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ree Shades of Satan 사탄의 세 가지 명암

Excerpt

이 글은 히브리어 ‘사탄’이 신약성경의 ‘디아블로스’와 유사한 개념일 수 있으나, 그 외에도 다른 두 가지 의미가 더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구약의 사탄은 신약의 사탄과 같은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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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UnsplashRishabh Dharmani

Shade 1. 신약의 디아블로스

사탄은 흔히 하나님을 피해 도망다니며 인간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순수악’으로 알려져 있다. 에베소서 6장은 그런 이해를 가능하게 하는 본문을 보여 준다.

11 마귀(디아블로스)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엡 6:11-12(개역개정)

위 구절에 등장하는 ‘마귀’는 그리스어로 ‘디아블로스’의 번역이며, ‘디아블로스’는 구약성경의 ‘사탄’의 그리스어 번역이다. 한글 구약성경에서는 히브리어 ‘사탄’을 그대로 음역하여 ‘사탄’이라고 했으므로 결국 ‘마귀’는 ‘사탄’이 된다.

사탄(히) ⇨ 디아블로스(그) ⇨ 마귀(한)

신약성경 에베소서에서 보여주는 사탄의 속성은 그야말로 순수악이다.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그리스도인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만드는 사악한 존재가 바로 디아블로스, 즉 사탄이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희안하게도 그가 ‘세상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고 믿고 고백한다. 그러나 에베소서에서 따르면 세상의 주관자는 사탄이다. 사탄이 세상의 주관자라는 사상은 헬라시대(기원전 3세기경)부터 나타난 묵시문헌(apocalyptic literature, 초기 묵시문헌은 에녹 전승이 있음)에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 사상은 구약성경의 주 세계관이라기보다 후대에 발생한 새로운 사상이다.

이 사상에 따르면 하나님은 타락한 대천사들(archangels)을 세상 끝날에 심판하실 예정이지만 그때가 올 때까지 그들이 세상을 주관하도록 방치하실 계획이기도 하다. 묵시문헌은 이 세상의 악함을 두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보다 한시적으로 사탄이 세상을 주관하기 때문으로 본 것이다.

Shade 2. 구약의 사탄: 대적자

히브리어 ‘사탄’은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로서 순수하게 악한 존재를 표현하는 말이 아니다. 사전과 용례를 보고 이해해 보자.

satan in HALOT
HALOT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위 이미지는 대표적인 히브리어 사전인 HALOT의 ‘사탄’에 대한 설명이다. 보는 것처럼 ‘사탄‘의 의미는 일반 명사로 ‘적대자‘라는 의미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적대자’는 군사 용어로는 적군이 될 수 있고, 정치에서는 정치적 적대자가 될 수 있으며, 재판 상황에서는 고소인이 될 수 있다.

그가 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진노하시므로 여호와의 사자가 그를 막으려고 (‘사탄/대적자’로서) 길에 서니라 발람은 자기 나귀를 탔고 그의 두 종은 그와 함께 있더니

민 22:22(개역개정)

이 구절은 선지자 발람이 모압 왕의 요청으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에 주의 사자가 그를 막아 서서 그의 행로를 저지하는 장면의 첫 부분이다. 개역한글 번역에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이 본문에서 발람을 막아선 주의 사자를 묘사하는 말로 ‘대적자‘를 의미하는 ‘사탄‘이란 표현이 쓰였다. 그러니 ‘사탄‘은 순수하게 부정적인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니다. 악을 대적하면 그것은 선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사탄‘이 대적자로 쓰인 예는 많이 있다. 삼상 29:4에서는 다윗이 블레셋에 대한 ‘사탄‘으로 묘사되었고(개역개정에서는 ‘대적’으로 번역) 삼하 19:21에서 다윗은 그가 왕이 되던 날 그의 수하인 아비새가 다윗을 저주한 사람을 죽이자고 건의하자 그를 가리켜 ‘사탄‘이라고 불렀다(개역개정에서는 ‘원수’로 번역함).

이처럼 히브리어 ‘사탄‘의 가장 표면적인 의미는 대적자라는 단순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shade 3. 구약의 사탄: 천상 법정의 고소인

히브리어 ‘사탄‘은 신의 법정에서 고소인 역할을 하는 천상의 존재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먼저 사전으로 확인해 보자.

satan in HALOT
HALOT (Hebrew and Aramaic Lexicon of the Old Testament)

어떤 경위로 단순히 대적자를 의미하던 ‘사탄’이 천상의 존재를 의미하게 되었는지는 모르나, 보는 것처럼 ‘사탄‘은 야웨를 모시는 천상의 존재들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 천상의 존재들을 ‘베네 엘로힘‘, 즉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칭하기도 하는데, 여기서 ‘아들‘은 자식의 의미가 아니라 구성원(membership)의 의미이다. 이 천상의 존재는 천상의 법정에 등장하기 때문에 법정 용어인 ‘고소인‘으로 이해되며, 언제나 히브리어 정관사(하+자음 중복)를 수반하기 때문에 늘 ‘핫사탄‘이라는 형태로 나온다.

천상 법정의 고소인인 ‘핫사탄‘이 등장하는 가장 잘 알려진 본문은 욥기이다. 신약성경이 보여 주는 ‘디아블로스‘의 관념으로 욥기를 보면 매우 이상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당당하게 대화할 뿐만 아니라 일종의 논쟁을 벌이기까지 하는데, 그 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거나 심판을 당하지도 않고 쫓겨나거나 도망다니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이미 밝힌 것처럼 ‘핫사탄‘은 신약의 ‘디아블로스‘와는 달리 천상 법정의 구성원이며 고소인 역할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예는 스가랴 3장에도 등장한다. 이 본문은 ‘핫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흠결이 많아 그 직책을 수행하기 적절치 않다고 고소하는 장면을 그린다.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마치 불 같은 포로기를 지나며 검게 그을린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며 여호수아를 변호한다.

이것이 사탄의 마지막 면모이다.

나가는 말: 사탄의 세 가지 명암

위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구약성경에도 신약성경의 ‘디아블로스‘와 유사한 개념의 ‘사탄‘이 등장한다. 이 ‘사탄‘은 욥기에 등장하는 사탄처럼 천상의 존재이지만 고소인의 역할이 아니라 인간을 유혹하여 죄악에 빠뜨리는 악한 존재이다. 

대표 본문은 역대상 21:1이다. 이 사탄은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고 이것이 빌미가 되어 이스라엘은 큰 재난을 맞게 된다. 열왕기의 동일 기록에는 이 사건이 다윗의 죄로 묘사되어 있다. 역대기에 이 부분이 ‘사탄‘의 충동질로 일어난 것으로 묘사된 이유는 역대기가 다윗과 유다 왕국을 옹호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당시 사건은 순수하게 다윗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탄의 충동으로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일이며 그 원인은 ‘사탄’에게 있으므로 사실상 다윗의 문제가 아니라는 논리를 보여 주는 본문이다. 

우리 생각에는 사탄의 충동에 넘어간 것자체가 잘못이지만, 보다 후대의 사고 방식이다. 아무튼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사탄 중 신약의 ‘디아블로스‘ 개념과 가장 유사한 것이 바로 이 본문에 나오는 사탄이다.

이로써 사탄의 세 가지 면모에 대해 알아 보았다. 우리가 만일 ‘사탄’ 혹은 ‘마귀’를 이런 신학적 개념 변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오직 신약의 ‘디아블로스’ 개념만을 받아들인다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아마도 신약성경의 ‘마귀’의 역사를 지나치게 역사적으로 접근하게 될 것이며, 세상의 많은 사건들을 ‘마귀’의 역사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예컨대 사이비 종교가 교주의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사탄’으로 취급하는 것이나, 이를 쫓아내기 위해 벌이는 물리적 폭행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런 신학적 변화를 이해하면 신약의 디아블로스를 일종의 신학적 개념이자 고대인의 이해 방식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이비에 빠질 위험이 없어 진다.

히브리어 ‘사탄’의 신학적 의미 변화에 대해 정확히 알고 성경을 다시 보게 되기를 바란다

부록: 제목에 대하여

이 제목은 2015년에 개봉한 영화 Fifty Shades of Grey를 패러디한 것이다. 이 영화는 한국에서 ‘그레이의 오십 가지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는데, 내가 이해하기로 여기서 ‘shades’는 그림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명암의 정도’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의 색깔이라도 명암의 정도에 따라 다채로운 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단어다.

제목의 ‘그레이’는 ‘회색’이라는 의미이면서 동시에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하기 때문에 fifty shades of Grey라는 표현은 단순히 회색의 50가지 명암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레이라는 인물의 다양한 모습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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