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부제: 야곱은 신과 싸워 이겼나?

야곱이 라반의 집을 떠나 귀향하던 중 얍복 나루에 이르렀다. 그는 에서가 복수심에 가득찬 마음으로 자기를 맞이하러 오는 것을 알고 두려워했다. 야곱은 자기와 함께 하던 무리를 세 떼로 나누어 자기보다 앞서 보내고 그들이 에서를 만나면 그에게 예물을 먼저 주게 하였다. 에서가 선물을 받고 노여움을 조금이라도 푼 후에 만나면 에서가 자기를 용서할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Continue reading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야곱의 열두 아들

1. 레아의 아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야곱은 결혼하여 레아로부터 첫 네 아들을 갖게된다. 창 29:31에 따르면 하나님은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레아를 불쌍히 여겨 그의 태를 먼저 여셨다–엄밀히 말해서 이 구절의 히브리어 본문(마소라 본문)은 레아가 미움을 받았다고 기록한다(‘미워하다'(שנא)라는 동사의 수동태가 쓰여있음).

첫째 아들의 이름은 르우벤이다. 레아는 남편에게 미움을 받았지만 사랑을 받았던 라헬보다 먼저 아이를 낳았고 이를 하나님이 자기 괴로움을 ‘보셨다’는 징표로 이해했다. 그리하여 ‘보다’라는 동사 라아(ראה)를 사용하여 ‘르우’+’벤'(아들)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Continue reading “야곱의 열두 아들”

야곱의 결혼

For English version, click here

라파엘로(1483-1520), <야곱, 레아, 라헬의 만남> 프레스코, 로마 바티칸, 로지마 팔라티 폰티피치

1. 이야기의 전개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하여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라반은 야곱에게 아무 대가를 주지 않고 일을 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계속 이런 식으로 부려 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지 야곱에게 품삯을 정하자고 제안했다. 이때 야곱은 그가 첫눈에 보고 반했던 라반의 둘째 딸 라헬과 결혼하는 것으로 7년 품삯을 대신하겠다고 답했다. 라반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야곱의 제안이 파격적이어서 쉽게 그 제안에 동의했고, 야곱은 7년이라는 긴 세월을 라헬을 얻기 위해 라반을 위해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라반의 욕심은 그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야곱이 사랑에 눈이 먼 남자라는 사실을 이용하면 그의 두 딸을 이용해 7년이 아니라 14년까지도 무급으로 일을 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약속한 7년이 지난 후 결혼식 때 라반은 약속했던 라헬이 아닌 레아를 야곱에게 주었다. 지난 7년간 언급하지 않았던 지역의 풍습을 들먹이며 레아를 먼저 줄 수밖에 없다고 둘러댔다. 그리고는 7년을 더 일을 하면 라헬도 주겠다고 새로운 계약을 제안했다. 야곱은 라헬을 위해 지난 7년을 견뎌왔기 때문에 그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야곱은 라반의 꾀에 넘어가 라헬을 얻기 위해 14년을 무급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Continue reading “야곱의 결혼”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창세기 25장 29~34절은 그 유명한 야곱이 장자의 권리를 획득하는 일화이다. 이 단락은 흔히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자기 장자의 명분을 팔아 넘긴 사건으로 이해된다. 개역개정 성경은 이 단락을 번역할 때 ‘떡’이나 ‘팥죽’ 등의 용어를 써서 ‘토착화’했기 때문에 한국 교회에서는 ‘에서’ 하면 팥죽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당연히도 에서는 팥죽을 먹은 것이 아니다. 토착화 자체는 문제가 아니지만 이런 경우 원문을 보면 필연적으로 새롭게 보이는 부분들이 있고, 그런 새로움이 유발하는 흥미도 쏠쏠히 있다. 그래서 이 포스트에서는 원문을 바탕으로 이 이야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고자 한다.

Continue reading “팥죽 한 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나는 여호와/야웨

For English version, click here

출애굽기 3장 14-15절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 처음으로 당신의 진짜 이름을 누설하는 구절로 유명하다. 개역개정에서는 14절의 이름 부분을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했고 새번역은 “나는 곧 나다”라고 번역했다. 가톨릭성경은 “나는 있는 나다”라고 번역했다. 영어 성경 NRSV는 “I AM WHO I AM”이라고 표현했다. 이 이름은 ‘에흐예’라는 동사(나는~이다)로 사실상 이름(명사)로는 기능을 하기 매우 어려운 표현이다. 그래서 이 이름은 15절에서 가서야 비로소 ‘야웨/야훼/여호와’라는 명사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출애굽기 6:3-7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발설하는 장면을 접하게 된다. 이 단락에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이스라엘의 초기 족장들에게 ‘엘샤다이'(엘샷다이)로 소개했을 뿐 그 진짜 이름을 발설하신 적은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야웨’임을 알리신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되면 그들은 그들을 구원하신 이가 바로 ‘야웨’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Continue reading “나는 여호와/야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