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론의 이적과 이스라엘 백성의 즉흥적 반응 (출 4장 마지막 부분)

1. 이 포스트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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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론의 중요성이다. 이스라엘의 전무후무한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역사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진 인물이다. 그러나 아론은 아니다. 그의 자손들은 제사장 가문이 되어 계속해서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출애굽기 4장 마지막 부분에서 모세를 대신한 아론의 활약은 어찌 보면 맥락에 맞지 않는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애굽에 나타난 모세가 사람들 앞에 멋지게 등장해야 할 부분에서 아론이 오히려 부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본문을 아론이 이스라엘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드러나는 이야기가 출애굽 초반부 어딘가에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아론의 이적 이야기는 아주 적합한 곳에 위치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세는 너무 오래 애굽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아론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하는 곳에서 그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 만한 이적을 행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야기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반복된 불신앙의 시작점이 출애굽기 4장 마지막 부분(사실상 출애굽 이야기의 맨 처음 부분)에 나타나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감정적이며 즉흥적이다. 신의 이적을 보면 신을 철저히 따를 것처럼 행동하지만 현실의 어려움이 생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신을 불신한다. 출애굽 이야기의 시작부라 할 수 있는 출애굽기 4장 끝에 이적을 경험한 이스라엘이 즉흥적으로 신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주는 첫 번째 장면이 등장하는 것은 후에 나타날 그들의 즉각적이고 감정적인 부정적 반응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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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례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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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할례라는 말: 할례는 일종의 ‘포경’ 수술이다. 한국에서는 위생을 위해 이 수술을 받지만, 고대로부터 유대인들에게 이 수술은 종교 의식이었으며, 그 기원은 아브라함이 99세에 야웨로부터 아들을 약속받으며 맺었던 계약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창17). 이 의식을 표현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מול()이다. 영어로는 ‘to circumcise’로 번역한다. 그런데 한국에는 이에 상응하는 ‘동사’가 없다. ‘포경 수술을 하다‘라는 표현은 ‘의식’이라기보다 ‘수술’이라는 의미가 강해서 쓸 수 없다. ‘포경하다‘라는 말도 쓸 수 없다. 왜냐하면 ‘포경’의 사전적 의미가 “귀두가 포피에 싸여 있어 바깥으로 노출되지 못한 상태“(뉴에이스 국어사전)를 말하기 때문에 ‘포경하다’라는 표현 자체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할례‘는 이런 번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할례에서 ‘할‘은 벨-할()자이며 ‘‘는 예도-례()자이다. 즉 ‘베는 의식‘이란 말이다. 우리말에는 히브리어 מול(물)에 상응하는 동사가 없으니 이렇게 ‘할례‘라는 말을 만들어 ‘행하다’나 ‘받다’라는 말과 붙여 번역할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히브리어 성경에서 실제로 ‘할례‘라는 명사출애굽기 4장 26절에 단 한 번 등장하며 다른 용례는 모두 동사이다.

참고: 출애굽기 4장 26절에서 쓰인 명사, ‘할례’는 מולה(물라, 여성형 명사)의 복수형 מולת(물로트, 여성형 복수, 불완전 서법)이며, 남성에게 국한된 의식임에도 불구하고 문법적으로 ‘여성형’인 점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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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라는 제목에 대하여

출애굽기(出埃及記)라는 말은 애굽에서 나온 이야기의 기록이란 말이다. ‘애굽’은 ‘티끌 애(埃)’와 ‘다다를(혹은 미칠) 급(及)’자를 쓴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기보다 유사한 음을 달은 제목이다.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애굽이 아니라 ‘애급‘이다. 아마도 ‘굽’이란 발음을 나타낼 한자가 마땅치 않아서 ‘‘자를 쓴 듯하다. 애굽은 히브리어로는 מצרים(미츠라임)이다. 애굽은 미츠라임의 헬라어 Αἴγυπτος(아이귑토스)에서 어미(suffix) ‘오스’를 제외한 ‘아이귑’을 ‘애굽’으로 음역한 것이다. 영어의 Egypt 역시 헬라어 Αἴγυπτος의 음역인데 영어 발음의 특성상 ‘이집트’로 소리를 내게 되었다. 우리가 미츠라임 대신 애굽/이집트란 명칭을 쓰는 이유는 유럽과 미국이 전세계에 끼친 영향이 커서 세계의 지명을 나타낼 때 그들이 사용하는 용어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집트’가 더 나은 표현이고 ‘애굽’은 성경에서만 쓰이는 어설픈 음역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애굽‘이 ‘이집트‘보다 원어(헬라어)의 발음에 더 가까운 음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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