족장들을 가르킨다고 여겨져 왔다. 그러나 뢰머는 이 ‘조상’ 역시 출애굽 세대를 가르킨다고 주장한다. 뢰머에 따르면 족장사에서 ‘맹세한다’라는 표현은 땅을 주신다는 언약의 맥락에서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아예 없는 것은 아님). 특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약속은 신명기사가의 표현이며, 족장사에서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이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출 3:8로 출애굽 세대에게 하신 야웨의 표현이다.

결정적으로 애굽에서 야웨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시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다는 신명기사가의 관점은 에스겔 20장에 드러나 있다.

겔20:4 인자야……  알게 하여 5 이르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옛날에 내가 이스라엘을 택하고 야곱 집의 후예를 향하여 내 손을 들어 맹세하고 애굽 땅에서 그들에게 나타나 맹세하여 이르기를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하였노라 6 그 날에 내가 내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들을 위하여 찾아 두었던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요 모든 땅 중의 아름다운 곳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7……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니라 하였으나 8 그들이 내게 반역하여…

마치며...

뢰머의 주장은 신명기 자체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 오경의 형성에 대한 것이다. 사경의 형성, 신명기역사의 형성, 그리고 신명기역사로부터 신명기의 분리와 사경과의 합성으로 인한 오경의 형성이라는 그의 기본 관념을 토대로 그의 주장을 전개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신명기는 본래 오경의 일부가 아니라 신명기역사의 서문이었기 때문에 신명기가 다루는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은 당연히 출애굽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뢰머의 주장과 같이 신명기의 ‘조상’은 족장들이 아니라 애굽에 살며 학대를 당했던 그들의 조상들이며, 신명기역사의 포로기의 독자들에게는 출애굽 당사자들을 포함하는 개념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의 오경 형성에 대한 주장이 맞느냐는 것이겠지만…

그의 주장에는 분명히 일리가 있다. 그런데 신명기의 ‘조상’이 족장을 의미할 수 없다는 그의 세부 주장들은 다소 미흡하게 느껴졌다(여기에 요약된 내용). 위 요약에서도 군데군데 언급을 했지만 신명기의 ‘조상’의 쓰임새는 반드시 족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없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애굽에 살던 족장들만을 지시한다고 확신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그가 주장한 오경의 형성 과정을 근거로 신명기가 본래 족장사에서 비롯된 서사를 이어받지 않고 있다는 부분을 부각시킬 수 있었다면 그의 주장은 더 설득력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한 가지 사족을 달자면, 뢰머의 학자로서의 식견은 뛰어나지만 그가 글을 전개하는 방식은 비효율적이라는 평가를 하고 싶다. 많은 유명 학자들이 사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 느끼고 있다. 나 같은 무명의 학자들은 어떻게든 독자들에게 친절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보통은 주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유명한 학자들은 그들이 뭐라도 쓰기만 하면 일단 다수의 독자들이 주목을 해주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까? 유명 학자들의 글은 때로 생각의 흐름대로 그냥 써 내려간 듯한 인상을 받을 때가 있다. 물론 내 오해일 수도 있다. 내가 쓴 뢰머의 연구 요약본을 읽고 뢰머의 논문을 직접 본다면 아마 전혀 다른 글을 읽는 것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 요약은 그의 글을 완전히 뒤엎어서 재구성했기 때문이다.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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