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번역 시리즈(2): 헛되고 헛되다

  • 이전 포스트에서 전도서의 주 화자의 명칭을 코헬렛으로 부르는 것이 적합하다는 설명을 제시했으므로, 이 글에서는 ‘전도자’라는 번역 대신 코헬렛이란 음역을 쓰겠다.

문법의 문제

Eccl 1:2 accordance screenshot, from the left column, BHS, NRSV, 개역한글

코헬렛의 ‘헛되고 헛되다’(הבל הבלים 하벨 하발림)라는 특징적 표현은 히브리어의 최상급인 ‘~ 중의 ~’이라는 구문으로 쓰여져 있다. 일반적으로 이 최상급 구문은 동일 단어의 단수와 복수를 병치하고 복수 단어에는 정관사를 붙여 표현한다. 즉 히브리어로 ‘가장 헛됨’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헛됨 그 헛됨들’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전도서에 등장하는 ‘헛되고 헛되다’라는 표현은 복수 명사에 관사가 결여되어 있어, 일반적인 최상급 형태와 경미한 차이가 있다. 즉 전도서의 본문에는 ‘헛됨 헛됨들’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전도서의 ‘헛됨 헛됨들’은 최상급이 아닐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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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여호수아 1장 5절 번역

BHS

여호수아 1장 5절은 번역하기에 딱히 어려울 것이 없는 평이한 문장이다. 다만 이 문장은 대명사의 사용에 있어 조금 이상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한글 번역 성경에는 언어의 특성상 그 이상한 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원문의 문제가 심오한 신학적 함의를 갖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번역은 그러한 이상한 점을 드러내지 못하는 한계를 갖는다는 점은 알아둘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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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3:14-15 스스로 있는 자, 야웨(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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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에서 도망쳐 미디안에 도착한 모세는 미디안의 제사장의 딸 십보라와 결혼하고 그곳에서 새 인생을 살던 중 어느 날 떨기나무 하나가 불에 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그 나무는 불에 타 없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이를 가까이 가서 구경하려고 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애굽으로 돌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하여 나오라고 명령하셨다. 그는 이미 애굽에서 도망친 사람이었고 너무 오래 동안 미디안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를 따르기 버거워 했다. 그래서 그는 가지 못할 변명을 늘어놓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자기 동포들이 어떤 신이 모세를 보내어 그런 엄청난 일을 벌이려 하는지 모르니 자기는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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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의 아들과 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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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유대인들은 ‘아들'(벤, ben)이라는 표현을 ‘후손’을 통칭하는 표현으로 썼기 때문에 히브리어는 ‘손자’ 같은 구체적인 관계를 뜻하는 표현이 잘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구약성경에는 손자를 칭할 때 ‘아들의 아들’이라는 말을 흔히 사용한다(창:11:31; 45:10; 46:6). 참고로 ‘아버지'(압, ʾab)라는 말도 ‘선조’를 뜻하는 단어로 넓게 쓰인다.

그런데 구체적 표현의 부재는 필연적으로 혼동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다음을 예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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