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자 라헬

Excer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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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의외의 사실

우리가 성경의 이야기나 인물에 대해서 아는 것은 읽어서 습득한 지식보다 설교자나 성경공부를 통해 들어서 알게된 지식이 더 많다. 그래서 막상 성경을 읽어 보면 의외의 사실을 종종 발견하는데, 라헬이 목자였다는 사실도 아마 그런 의외의 사실일 것이다. 오늘은 심심풀이로 라헬의 의외의 모습에 대해서 한 번 써보려고 한다.

자주 언급되지 않는 라헬에 대한 이야기

야곱이 외삼촌 라반이 사는 지역에 이르러 한 우물에 도착했을 때, 그 우물에는 세 떼의 가축과 이를 관리하는 목자들이 주변에 모여 있었다. 우물은 모든 가축 떼가 다 모인 후에 함께 물을 먹이도록 큰 돌로 막아져 있었다. 재미난 것은 야곱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마침 라헬도 아버지 라반의 가축 떼를 몰고 그 우물에 왔다는 것이다.

창 29:17에 따르면 라헬은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런데 야곱이 라헬을 처음 만난 사건을 보면 의외로 라헬은 매우 거친 야외 활동을 했던 목자였다. 흔히 여성의 아름다움은 강렬한 햇볕을 피해 피부를 곱고 부드럽게 만들어야 유지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야생 동물로부터 가축을 보호해야 하고, 더위와 추위에 항상 노출되는 임무를 ‘아름다운 여자’ 라헬이 맡아서 하고 있었다는 것은 현대인의 일반적인 예상을 벗어난 일이다.

하지만 구약성경을 자세히 보면 고대 근동에서 여자가 목자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예컨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딸이 그렇다. 그는 아들이 없이 딸만 일곱을 둔 사람이었다. 모세가 애굽을 떠나 미디안에 도착했을 때 한 우물을 만나게 되는데, 모세 역시도 가축을 돌보며 목자 노릇을 하던 이드로의 딸(출 2:21에는 르우엘의 딸이다)을 그 우물가에서 만난다. 여성 목자로서 남성 목자들을 무서워하여 가축에게 물을 먹이려면 늘 기다려야 했던 목자 십보라는 그날만큼은 모세의 도움으로 남들보다 먼저 가축들에게 물을 먹이고 일찍 귀가할 수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귀가한 딸은 아버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결국 모세는 십보라와 결혼하고 미디안 제사장의 사위가 된다.

이와 유사한 경우로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도 예로 들 수 있다. 아가서 1:5-6은 술람미 여인(후로 여주)이 오빠들의 강요로 뙤약볕에서 포도원지기 노릇을 하는 바람에 얼굴이 검게 탔다고 말한다. 그리고 1:8에서 술람미 여인의 애인(후로 남주)은 여주에게 양 떼의 발자국을 따라 와 자기의 가축을 먹이는 곳으로 와서 함께 양을 돌보자고 권한다. 즉 여주는 포도원지기도 했지만 남주의 말을 고려하면 목자 역할도 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우리는 고대 근동에서 여자가 목자가 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경우가 얼마나 평범한 것이었는지 알려면 더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왜 라헬인가? (왜 레아는 아닌가?)

라반에게 두 딸이 있었는데 레아가 아닌 라헬만 목자가 되었다는 점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물론 야곱와 라헬의 운명적인 만남을 위해 필요한 설정이었을 수 있다.) 중세의 유대인 학자 나흐마니데스(Nachmanides, 1194-1270)는 레아가 결혼 적령기의 여성이었기 때문에 남자들과 함부로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하여 라헬이 목자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해석이 의아할 수도 있으나 나름 대로 논리가 있다. 왜냐하면 야곱이 라헬을 좋아했지만 라반 입장에서 라헬은 너무 어렸고 레아는 결혼 적령기였기 때문에 라반은 라헬 대신 레아를 먼저 야곱에게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라헬은 언니 레아가 아이를 연달아 낳는 동안 자식을 하나도 낳지 못했다. 비록 성경은 하나님이 태를 열지 않으셨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생물학적 원인, 즉 라헬이 너무 어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성경에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학자들은 조혼 풍습이 있던 고대 근동에서 여성이 결혼해서 한동안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 그만큼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들이 극적으로 아이를 낳게 되는 이야기가 다수 생겨났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실제로 라헬이 요셉을 낳고는 베냐민도 나았으니 라헬이 소위 우리가 말하는 심각한 불임을 겪었던 사람이 아니었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튼 야곱이 사랑했던 라헬은 아름다운 여성이었지만 뜻밖에도 야외에서 거친일을 해야 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 나흐마니데스는 Rabbi Moshe ben Nahman이라고도 하며 R, M, B, N으로 두음문자(acronym)을 만들어 Ramba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 thought on “목자 라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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