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저서] 구약학자들의 잠언 설교

Excerpt

2019년 ‘통합구약학회'(장로교통합측구약학자모임)에서 발간한 책 『구약학자들의 잠언 설교』 중 저의 글 ‘숨은 의인 찾기’와 ‘부와 가난의 수사학’을 소개합니다.
sermon on prover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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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학자들의 잠언 설교

한들출판사 2019

2019년 ‘통합구약학회'(장로교통합측구약학자모임)에서 발간한 『구약학자들의 잠언 설교』를 소개합니다. 이 책에는 저의 설교문이 두 편 실렸습니다. 첫 번째 설교문은 잠언 4장 10-22절을 본문으로 한 “숨의 의인 찾기”라는 원고이며, 다른 하나의 설교문은 잠언 16장 16절을 본문으로 하여 작성한 “부와 가난의 수사학”이라는 설교문입니다. 첫 번째 원고는 기독교의 ‘이신칭의’ 교리에 기반한 ‘의인’의 관념과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통용되는 ‘의인’의 관념 사이의 괴리에 대해 지적하고 행위와 의로움의 관련성을 인식할 필요성에 대해 언급했고, 두 번째 원고에서는 잠언의 인과응보 사상이 문자주의적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되며 그러한 수사가 어떤 의미를 가졌으며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This post introduces you to a book, a collection of articles (or sermon manuscripts) on the book of Proverbs written by the Korean Hebrew Bible scholars who belong to The Presbyterian Church of Korea. I contributed to this book with two sermon manuscripts; “Finding hidden righteous one” on Prov 4:10-22 and “A Rhetoric of Wealth and Poverty” on Prov 16:16

숨은 의인 찾기

잠언 4장 10-22절

흔히 의인이라하면 스스로의 불이익이나 고통을 감수하면서라도 의로운 행동을 실행한 사람을 말합니다. 예컨대 2001년 일본에서 유학중이던 이수현 학생(전철에서 자신을 희생하며 타인을 구한 분)이나 5.18 민주화 항쟁의 의인으로 불리는 안병하 씨(군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시민들을 보호하다가 고문을 당하여 후유증으로 사망) 같은 분들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회적 통념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신칭의’ 교리를 기반으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의인’이며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본다면 신약의 일부 서신서에 집약되어 있는 ‘이신칭의’ 교리는 기독교적 ‘의인’의 표상을 왜곡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잠언이 가르치는 ‘의인’의 모습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의인’이라고 이해하는 범주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신칭의’ 사상은 반드시 다양한 성경 본문의 ‘의’ 관념으로 보완될 필요가 있습니다.

한 발자국 더 들어가 봅시다. 상식적 의는 상식에 기반합니다. 그런데 상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요. 만장일치로 합의에 다다른 ‘의’ 개념은 이 세상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누구나 자기 생각에 의로운 것이 진정한 의라고 주장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잠언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잠언은 자기 주관보다 겸손하게 배우는 것을 우선시하는 것이 ‘지혜’라고 가르칩니다. 물론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주관적 판단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배우려는 자세 없이 항상 자기 주장만을 고집하는 것은 성경적인 지혜자의 태도는 아닙니다. 

무엇이 옳은가의 문제에 당면할 때 기독교인들은 종종 자기 독선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성경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숨은 의인’을 찾으려면, 그리고 내가 그 숨은 의인이 되려면 중요한 것은 내 고집을 조금 내려 놓고 겸손히 배우려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부와 가난의 수사학

잠언 16장 16절

잠언의 여러 구절들이 지혜로운 자가 부하게 되며 어리석은 자가 가난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예를 들어 잠언 1장 3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직 내(지혜의)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살다 보면 인과응보가 언제 어디서나 기계적으로 적용되는 법칙은 아닙니다. 가난한 나라들은 어리석고 악한 자들의 나라이고 부요한 나라들은 하나님이 인정하는 지혜로운 자들로 가득한 나라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잠언의 인과응보 사상이 ‘진리’라고 믿기 위해서 부자 나라 가난한 나라를 지혜와 어리석음의 관점에서 기계적으로 판단하려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잠언의 수사학을 지나치게 문자적으로 이해한 탓입니다. 

사실 잠언을 자세히 읽어 보면 책 전체가 인과응보의 결과를 전제로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잠언 16장 8절은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공의로운 자가 소득이 적을 수 있고 불의한 자가 부요할 수 있다는 현실을 잠언의 지혜자들도 인식하고 있었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잠언의 인과응보 수사는 특별한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지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 원고를 통해 잠언에서 볼 수 있는 ‘부와 가난이 수사학’이 부자되는 법을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지혜를 추구하는 것이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녀 세대에게 가르치려는 의도로 고안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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