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Who on earth is Qohelet?

*This post was originally published bilingually in English as well as Korean back in 2017. Now the post is separated in each language. For the Korean version, see  this.

Qohelet is the protagonist of the book of Ecclesiastes in the Hebrew Bible. In some (older) English translations, including ESV, KJV, ASV, RSV, and WEB, the word “Qohelet” is translated as “the Preacher.” In some other translations, such as NIV and NRSV, the word appears as “the Teacher.” Additionally and unusually, Good News Bible (GNB) takes the word as the “Philosopher,” and Common English Bible (CEB) as “the Teacher of Assembly.” Among the translations, the most well-known designation is the “Preacher.” But Qohelet is not really a preacher or a teacher in the sense that we usually understand the terms. Perhaps, Qohelet could be seen as a teacher, since his writing, known as Ecclesiastes, is edifying after all. But the Hebrew word, “Qohelet,” does not mean “teacher.” Also, we do not call every speaking subject who provides moral and intellectual lessons te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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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번역 시리즈(10): ‘너의 창조주'(전 12: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개역개정

개역개정의 전도서 12:1에는 ‘너의 창조주’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단어는 신의 창조 행위를 묘사하는 데 쓰이는 동사 ברא(바라)단순능동(칼) 분사 남성 복수‘너의’(2인칭 남성 단수)를 뜻하는 대명접미사(ך 카)가 붙은 형태로 되어 있다. 직역하면 ‘너의 창조자들’, 즉 복수이지만 탁월의 복수 혹은 존엄의 복수로 본다면 단수로 번역이 가능하기 때문에 ‘너의 창조자’라고 옮길 수 있다. 그런데 개역개정의 ‘창조주’라는 표현은 ‘주’(Lord)라는 말이 가미되어 있어서 교조주의적 인상을 준다. 그렇다고 오역으로 치부하는 것은 지나친 평가이다. 이 번역은 정경의 맥락 속에서 충분히 용인 가능한 범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의 번역은 원문에 없는 ‘주’를 첨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적절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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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번역 시리즈(9): ‘전도자’의 성(性)

1. 히브리어 성별 이해의 중요성

히브리어는 문법상의 ‘성별’ 구분이 발달해 있는 언어이다. 그런데 우리말은 성별이 발달해 있지 않다. 즉 구약성경을 한글로 번역할 때 히브리어의 문법적 성별 구분을 한글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구약성경의 한글 번역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번역에서 원문에 포함되어 있는 성별을 보여 줄 수 없어 아쉬울 때도 있다. 예컨대 חכמה(호크마)여성 명사이며 지혜라는 뜻을 갖는다. 이 어휘는 잠언 8장에서 의인화되어 나타나는데, 문법적 성이 ‘여성’이기 때문에 의인화된 지혜 역시 ‘여성’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한글 번역에서는 이런 부분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 구절을 보면 히브리어의 성별을 구분하는 것이 본문 이해에 있어 중요할 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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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번역 시리즈(8): “지혜와 명철”(전 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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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번역에서 ‘명철’이라는 표현은 ‘지혜’와 쌍을 이루며 빈번히 등장하며, 특히 구약성경의 지혜문헌에서 많이 등장한다. 예컨대 요셉이 바로에게 조언하는 장면에서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다스리게 하시고'(창 41:33)라고 표현한 것이나, 욥기에서 소위 ‘사색적 지혜시’라 불리는 28장에서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28:12)라고 표현하며 인간 지혜/명철의 한계를 표현한 부분이나, 시편 49편의 고라 자손의 시에서 ‘내 입은 지혜를 말하겠고 내 마음은 명철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로다'(49:3)라고 말하며 지혜와 명철을 동일시하는 부분을 예로 들 수 있고, 잠언의 경우는 너무 예시가 많아 일일이 나열하기 번거로울 정도다(대한성서공회의 성경읽기 게시판에서 ‘명철’을 검색어로 찾아 보면 잠언에 얼마나 많은 예시가 나오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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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번역 시리즈(7):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전 7: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

개역개정, 전 7:14

본문에 ‘혼인집’으로 번역된 부분의 원문은 בית שמחה(베트-심하)이며, שמחה(심하)는 일반적으로  ‘즐거움’, ‘희락’ 등의 의미로 쓰이기 때문에  בית שמחה(베트-심하)는 직역하면 ‘희락의 집’이다. 개역개정의 ‘혼인집’이란 번역은 ‘희락의 집’의 의역이다. 개역개정이 이렇게 번역한 이유는 2절에서 슬픔과 기쁨을 대조하기 위해 ‘초상집’과 ‘잔치집’이란 말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4절의 ‘희락의 집’은 맥락상 2절의 ‘잔치집’과 같다고 볼 수 있고, 흔히 잔치를 벌이는 집은 혼사가 있는 집이기 때문에  בית שמחה(희락의 집)를 ‘혼인집’으로 의역한 것은 이해할만 하다. 나아가 שמחה(즐거움, 희락)는 구약성경의 다른 본문에서도 종종 혼인과 관련된 기쁨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일례로 개역개정의 렘 7:34, 16:9, 25:10은 ‘즐거워하는(שמחה) 소리’를 혼인 잔치의 소리(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연관지어 사용했으며, 아 3:11에서는 ‘혼인날’을 묘사하는 단어로 שמחה를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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