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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일반적으로 가장 먼저 접하는 문장은 인사에 관한 말들이다. 안녕하세요, 헬로우, 등 인사하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운다. 하지만 성경 히브리어는 대화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성경 원문 읽기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이런 일반적인 언어 배우기 절차를 따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히브리어를 배워도 인사말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성경 히브리어를 일상 생활에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굳이 배울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흥미 부여 차원에서 보면 히브리어 학습에 약간의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구약성경의 인물들은 인사를 나눌 때 ‘샬롬’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나는 신학교에 입학하여 처음 히브리어를 배우면서 이 히브리어 단어가 우리말 ‘안녕’과 매우 유사하다는 사실을 알고는 꽤 신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샬롬’은 번영, 건강, 손상되지 않음, 평안(평화), 우호 등 다양한 의미가 있고, 인사말로서의 의미는 ‘별탈’이 없이 건강하고 평안한 상태를 말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우리말에서 ‘안녕하세요?’는 의문문인 것처럼 히브리어에서도 인사를 건낼 때 의문문으로 ‘샬롬’을 사용한다. 창 29:6의 예를 보자.
야곱이 집을 떠나 외삼촌 라반의 집 근처에 도착했을 때, 그는 어떤 우물 근처에서 만난 목자들에게 ‘너희가 라반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라반을 안다고 했고, 야곱은 ‘라반이 잘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그들은 라반이 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지금 라반의 딸 라헬이 양들에게 물을 먹이러 우물로 오고 있다고도 알려 주었다.
이 대화에서 야곱이 목자들에게 ‘라반이 잘 있느냐?’고 물었던 말이 바로 히브리어 인사말에 해당하는 표현이며, 그들이 ‘그가 잘 있다’고 말한 부분이 인사말에 대한 응답이다. 이 표현은 비록 서로간에 인사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제3자에 대하여 묻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사를 나누는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 29:6에 나오는 히브리어 인사말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그[야곱]가 그들[우물가에 있던 목자들]에게 말했다. “하샬롬 로“
(그리고) 그들이 말했다 “샬롬, 보시오, 그의 딸 라헬이 양떼를 몰고 왔소”
이 대화에서 “하샬롬 로”와 “샬롬”이 바로 인사를 주고받을 때 쓰는 상투적인 표현들이다. ‘하샬롬‘에서 ‘하‘는 단어의 맨 앞에 붙어 의문문을 만드는 불변화사이다. ‘로‘는 전치사’ ‘레‘에 ‘오‘라는 3인칭 남성 대명접미사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전치사 자체의 모음은 탈락하였다. 전치사 ‘레’는 영어의 to 혹은 for 정도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로’는 ‘그에게’ ‘그를’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정리해 보면, “하샬롬 로”는 의문문으로 ‘그에게 샬롬이 있느냐?’라는 말이다. 보다 자연스러운 표현은 ‘그에게’를 주격으로 바꾸어 “그가 평안하시냐,” 즉 “그가 안녕하시냐”이다.
‘하샬롬’이란 표현의 다른 용례들도 보자.
(1) 예를 들어 “너는 안녕하냐?”라고 하려면 ‘하샬롬 앗타‘라고 하면 된다. 혹은 그냥 사람의 이름을 붙이기만 해도 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제3자의 안부를 물을 때는 전치사 ‘레’를 썼지만 “너는 안녕하냐?”라는 표현에서는 전치사를 쓰지 않고 그냥 ‘앗타’라는 인칭대명사(인칭대명접미사가 아닌)를 직접 사용한다.
삼하 20:9 요압이 아마사에게 이르되 내 형은 평안하냐(하샬롬 아타) 하며 오른손으로 아마사의 수염을 잡고 그와 입을 맞추려는 체하매
개역개정: 이 번역은 마치 제3자에 대한 평안을 묻는 것처럼 “내 형은 평안하냐”라고 했지만 직역하자면 “나의 형제! 너는 평안하냐?”라고 해야 한다.
왕하 9: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샬롬 예후)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2) 또 다른 예는 다른 부차적인 말을 다 떼고 ‘하샬롬‘만 쓰는 경우다. 이 표현은 대상을 특정하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인 상태가 어떤지 묻는 말이다. 영어 표현인 “is everything alright?”와 잘 통하며, 우리말로는 “별일 없으시지요?”라는 말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왕하 5:21-22을 보자.
21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하샬롬)하니
개역개정
22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샬롬)……
위에 보듯이 ‘하샬롬’으로 묻는 인사말의 대답은 단순히 ‘샬롬’이라고 하면 된다. 의례적 질문이기 때문에 의례적 답을 하면 된다. 인사를 주고 받으며 간단한 대화가 마무리되고 다시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거나 자기가 가던 길을 계속 가면 된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의례적 질문에 의례적이지 않은, 진정성있고 구체적인 답변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서로 각별한 사연이 있거나 친한 경우 “별일 없으시지요?”라는 의례적 질문을 건네도 상대방은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을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왕하 9:22가 바로 그런 예에 해당한다.
엘리야가 아합과 이세벨이 세운 바알 선지자들을 갈멜 산 제단에서 심판한 후에 아합/이세벨에게 쫓기던 중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나타나셔서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왕상 19). 그런데 그는 임무를 완수하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대신 엘리야의 영적 권위가 엘리사에게 이양된다. 엘리사는 자기의 제자 중 하나를 보내어 예후에게 기름을 붓게 한다. 이때 이미 아합은 죽었고 그의 가문에서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가 그도 죽고, 그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아합이 아들 요람이 왕이 된 상태였다. 선지 생도는 예후를 찾아가 기름을 붓고 아합의 집을 심판하라는 임무를 준다. 결국 요람을 죽이라는 명령이다. 예후는 신의 뜻을 따라 혁명을 준비하고 아합의 가문을 심판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향한다.
이스르엘은 당시 요람이 전쟁에서 당한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하던 곳이다. 병상에 누워있던 요람은 예후의 무리가 이스르엘로 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사람을 보내 ‘평안하냐'(하샬롬)고 묻는다. 예후는 그를 위협하여 왕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보낸 사람이 돌아오지 않자 요람은 다시 사람을 보내 예후에게 ‘평안하냐’고 안부를 묻지만 이번에도 위협하여 왕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 이에 요람은 ‘병거’를 타고 예후를 대항하러 나간다. 그리고 ‘의례’적이지만 의례적인지 않게 ‘예후야, 평안하냐'(하샬롬 예후)라고 묻는다. 그런데 얄궂게도 그곳은 이세벨이 사법 살인을 저질러 나봇에게서 빼앗은 토지가 있는 곳이였다. ‘하샬롬 예후‘라는 인사말에 예후는 이렇게 대답한다. “마 샬롬,” 즉 “어떻게 평안할 수 있겠느냐?”라는 말이다. 예후는 ‘너의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계속되고 있는데 어떻게 평안할 수 있겠느냐?’라는 말로 의례적 인사말에 진지하고 구체적인 말로 응수한다. 사실 이미 두 차례나 예후에게 사람을 보내 평안한지 물어 본 요람의 입장에서 ‘하샬롬’이라는 의례적인 인사말은 더이상 의례적인 말이 아니었고, 예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평안하다는 말을 기대하며 묻는 말이지만 이제는 평안하지 않은 의도로 찾아 왔다는 것을 알고도 묻는 빈정거림이었던 것이다. 요람을 만난 예후는 엘리야에게 임한 예언대로 모든 심판을 행하고 바알 종교를 처단한다. 또 여전히 살아 있었던 이세벨까지도 죽인 후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히브리어를 배우는 중이라면 조금이나마 흥미를 느끼게 되는 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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