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이야기는 창세기 37장에서 시작되었다가 38장에서 갑작스럽게 유다와 다말의 이야기로 잠시 중단된다. 그리고 39장, 보디발의 집에서 다시 재개된다. 39:1에 따르면 보디발은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샀다고 전한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창세기 37:36에선 미디안 사람들이 요셉을 이집트에 끌고 와 그를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았다고 기록한다. 이러한 차이를 설명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겠지만 학계에서는 전통적으로 문서가설을 따라 자료를 구분하곤 한다(이와 관련한 글은 검색칸에서 ‘요셉 이야기’ 혹은 ‘문서가설’을 검색하여 보라). 이 포스트에서 다루려는 것은 이 차이에 대한 색다른 설명을 하려는 것은 아니고, 제목에서 언급한 것처럼 단순히 요셉이 이집트에서 만난 다양한 이집트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먼저 보디발과 간수장에 대해 알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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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셉을 산 보디발
보디발은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이다(창 37:36; 39:1). 여기서 ‘신하‘는 히브리어로 סריס(사리스)이며 친위대장은 שׂר(사르)이다.
HALOT (The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은 ‘사리스‘를 ①고위 관료(high official) ②환관(eunuch)으로 소개한다. ‘사리스’는 왕하 20:18과 사 39:7에서 ‘환관’으로 번역되었으며, 단 1장에서 다니엘과 세 친구를 왕 앞에 서게 하기 위해 가르쳤던 사람도 ‘환관’이었는데, 이 사람도 ‘사리스’로 표현되어 있다. 요셉 이야기에서 ‘사리스’인 보디발은 아마도 환관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말 성경에서 보디발을 ‘신하’로 번역했다
위 사전에서 ‘사르‘는 ①왕의 대변인(representative of the king, official) ②유명 인사, 지휘관(person of note, commander) ③무리 혹은 구역의 지도자(the leader of a group or a district)로 소개되어 있다. 우리말 성경은 이 단어를 고관(창 12:15), 장관(창 21:22), 감독(출 1:11), 다스리는 자(출 2:14), ~장(예컨대 백부장, 출 18:21), 지휘관(민 21:18), 귀족(민 22:18) 등 여러 맥락에서 다양한 어휘로 번역했다. 특이하게도 보디발의 경우는 다른 본문에는 쓰지 않은 ‘친위대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왜냐하면 사르가 타바흐, 즉 호위대(guard)라는 단어와 함께 쓰였기 때문이다.
그를 ‘친위대장’이라고 표현 한 것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사리스 사르’라는 두 표현만 가지고는 보디발의 직위가 정말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창 41:45에 따르면 바로가 요셉을 등용한 후에 그에게 ‘보디베라’의 딸 아스낫을 아내로 주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HALOT은 ‘보디발’이 ‘보디베라’의 줄인 말이라고 설명한다. 이 구절에서 보디베라는 ‘온의 제사장’이었다. HALOT의 설명을 따르자면 보디발이 곧 보디베라이며 온의 제사장이었다는 것이고, 39:1에서는 그를 넓은 범주에서 높은 고위 관료(사리스 사르)로 설명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디발(보디베라)은 비록 아내의 허위 고발로 요셉을 감옥에 넣었던 장본인이지만 후에 왕의 명령으로 요셉의 장인이 되는 아이러니를 경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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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New York, USA.
2. 요셉이 갇힌 감옥에서 근무하던 간수장
보디발은 아내의 허위 고발을 듣고 요셉을 잡아 가두는데, 희안하게도 그곳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다(39:20). 요셉은 왕의 죄수가 아니었으니 이상한 부분이 있다. 아무튼 거기서 그는 감옥의 ‘간수장‘을 만나게 되는데, 원문에서 그는 ‘שׂר בית־הסהר'(사르 베트-핫소하르), 즉 감옥(베트-핫소하르)의 ‘사르‘로 묘사되어 있다(‘사르’의 사전적 의미는 위에서 이미 언급했다). 말하자면 감옥의 ‘장’인 것이다. 우리말 번역인 ‘간수장’은 그의 역할을 적절히 잘 표현한 듯하다. NRSV에서는 ‘chief jailer’로 번역했다.
간수장은 요셉을 만난 후로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 요셉은 비록 옥에 갇힌 신세였지만 간수장이 보기에 요셉에게는 신이 늘 함께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창 39:21 (개역개정)
위 번역은 요셉 때문에 간수장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으로 표현하는데, 아마도 오역일 것이다. NRSV는 “he [Lord] gave him [Joseph] favor in the sight of the chief jailer”로 번역했다. 즉 주님이 간수장이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하게 요셉에게 은혜를 주셨다는 의미이다.
신이 함께 하는 죄수를 만나게 되었으니 그는 더이상 요셉을 단순한 죄수로 취급할 수 없었다. 간수장은 요셉을 특별히 여겨 그 자신의 일, 즉 죄수들을 관리하는 일과 감옥의 재반 업무를 그에게 맡겼다. 이는 보디발이 요셉을 믿고 그의 집의 모든 것을 맡긴 것이나, 후에 바로가 요셉에게 이집트 전체를 맡아 관리하게 한 것과 연속되어 있다. 다만 모순되 보이는 것은 떡 굽는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과 같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 ‘사르‘는 요셉으로 하여금 그 두 사람을 수종들게 했다는 것이다(40:4). 간수장(사르)은 요셉에게 감옥의 전권을 준 상태이며 신이 함께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는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요셉이 그 두 사람을 수종들게 한 사람은 간수장이 아니라 보디발이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길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보디발의 갑작스런 개입은 마치 그가 자기 자신의 사적 공간에 요셉을 가두었으며, 요셉을 자기가 마음대로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상황에 있고, 또 왕의 죄수들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관리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사실 문서가설을 따라 이 이야기가 둘 혹은 그 이상의 자료 합성의 결과로 일어난 일이라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오경의 다른 많은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이야기 역시 이러한 모순들을 담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서사에 이런 흐름상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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