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성서마당 128호
my works

[성서마당] 전도서 연구 동향

구약의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전도서는 거의 모든 영역에서 격렬한 논쟁을 일으킨 책이다. 심지어 책의 제목부터 시작하여 책의 심도 있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학자들은 매우 상반된 견해를 보이며 대립해 왔다. 그중에서 이 글이 다뤘던 부분은 이 글의 저작 연대와 내용상 드러나 있는 모순에 대한 것이다.

eccl chapter 1 in hebr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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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Who on earth is Qohelet?

The main speaker in the book of Ecclesiastes is often considered to be Solomon, or sometimes he is called “the preacher.” But the name does not appear in the text, and the Hebrew word for “the preacher” does not mean “preacher.”

Ecclesiastes
Wisdom and Poetic Books, 지혜 문헌과 시가서

전도서 번역 시리즈(10): ‘너의 창조주'(전 12:1)

전 12:1의 ‘너의 창조주’라는 번역의 원어에는 단수가 아닌 복수 형태가 쓰였다. 문자적으로는 ‘창조자들’이란 표현이 쓰인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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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번역 시리즈(9): ‘전도자’의 성(性)

전도자로 흔히 알려져 있는 ‘코헬렛’이라는 히브리어는 ‘분사의 여성 단수 형태’이다. 문법적으로 여성인 단어는 흔히 여성 단수 형태의 동사를 취하는데, 전도서에서 ‘코헬렛’은 ‘다윗의 아들’로 등장하기 때문에 남성 단수 동사와 함께 쓰인다. 그런데 7장 27절은 예외로 여성 단수 동사가 쓰였다.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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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번역 시리즈(8): “지혜와 명철”(전 7:25)

구약성경, 특히 지혜문헌에는 ‘지혜와 명철’이 짝을 이루며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지혜는 ‘호크마’의 번역이며 명철은 ‘비나’의 번역이다. 그런데 ‘명철’로 번역된 본문에 ‘비나’가 아닌 다른 어휘가 쓰이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전 7:25, 27; 9:10에는 ‘헤쉬본’, ‘헤쉬보노트’, ‘힛샤본’ 등의 어휘가 쓰였다. 개역개정에는 단순히 ‘명철’이란 말로 번역되어 있지만 ‘명철’이란 표현은 해당 어휘의 의미를 정확히 전달하지 못한다. 이 포스트는 이 어휘들의 구체적 의미를 바탕으로 해당 구절들이 갖는 뜻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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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번역 시리즈(7):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전 7:4)

전도서 7장 1-4절은 지혜자가 당장의 유희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데, 이를 은유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지혜자의 마음이 초상집에 있고 ‘희락의 집’에 있지 않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개역한글 성경은 이 부분을 ‘혼인집’으로 표현했다. 이 번역의 장점과 한계는 무엇인지 알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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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번역 시리즈(5):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전 4:4)

개역개정의 전도서 4장 4절에 따르면 누군가가 열심히 노력하거나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 타인에게 시기를 받게 되니 그것이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다. 하지만 본문의 정확한 의미는 누군가를 시기하는 마음이 사람으로 하여금 노력하게 하거나 재주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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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번역 시리즈(4):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전 2:24)

전 2:24에는 사람에게 가치 있는 것을 나열하는데 ‘먹는 것’, ‘마시는 것’, ‘수고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노동에 대해 시종 헛됨을 이야기하는 코헬렛이 과연 ‘수고하는 것’이 가치있는 것이라고 말했을까? 본문의 번역해 보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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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번역 시리즈(2): 헛되고 헛되다

이 글은 전도서의 독특한 표현인 ‘헛되고 헛되다’라는 문구의 문법적, 의미론적 문제를 소개하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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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번역 시리즈(1): 전도서, 전도자

전도서는 ‘전도자’의 책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전도’라는 말을 생각할 때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도대체 ‘전도자’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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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코헬렛이 누구야?

구약성경 중 ‘전도서’는 책의 화자를 번역자가 ‘전도자’로 이해하여 붙인 명칭이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에서 ‘전도’라는 표현이나 혹은 ‘전도사’라는 표현이 가진 보편적인 의미와 이 책의 내용을 고려해 보면 ‘전도자’라는 표현이나 ‘전도서’라는 표현은 그리 적절하지 않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글은 ‘전도서’의 명칭이 왜 생겨났는지 그리고 어떤 대안 명칭이 있는지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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